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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Jan 05. 2019

유토피아에 살기로 했다

휴직 만 2년 6개월째. 일을 다시 시작할지, 말지를 두고 오래 고민했다. 맞벌이를 다시 시작하면 매달 210만원, 고스란히 자산으로 쌓을 수 있다. 간소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월 210만원을 더 얻는다는건 심장이 쿵쾅대는 큰 수입이다. 이 돈을 한 해 모으면, 그토록 바라던 자급자족 할 수 있는 밭 한 뙈기도 살 수 있다.


큰 액수의 돈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 2019학년 복직하기로 마음 먹었다. 워킹맘이 되어서도 아이들 잘 키워낼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동시에 지금의 느긋함과 여유를 잃어버릴까봐 두려웠다. 복직하면 새벽에 벌떡 일어나 아침 차려먹고 남편 차에 아이들을 보낸 후, 나도 학교 가서 일 한다. 교육자가 대충대충 일하는 모습 따위 용납할 수 없으니, 근무 시간을 불 태우고 올게 분명했다. 집에 오면 당연히 녹초가 될 것이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 8시에 등원해서 저녁 5시 30분에 집에 오겠지. 부모 품이 그리운 3살, 5살은 바쁜 저녁 시간 내내 다리에 달라 붙어, 부비적 댈거다. 그 모습이 예쁘고 짠하기도 하지만, 해야 할 집안일이 많으니 "이따가! 나중에! 설거지만 하고! 너희 다 씻고! 엄마도 씻고!"만 말하다가 겨우 30분 정도 책 읽어주고, 블럭 쌓다가 잠들 것이다.


복직으로 얻을 것은 수 천 만원의 여유자금이고, 잃을 것은 남편, 나, 두 딸의 안락한 1년이다.

휴직으로 얻을 것은 가족의 여유있는 1년이고, 잃을 것은 자급자족 삶을 받쳐 줄 될 밭 한 뙈기다.


망설이는 내 옆구리를 찌르며 남편이 말했다.


"지금 전화해. 말씀드려."


수 개 월 하던 고민은, 단 1분의 통화로 종결됐다. 다시 1년, 휴직을 결심했다. 두 딸이 4살, 6살이 되어 스스로 놀 수 있을 때, 그래서 저녁 시간이 더 여유로워 질 2020년에 직장으로 돌아가야겠다.


우리 부부는 간소하게 사는 덕에 매우 안락하다. 사치품과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으니, 원시적 행복을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옷이 있다. 최고의 패셔니스타가 될 수 없는 옷이지만, 취향에 꼭 맞는 따스한 옷들이다.

나에게는 집이 있다. 신축 브랜드 아파트 넓은 집은 아니지만, 볕이 잘 들어 겨울에도 훈기가 돌고, 전천 흐르는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나에게는 차가 있다. 도로에서 모든 차가 슬금슬금 비켜가는 유럽산 동그란 엠블럼 차는 아니지만, 네 식구 안전하고 편안하게 어디든 갈 수 있다.

나에게는 먹거리가 있다. 매일 호사를 누리는 식탁은 아니지만, 제철 음식에 영양가 고루 갖춘 집밥으로 온식구 무탈하게 건강하다.


나에게는 산책로와 자전거가 있다


21세기 경제 강국 대한민국에 사는 덕분에, 외벌이라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1등으로 잘 살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낮 동안 커피 마시며 글쓰고, 책 읽을 수 있다. 햇살 좋을 때는 강변 따라 자전거를 타면서 상쾌함에 젖는다. 오마이뉴스 기사나 맘스홀릭 칼럼을 쓰면서,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과 의리를 다진다.


낮에 집안일을 다 해놓는 덕분에 남편도 집에 오면 더 이상 분리수거나, 청소, 빨래널기에 진 빼지 않는다. 저녁 시간인데도 여유가 있어 남편은 영어 회화를 중얼거리며 외우고, 나는 아이들과 상상의 바다를 헤엄치며 장난감 물고기를 낚는다. 딸들은 어린이집에서 오전에 놀다가 점심 먹고 낮잠 잔 후, 집으로 온다. 하원 길에 엄마랑 산책하거나 서점에 들리기도 하고, 놀이터도 간다.


나에게는 저녁 햇살이 스미는 제라늄이 있다.


때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일 할 수 있는 젊은 나이 일 때 조금 참고 돈을 모아야 하는건 아닌지, 스스로 되묻는다. 


이 질문에 답하자면, 현재의 바늘 한 땀으로 미래의 아홉 바늘의 수고를 덜 수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 그러나 나중의 아홉 바늘을 위해 오늘 천 개의 바늘 땀을 놓는건 아닐까. 조금 더 잘 살기 위해 책을 못 읽고, 글도 못 쓰며, 하루를 전쟁처럼 보내야 한다면, 그건 하나의 바늘 땀일까, 천 개의 바늘 땀일까.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간소한 삶을 산다. 매달 210만원으로 온가족이 유토피아를 누릴 수 있도록 가계부도 쓰고 봉투살림도 한다. 이 외에 남는 돈은 저축한다. 그렇게 매달 저축하는 적은 돈이야말로, 미래를 위한 '한 땀의 바늘'로 적당하다.


나는 지금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더, 유토피아에 살기로 한다.




(+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있다면, 복직을 결정한 맞벌이 부부가 느낄 위화감입니다. 혹은 지금 맞벌이 중인 분들의 죄책감입니다.     


저도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 복직을 확신했습니다. 맞벌이 삶도 유토피아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아이들은 너무 어립니다. 작은 아이가 아직 15개월이라, 손이 많이 갑니다. 이른 등원과 늦은 하원도 매우 부담스럽습니다. 큰 아이가 두 돌 되기 전, 종일반을 하면서 다른 원아들에 비해 자주 열감기를 앓았습니다. 발 동동 구르며 마음 아파했던 기억에, 더 복직에 주춤거립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손이 덜 가거나, 주변에 충분한 도움의 손길이 있다면, 맞벌이를 하셔도 부담이 덜하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맞벌이를 하면서 꽤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데 구태여 외벌이로 살 이유는 없습니다.     


저도 아이들이 손 덜 가고, 자기들끼리 재밌게 놀 수 있는 4살, 6살이 되면 일하러 갈 겁니다. 그 때가 되면 맞벌이를 하면서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아낼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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