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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희 Nov 16. 2022

실수투성이 장기자랑

지금으로부터 딱 십 년 전, 아직도 잊히지 않는 실수가 있다. 지금까지 이 실수를 기억하는 이유는 하루에 세 가지의실수가 동시에 일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렴풋이 기억하는 2011년의 어느 날, 봄인지 여름인지 계절조차 희미하지만 기억을 끄집어 생각해보면 아마 봄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초등학생을 벗어나 드디어 멋진 중학생이 된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련회를 가게 된다. 수련회라 함은 주구장창 노는 수학여행과는 사뭇 다른, 목소리가 이것밖에 안 되냐는 말을 온종일 들으면서 얼차려를 반복하다가 밤에는 촛불을 켜고 둥그렇게 모여앉아 함께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알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알 수 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기쁜 순간이 있다면, 바로 수련회의 꽃 장기자랑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갈고닦은 방송댄스 실력으로 친구와 함께 장기자랑을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이 잘못된 마음이 바로 내 첫 번째 실수다.


단순히 장기자랑을 나가는 것이었다면 실수로 여겨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꽤 파격적인 공연을 시도했었다. 친구가 노래를 부르면 나는 그에 맞춰 춤을 추는 기이한 공연을 선보인 것이다. 심지어 노래는 여자 가수가 부른 매우 유명한 팝송이었다. 고작 열 네 살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글로벌 시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팝송을 선곡한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국내 가요가 아니었기 때문에 안무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안무를 창작했다. 장기자랑에 대한 엄청난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렇게 매일 밤 거실로 나와 혼자 안무를 짰고, 피나는 연습 끝에 무대를 선보이게 된다.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시간이 많아 놀랍게도 친구와 함께 맞춰본 기억은 거의 없는 듯하다. 팀으로 나가는 장기자랑에서 개인플레이라니. 보기 드문 일이다. 하지만 더 큰 실수는 바로 무대에서 시작된다. 나는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 중앙으로 나갔고, 친구는 오른쪽 구석에 서서 열심히 영어 발음을 굴리며 노래를 열창했다. 나는 내가 만든 안무를 몸이 부서져라 추었다. 다행히도 친구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누구보다 파워풀한 무대를 선보인 후 헐떡이는 숨을 내쉬고 만족하며 내려갔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자신감에 가득 찬 모습으로 거울을 보았다. 맙소사. 이제서야 발견했다. 옷을 거꾸로 입은 내 모습을. 이미 무대에서 한껏 멋진 척을 하고 내려왔는데 옷을 거꾸로 입고 춤을 췄다니. 도대체 왜 아무도 나에게 말을 해주지 않은 걸까.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나.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열심히 준비한 장기자랑에서 옷을 거꾸로 입고 춤을 춘 게 바로 내 두 번째 실수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지금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중학교 일 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혼자 안무를 창작해서 장기자랑을 나갈 생각을 하다니. 생각해보니 대단하잖아? 웃기지만 멋진 놈! 그렇다. 사실 내가 옷을 거꾸로 입으면서까지 장기자랑에서 열심히 춤을 춘 이유는 바로 가수의 꿈을 꾸고 있어서였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지금은 다른 일을 하며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조금만 고집을 부려 오디션이라도 보러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내 안의 열정을 그대로 놔둔 채 식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 미안한 마음이다. 이것이 바로 내 마지막 실수다. 우리는 인생에서 총 몇 번의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갈까. 일일이 세본적은 없지만 어리숙한 실수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확실할 테다. 그래서 앞으로 나는 더욱더 많은 실수를 하며 살아가 보려고 한다. 하지만 혹여나 내 장기자랑 무대 영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용히 내게 연락해주길 바란다. 그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실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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