돈도 안되는 거, 왜 써?

by 최다혜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건 초인의 힘이 필요한 과정이다. 육아하는 부부들은 만성 수면 부족인 경우가 많고, 아이들은 부모의 잠을 먹고 자란다. 항상 피곤한 탓에 24시간 중 10분이라도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영혼을 팔 데가 없던 탓에 통장을 팔았다. 찔끔찔끔 적금을 깨 가면서 온갖 육아 꿀템들을 무장해나갔다. 아기 걸음마 연습에만 들인 육아용품이 4개다. 걸음마 보조기, 쏘서, 점퍼루, 아기체육관. 이 뿐이랴. 뒤집기를 예방해준다기에 뒤집기 방지 쿠션, 아기가 잠 잘 잔다기에 머미쿨쿨, 분유 온도 맞춰준다기에 분유 포트기까지.


이건희 손자처럼 키우고 싶은 욕심 따윈 없었다. 엄마 혼자 힘으로 이건희 손자처럼 키운다는 게 가당키나 했을까. 아프리카 부시맨처럼 커도 좋으니,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만 잘 자라주기만을 바랐다. 아기에게 크게 바란 것도 없는데 통장을 털어 고단함을 메우려 했던 만큼 육아는 늘 어려웠다.


KakaoTalk_20160123_201433445.jpg 거창한 육아 관도 없는데, 아이가 먹고 자고 숨시는 것만 유지해줘도 육아는 늘 어려웠다.

슬슬 내 걱정이 들었다. 육아는 딱 기본만 했는데도 잠잘 시간도 없었다. 나를 돌볼 시간 따위 없었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버리면 어떡하지?'


나의 쓸모를 여러 번 되물었다. 뭘 하면 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사치스러운 고민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결국 이 고민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산후우울이 온 것이다. 우울감은 엄마 노릇만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니 어서 '최다혜'로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지겨운 우울을 떨치려면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은 아이가 6개월 즈음 지나니 생겼다. 그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글은 큰 아이에게 쓰는 편지였다. 나만 알기 아까운 첫 아이와 일상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러다 덜컥 겁이 났다. 무심코 노출한 아이의 정보 때문에, 범죄에 악용될 것만 같았다. 악행에 대한 걱정 덕분에, 관심을 '육아'에서 '나'로 돌릴 수 있었다. 아이에 대한 것 말고 나에 대해 쓸만한 걸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글의 주어를 바꿨다. 이제 주어는 딸에서 내가 되었다. 딸이 먹은 간식, 딸이 다녀온 공원, 딸이 읽은 동화책, 딸의 첫걸음마. 온통 아기뿐이었던 글감을 이젠 살림, 독서, 산책, 남편과의 유치한 다툼 등을 소재로 삼았다.


KakaoTalk_20191201_010937400.jpg 서평 쓰려고 책을 읽었는데, 읽고 나니 하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산더미였다.

제일 만만하게 썼던 글들은 책 리뷰였다. 글을 쓰기 위해 책 읽을 정도였다. 덕분에 독서 후 꾸준히 서평을 남겼고, 어느덧 200개가 넘는 서평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독서와 글의 환상적인 어울림은 서평에서 끝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면 서평에서 끝나지 않았다. 읽을수록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미니멀에 대해서, 절약에 대해서, 일상과 존재, 부(富), 육아. 나를 둘러싼 것들을 써 내려갔다.


쓰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료해져 갔다. 나는 육아에서 조차 깨달음의 엑기스를 추출하려는 욕심쟁이고, 책을 사랑하며, 돈도 매우 좋아해서 절약가를 선택했고, 물건의 소유보다 심플한 살림을 선택했다.


육아하느라 쓸모없는 사람이 될까 봐 안 해도 될 걱정을 달고 살던 과거는 없다.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라 글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이 나를 산후우울에서, 쓸모에 대한 걱정에서 구원했다.


사실 기록은 돈이 안 된다. 쓸데없는 짓은 아닐까 고민도 했다. 한 푼, 두 푼을 아쉽게 여기는 나로서는 당연한 고민이었다. 밥 한 술 더 주는 것도 없는데, 이깟 글이 뭐라고 하루 한 편씩을 꼬박꼬박 쓰고 있을까. 아마 글쓰기가 숭고한 자기만족에서 끝났다면, 오래 못 갔을 거다. 오늘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걸 보면, 글쓰기에는 분명 무언가가 있다.


글쓰기에 있는 '그 무엇', 바로 raw-data(날것 그대로의 데이터)다. 완벽하게 가공하진 않았지만, 다음 글을 위한 재료다. 쓸수록 재료는 풍성해진다.


KakaoTalk_20191205_150426018.jpg 매일 쓴 글들이 누적되자, 방송 프로그램의 좋은 소재가 되었다.

매일 기록한 덕분에, 썼던 포스팅을 다듬어 오마이뉴스에 송고도 하고, 맘스홀릭 칼럼도 연재했다. 때로는 블로그 글을 보고 방송작가님들의 접촉을 받아, 연합뉴스, CBS, MBC, JTBC 방송도 찍기도 했다. 요즘은 아나운서가 전하는 책 이야기, 유튜브 아나운서점에 책을 소개하는 대본도 쓰는 중이다.


매일 쓰는 소소한 글감들이야말로 평범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콘텐츠의 힘이 중요해질수록, 콘텐츠를 생산할 기초 기록이 필요하다. 그 기초 기록이 블로그 글이다.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이 지독하게 평범하고 남다르지 않아서, 독자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집밥, 공원 나들이, 도서관, 책방 나들이, 팝콘 튀겨먹은 이야기까지. 남다를 것 없는 모든 걸 기록한다. 대신 꾸준히 한다. 하루를 꽉 채워 산 기분에 잠도 잘 온다. 육아하느라 나를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다가, 조금씩 작은 숨을 내쉬고 있다.


글감이 될만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핸드폰을 들고 다닌다. 솟은 갈대 위로 뜬 태양마저 아름다워 모두 담아내려 촉을 곤두세운다. 일상은 점점 윤이 난다. 하루가 짧고 아쉽다. 글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마주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사랑하게 해 줬다는 것. 더없이 큰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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