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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다혜 Sep 26. 2020

[책 1.]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 클럽 - 박초롱

좋아해서 버티는 언니들의 힘

이 언니들의 야망은, '좋아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것'.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 클럽>은 거창한 롤모델 말고, 각자의 분야에서 딱 한 발자국 씩 먼저 간 '언니'들을 찾아 담아낸 책이다.


나만의 글을 쓰는 은유 작가, N잡러 홍진아 대표, 노무사 김민아, 홍대를 기록으로 남기는 잡지 <스트리트 H> 대표 정지연, 회사보다 직원이 더 단단한 상담실 '에브리마인드' 대표 이서현, 보이는 몸 말고 기능하는 몸을 만드는 '변화의 월담' 대표 리조, 섹스칼럼니스트 은하선.


68쪽. 인터뷰를 위해 만난 여성들은 대개 '자랑할 수 있고' '물리적으로 부피가 큰' 야망보다 '내실 있고' '의미 있는' 야망을 꿈꾸기를 즐겼다. 사회적 인정보다 자신만의 만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 보였다.


먼저 한 발자국 떼었다는 언니들은 한결 같이 '자랑 추구형' 야망을 꿈꾸지 않았다. 인정 받기 보다 내가 즐겁고 의미 있다고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느꼈다. 명예를 갖든, 그렇지 않든, 하고 싶은 일이면 충분했다. 그래서 은유 작가님은 글을 계속 쓸 수 있었을 테고, 이서현 대표님은 상담실의 수익보다 상담사들의 복지를 챙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음. 그럼 돈은? 빚 안 지고 살 정도면 된다고 한다. 시원시원하다. 이러니 결과에 목 멜 필요 없었다.


'왜 일하는가?'

'좋아하니까.'


좋아서 하는 일은 일 자체가 보상이다. 살아가는 일 자체가 꿀이다.


16쪽.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걸 쓰고, 누가 좋아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어쩔 수 없는 거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도 힘들다. 에너지가 많이 든다. 힘들지만 지켜내기에 '야망'이라 불릴 자격이 된다.


사실 나는 야망이 없다. 좋아하는 일이 힘들면 '안 해' 하고 그만 둬버려서 야망을 지속하기 어렵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위기 앞에 버티는 힘이 부족하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최소한의 소비> 연재를 2020년 복직 이후 거의 쓰질 못 하고 있다. 위기가 찾아온거다. 직장 일과 글쓰기와 육아를 병행하기란, 몸살 밖에 더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쓰고 싶어 글 쓰다가도, 힘든 날에는 안 쓴다. 


힘들면 멈출 줄 안다. 덕분에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최소한의 소비>는 끝장을 보지 못 하고 흐지부지 되어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공적인 책임감을 갖고 버티는 힘도 필요하건만, '힘든데 꼭 해야해?'라는 마음이 앞선다. 


동시에 교사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본업도 잘 하고 싶고, 엄마로서 내 아이들을 지혜와 덕을 갖춘 시민으로 기르고도 싶다. 글쓰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기르는 사람 모두를 잘 해내고 싶고, 그 어느 하나에게도 우선 순위를 주지 않았다. 아니, 어디 하나에 우선 순위를 줄 수가 없다. 나에게는 글쓰는 사람의 자아와 교사 자아, 그리고 엄마 자아 중 '더' 중요한 일도 '덜' 중요한 일도 없다. 


그러니까 버텨야 한다. 야망 있는 언니들에게 배운게 있다면, '즐기기'와 '버티기' 모두다.


70쪽. 거창하지는 않지만 내가 진짜 원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걸 남들이 야망이라고 보는 것 같다.


좋아하는 마음과 버티는 마음은 결이 다르다. 하지만 같이 가야 한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끝까지 좋아할 수 없다. <야망 있는 여자들의 사교 클럽>의 주인공인 일곱 명의 언니들은 '즐기고 버티는' 사람들이다.


즐기고 버티는 사람에게 '야망 있는 언니'라는 왕관을 씌워준 박초롱 작가님의 지혜도 멋지다. 성공한 언니들을 찾아간게 아니라 내실 있는 언니들을 찾아가 인터뷰 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일단 내실 있는 언니들을 꼽는 안목부터가 비범하다.


덕분에 '야망'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 의미있고,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내는 야망이라면, 나도 야망 있고 싶다. 그런 여자로 살고 싶다.


96쪽. '야망'이 누군가에게는 '노오력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착취의 프레임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큰 사람이 되어 사회에 기여를 한다'는 식의 스토리는 찬양받지 못한다. 작더라도 내 개인의 것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때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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