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쓴다

by 최다혜

천연발효 통곡물빵을 거칠지만 쫀득하게 구워낼 수 있는 사람은 인생이 얼마나 즐거울까! 빵을 잘 구울 수 있는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손맛이다. 드물게 기가막힌 빵을 직접 구워 먹을 수도 있고, 선물도 할 수 있고, 때로는 상품으로 판매하면 소비자들은 줄을 서서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나도 글을 쓴다. 빵집 사장님 부러워서. 웬 헛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저 빵집 사장님 부러워서 저도 글쓰기 연습합니다! 헛소리도 변명하면 이해할만한 참소리가 되리라 기대하고, 부연설명을 드리고 싶다.


글쓰기도 '기술'이라는 점에서 빵굽기와 유사하다. 기술은 꾸준히 연습한다면 점점 잘 할 수 있고, 삶에 실용적인 혜택을 준다. 혜택이란, 그 기술을 자기 위해 쓸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재능 기부 할 수도 있으며, 가끔은 돈으로 교환도 할 수 있는 부분을 말한다.


글쓰기도 어엿한 기술로서 삶의 철학을 가다듬으로서 자신의 성장을 돕고, 편지, 보고서, 하다 못 해 SNS를 멋지게 쓸 수도 있으며,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르고, 가끔은 원고료로 돌아오기도 한다. 이 정도면 글쓰기도 빵굽기처럼 꽤 쓸모있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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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좋은 건 글쓰기에는 밑천 한 푼 들지 않으니 누구나 해봄직한 일이란 점이다. 빵집 사장님이 되려면 각종 베이킹 재료가 필요하고, 요리할 넓은 공간, 나중에는 상품을 판매할 가게도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글 쓰는 사람은 오직 잘 다듬은 '생각'이 있으면 된다. 연필로 적어도 좋고, 핸드폰으로, 때로는 컴퓨터로 글을 쓸 수 있다.


글쓰기 소재 또한 별나지 않아도 좋다. 나의 경우 돈 안 쓰고 집밥 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애들이 당췌 일찍 잘 생각을 안 한다는 한탄까지. 살아가는 이야기의 모든 것은 글이 될 수 있었다. 지금도 글쓰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글은 '컨텐츠'로서 나의 지적 자산이 된다. 별 것 없는 육아 중인 엄마의 육아와 절약 이야기를 꾸준히 컨텐츠화 했더니, 기사도 쓰고, 칼럼도 쓰고, 블로그를 눈여겨본 연합뉴스 TV 스페셜 작가님께 출연 제의도 받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MBC 생방송 오늘아침에서도, CBS 서연미 주말뉴스쇼와 JTBC 체인지에도 출연했고, 지금은 아나운서점의 책소개 구성 대본을 쓰고 있다. 스쳐지나가는 일상 면면들을 아까워하며, 작은 부분이라도 잡아내 글로 남기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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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자가 있는 글만큼은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빵 맛있게 하려고 재료 따위 대충 저급한 것으로 채우고 MSG로 가짜 맛을 낸다면, 빵 제작자로서 자질 0점이다. 그 빵 먹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진심 없는 거짓말을 번드르르 한 이야기로 읽는 이에게 당장의 즐거움만 준다면, 글 제작자로서 부끄러워야 한다.


글쓰기는 '기술'이지만, 진심을 담는 보기 좋은 그릇을 빚는 의미로만 기술일 뿐. 진심까지 기술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독자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진심'의 범위는 어디까지인 걸까. 일부러 거짓을 쓰려고 한 것은 아닌데, 과거의 생각과 지금 하는 생각이 다를 때가 많다. 읽는 책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경험이 축적될수록, 생각은 수정을 거듭한다. 현재의 소신과 다르다고 해서, 과거의 글은 거짓일까? 그러면 지금은 진심이지만, 훗날 거짓이 되는건가?


예전에는 돈에 초연하는 태도만이 고결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돈이 주는 유익함을 미래의 안정감을 위해 저축하는데 관심이 생겼다. '절약'을 하자는 데는 의견이 같지만, 세심한 부분을 가다듬는 중이다. 아마 평생 가다듬을 듯 하다.


또 3년 전 큰 아이 육아를 시작할 때는 엄마가 당장 힘들어도 작은 노력이 아이에게 줄 영향을 생각하면, 없던 모성애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도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엄마와 아이의 삶이 함께 행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육아관에 찬성한다. 이 또한 아이가 자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과거의 글이 현재의 나를 옭아맬까봐 걱정될 때가 있다. 그 때, 그 때 진심에서 최선을 다한 글이지만, 나중에 다른 관점이 생겨 돌이켜보면 어쩜 그리 못난 글인지... 불과 몇 개월 전의 내가 부족해보여 한심할 때가 있으니, 이젠 지금 나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다. 그럴 수록 글쓰기가 두렵고, 자신감도 떨어진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100점'이 아닐까봐, 완벽한 의견일리 없으니까, 정답이 아니면 어쩌나 하고 주춤거린다. 그래서 자기검열을 한다.


'지금까지 가다듬은 생각으로는 최선이 맞지?'

'미래의 어떤 배움으로 새로운 깨달음이 생길지는 몰라. 하지만 지금까지의 독서와 경험으로 비춰보아, 이 글은 진심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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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언제나 두렵고 위축되는 일이지만, 여전히 '기술'로서 나를 견고하게 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해준다. 포기하기엔 아깝다. 어차피 세상 오만가지 일이 모두 두렵다.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 '민주적' 선생님과 '오냐오냐' 선생님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우리 부부의 두 아이를 키울 때도, 부부의 사랑에 대한 철학, 친구 관계, 가족 관계. 글쓰기는 '여전히 잘 모르겠는' 수 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다.


'좋은 진심'에 정답은 없겠지만, 최소한 타인에게 해롭지 않을만한 진심을 위해서 책을 읽는다. 읽을 수 있는만큼 최선의 독서를 하고 고민을 했다. 자기검열을 했다면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쓴다. 부족한건 부족한 나름대로 괜찮다. 애초에 완벽한 글, 결함 없는 글이 어딨겠는가.


지금 최선의 진심, 에세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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