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여름어 사전

사랑하는 나의 여름에게

by 경희

초여름에 떠난 기차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나 여름이 막 되자마자 초여름에 어디론가 떠나는 휴가라면 더욱이. 그 기분 좋은 감정은 KTX처럼 빠르게 나아가는 기차보다 무궁화호처럼 느리게 나아가는 기차를 탈 때 더 살아난다. 기차는 느리게 갈수록 좋은 법. 먼저 기차를 타면 두리번거리며 내 자리를 찾는다. 여행을 갈 때마다 항상 함께하는 하늘색 가방을 선반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안쪽 창가 자리에 앉는다. 줄이어폰을 꽂고 여름이 잔뜩 담긴 여름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해 재생한다. 기차 안이 금세 온통 여름으로 채워진다. 계속해서 달라지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가만히 눈을 감고 여행에서 생길 일에 부푼 기대를 안고 향한다. 비로소 나는 여행을 잘 해낼 준비를 마쳤다.

한여름에 먹은 김밥

여름에 김밥을 먹고 체를 한 적이 있다. 다시는 여름에 김밥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던 것만 같다. 여름에 먹었던 김밥의 모양을 떠올려본다. 물놀이를 가기 전 재빨리 김밥을 테이크아웃 해서 차 안에서 다정히 나누어 먹었던 김밥, 날씨 좋은 날 한강을 바라보며 떡볶이와 함께 곁들여 먹었던 김밥, 아침에 정성껏 싸주신 엄마의 김밥을 회사에서 도란도란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던 김밥.

어쩌면 김밥은 나누어 먹어야 더 맛있는 음식일 테다. 한 알 가득 입 속에 넣고 오물거리는 나와 똑같이 김밥을 오물거리는 상대방을 바라보면 더욱더 맛있어지는 음식일 테다. 왜 자꾸만 여름에 김밥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동그랗게 들어가 있는 알록달록한 야채들이 꼭 내가 생각하는 여름 같아서일까.

늦여름의 끝자락

사계절 중 여름을 가장 사랑한다.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어쩌다 여름을 사랑하게 됐다. 그렇게 됐다. 여름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 차가운 밀크티를 쪽 들이키고 얼음까지 와그작 씹어먹는 것. 생글생글한 과일이 담겨 있는 빙수를 숟가락 한가득 퍼먹는 것. 귀뚜라미 소리를 노래 삼아 여름밤 아래를 하염없이 걸으며 산책하는 것. 느닷없이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투명한 여름비를 맞으며 집까지 뛰어가는 것. 나는 아직 여름을 노래하고 있는데, 왜 말도 없이 떠나간 건지. 왜 이리 서운할 만큼 시원해진 건지. 나는 아직 여름이랑 더 같이 놀고 싶은 마음뿐인데. 초여름, 한여름, 늦여름을 지나 늦여름의 끝자락의 끝자락을 겨우 붙들고 있는 지금, 아직도 나는 나의 여름을 보내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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