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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현 Jun 28. 2022

나만의 교환학생 '썰 플리'

슬기로운 교환생활

사람들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음악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음악에서 나오는 가사가 뇌리에 박혀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고, 리듬이 신나서 좋아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노래가 주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내가 느끼는 분위기에 따라 즐겨 듣는 플레이리스트도 달라지곤 한다. 최근에 유튜브 채널에서는 가수 이석훈이 사람들의 이야기 즉, '썰'을 바탕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 채널을 보면 노래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나에게도 그 순간이 생각나는 노래들이 있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간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국에 돌아온지도 6개월이 지났다. 시간이 지난 만큼 모든 순간들의 생생함이 이전만큼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노래들을 들으면 유난히 그 순간이 생동감 넘치게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이번에는 특히 잊지 못할 순간들에 대해 노래와 함께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 첫 번째 노래, Farruko의 Pepas

https://www.youtube.com/watch?v=y8trd3gjJt0

이 노래는 나에게 데이비스의 밤과 같다.

말 그대로 이 노래를 들으면 데이비스에서의 흥겨운 밤이 떠오른다. 이 노래를 처음 접하게 된 건 Latin Night Party에서였다. 친구의 초대로 다운타운의 한 펍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Latin Night Party에 갔다. 미국에 도착한 이후 처음 가는 파티였기 때문에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로 내 발걸음은 펍을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파티에서 ‘어색함’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나를 초대해준 친구의 다른 친구들도 연이어 펍에 도착하고 우리는 함께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어색함'과 '경계'를 조금 내려놓고 친구들과 한창 놀던 중 디제잉 부스에서 굉장히 신나는 리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처음 듣는 노래에 가사도 스페인어로 되어있어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멜로디가 굉장히 신이 났다. 노래가 후렴부에 다다르자 그 펍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사를 따라 불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굉장히 핫하고 인기 있는 라틴 팝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날 이후 어딜 가나 이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에 밥을 먹으러 식당을 가도, 친구들과 맥주 한잔 하러 간 펍에서도, 밤마다 나를 캠퍼스에서 집까지 데려다준 Safe-ride 차량 라디오에서도 어김없이 이 노래가 재생됐다. 그리고 이 노래가 나오면 항상 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은 후렴구를 따라 부르며 흥겨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이 떼창을 하면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이 노래를 더욱 신나게 만드는 것 같았다.

“ No me importa lo que de mi se diga. Que solo e’ una, disfruta el momento”

남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한번뿐인 이 순간을 즐기라는 이 노래의 가사는 교환학생 생활 동안 일종의 나의 모토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노래를 들으면 데이비스에서의 밤, 그리고 캘리포니아 사람들의 에너지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 두 번째 노래, Miley Cyrus의 Party in the USA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11SvDtPBhA

이 노래는 제목 그대로 나에게 미국에서의 파티를 상징한다.

전공 수업에서 친해진 현지 친구의 룸메이트 생일파티에 갔다가 듣게 된 노래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미국에서 즐겼던 친구들과의 House party가 떠오른다. 노래의 첫 소절부터 나의 상황과 너무 잘 들어맞았다.  "I hopped on the plane at LAX"로 시작하는 이 노래를 들으면 LA 공항에서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고 내가 몇 달 동안 교환학생 생활을 한 Davis로 출발한 날이 떠오른다. 긴장 가득했던 그날을 뒤로 점점 새로운 생활의 설렘이 몸집을 키우고 긴장감은 사라져 갔다. Davis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미국 대학생들의 파티 문화가 궁금해졌다. 대학 동기들끼리 또는 동아리 사람들과 술집에 가서 꼭 탕 종류의 안주를 하나 시키고 소맥을 마시는 것이 K 대학생의 문화라면,  House party는 한국에서 접해본 적 없는 또 다른 문화였다. 미국에서는 말 그대로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이 굉장히 흔하다. 한국처럼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과 달리 단독주택에 사는 경우가 많아서 가능한 것도 있다. 하지만, 대학교 근처는 학생들이 아파트에 모여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대학 캠퍼스 타운에서 파티는 어떻게 열릴까? 답은 간단하다. 아파트여도 파티는 열린다.

파티로 인한 소음에 모두가 너그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그리고 다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들이 모여있다 보니 하룻밤에 한 집만 파티가 열리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아파트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시끄러운 음악으로 가득 찬다. 정말 심한 경우에는 경찰이 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옆집에서 파티를 하던 친구들이 불쑥 우리 파티에 찾아와 함께 파티를 즐기게 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 경험한 House party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wild"하다. 이 노래 역시 "wild"한 분위기에 한껏 취한 대학생들에게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다.



▣ 세 번째 노래, Troye Sivan의 Strawberries & Cigarettes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Mw5mAozjC6M

이 노래는 드라이브 주제곡이다.

앞에 소개한 두 노래와 달리 이 노래는 원래 Troye Sivan 노래를 좋아해서 즐겨 들었던 노래이다. 하지만 이전에는 그저 '연말 분위기' 때문에 들었다면, 이제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친구들과 차를 타고 달렸던 도로와 바깥 풍경이 떠오른다.  

이전 글에 적은 것과 같이 교환학생 생활에 있어서 나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자전거'였다. 물론 처음에 정말 살기 위해 자전거를 배우기는 했지만 역시 사람이 안 하던 것을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등교할 때는 수업에 늦을 수도 있다는 핑계, 친구들을 만날 때에는 술을 마실 수도 있다는 핑계, 또 해가 지면 길을 찾기 어렵다는 핑계. 이렇게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나는 자전거를 점점 멀리했다. 한 번은 자전거에 대해 친한 언니에게 고민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 언니의 조언은 이상하면서도 간단했다. 내가 자전거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차 있는 친구를 사귀는 게 빠를 것 같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언을 해준 언니는 나를 아주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불안해서 자전거를 놓고 다니던 나는 진구들과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카풀이 필요한 사람'이 돼 버렸다. 모임에서 차를 가져온 친구들이 매번 카풀을 해주다 보니 몇 명의 친구와는 유난히 친해졌고, 그 친구들이 카풀을 해줄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조수석 DJ 역할을 했다. 조수석에 앉아 노래를 선곡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틀었던 노래가 바로 이 노래이다. 가끔은 카풀이 필요한 다른 친구들을 내려주고 친한 친구와 노래를 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근처 드라이브를 즐기기도 했다. 한 번은 친구가 그래서 딸기와 담배를 좋아하는 거냐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기도 하고, 때로는 여느 대학생들처럼 앞으로의 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들으면 왠지 창문을 반쯤 열고 맡는 바람 냄새가 나는 것 같다.



▣ 네 번째 노래, RL Grime의 UCLA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YU8Zf1Sv7A

이 노래는 '미국에서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MBTI를 맹신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믿는 편인데, 내 MBTI에 따르면 나는 내향적이고 극도로 계획적이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나'는 이 두 개를 깨버렸다.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사람과도 많은 대화를 하고,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때로는 계획에 없던 즉흥적인 일을 벌이기도 했다. 이 노래는 내가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친구와 즉흥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가면서 친구가 틀어준 노래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가장 애용했던 것은 Safe-ride 서비스였다. Safe-ride는 밤 10시 이후부터 새벽 5시까지 캠퍼스에서 집으로 픽업을 해주는 학생 안전 서비스였다. Safe-ride의 드라이버들은 대부분 같은 학교 학생 근로자들이었다. 나는 금요일에는 동아리 모임, 주말에는 여행을 위해서 주중에 모든 공부와 과제를 끝내려고 했다. 그때마다 늦게까지 도서관에 있다가 Safe-ride를 불러서 집에 편하게 귀가하고는 했는데, 거의 매일같이 이용하다 보니 나를 알아보는 드라이버가 생겼다. 하루는 해당 시간대에 이용하는 학생이 나와 다른 한국 교환학생 친구 둘 뿐이었다. 그래서 나를 알아본 두 명의 드라이버가 내게 말을 건넸고, 수다를 떨다 보니 그중 한 명은 나와 같은 전공을 공부하는 동갑내기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금세 친해졌고 내가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밥을 먹자며 약속을 잡았다. 원래는 데이비스에서 가까운 도시인 새크라멘토에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친구는 나를 데리러 와서 뜻밖의 제안을 했다. 첫 번째 옵션은 원래대로 새크라멘토에 가서 저녁을 먹는 것이고, 두 번째 옵션은 갑작스럽지만 샌프란시스코에 가자는 것이었다. (참고로 새크라멘토는 차로 약 20분 거리, 샌프란시스코는 약 1시간 반 거리였다.) 다음날 나는 학교 수업이 있었고 원래의 나라면 계획했던 대로 새크라멘토에 가자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왠지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샌프란시스코가 더 끌렸다. 결국 나는 친구에게 두 번째 옵션을 선택하겠다고 하고 우리는 즉흥적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달렸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꼭 일탈을 하는 것처럼 짜릿한 기분이 든다.



▣ 다섯 번째 노래, Why don't we의 Mistletoe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zvZh78J1LU

이 노래는 나에게 첫눈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첫눈은 오묘한 감정 그 자체다. 겨울을 무척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눈을 보면 왠지 포근해지는 기분이 듦과 동시에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연말의 분위기는 한 해가 끝났다는 아쉬움에 뭔가 아련해지면서도 좋은 기억들이 떠올라 포근해지기도 한다.

원곡은 Justin Biber의 노래인데 Why don't we라는 그룹이 커버해서 발표한 노래이다. 원래 이 노래 자체가 크리스마스 시즌에 어울리는 노래로 유명하다. 이 노래를 들으면 떠오르는 기억은 마치 연말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데이비스에서 한 쿼터를 끝내고 12월부터 나는 미국 여행을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환학생의 묘미는 마지막에 원 없이 즐기는 여행이라고들 하지만, 나에게 한 달 간의 여행은 연말 같았다. 실제로 12월부터 1월에 걸쳐 여행을 해서 말 그대로 연말이었다. 여행에 대한 설렘과 동시에 데이비스에서의 캠퍼스 생활, 만났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아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했다. 특히 포틀랜드 여행은 더욱 그러했다. 데이비스에서 정말 친해진 한 친구와 일정이 맞아 포틀랜드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나는 데이비스를 떠났다. 그 친구를 보기 위해 나는 포틀랜드를 같이 여행하기로 한 일행들보다 조금 먼저 포틀랜드로 향했다. 우여곡절 끝에 친구를 만났고 우리는 예쁘게 꾸며진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포틀랜드를 구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친한 친구와 놀러 나온 기분이었다. 산책을 하다가 갑자기 입김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추워져서 우리는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하면서 시간을 마저 보내기로 했다. 차에 타자 내리던 비는 굵은 눈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 맞는 첫눈이었다. 나와 친구는 내리는 눈을 구경하기 위해 잠시 차를 세우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차를 세우고 이야기를 나눌 때의 분위기는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수다를 떨었지만, 이날 말하는 '안녕'이 어쩌면 기약 없는 '안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친구와 나 둘 다 더욱 쉽게 헤어지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를 들으면 마냥 신나는 크리스마스보다는 아련하고 기분 좋은 겨울의 첫눈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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