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도서관에 대한 기억의 첫 페이지는 언제부터였을까.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향하던 곳은 다름 아닌 도서관이었다. 과천에서 살다가 이사를 온 나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대신 엄마와 함께 집에서 가장 가까운 평촌도서관을 다녔다. 때로는 어린이집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지만, 온통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은 그야말로 나에게 천국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에서 잠시 벗어난 나는 가만히 앉아 조용히 책을 읽으며 안정감을 되찾았다. 페이지를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오묘하게 나는 책 냄새가 그리도 좋았다. 소설책을 좋아해 마치 세계 일주를 하듯 여러 나라의 소설을 읽으며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렇게 도서관에서 오랜 시간 책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식당에 맛있는 돈가스를 먹으러 갔다. 가지런하게 놓아져있는 네모난 돈가스를 잘게 썰어 한 입에 쏙 넣을 때면 마치 열심히 책을 읽어서 상을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자연스럽게 도서관에 가는 습관을 들인 덕분에 나는 책과 함께 무럭무럭 성장해갔다. 그리고 어느새 평촌도서관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되었다.
하지만 평촌도서관에 가는 발길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현실에 이리저리 치여 책과는 점점 멀어진 탓일까. 책보다 공부가 더 중요하다는 핑계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일부러 멀리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엄마도 나에게 도서관에 가자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기억이 바래질 정도로 책과 거리를 두며 몇 년을 살아왔다. 그렇게 지금의 내가 되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예전보다 현저하게 많아지게 되면서, 나는 혼자 사부작 거릴만한 취미를 열심히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다시금 책을 읽는 것에 다시 재미를 붙이게 되었다. 단 한순간도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단지 잠시 동안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몰랐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도서관에 함께 가지 않겠냐는 내 말에 엄마는 대답 대신 활짝 웃으며 반겨주셨다. 그렇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함께 해온 평촌도서관에 대한 기억의 첫 페이지를 다시 펼쳐보았다. 종종 집에서 책을 읽는 대신 종합자료실에서 책을 읽고, 카페에서 공부를 하는 대신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다. 날씨가 산뜻한 날이면 도서관 앞에 있는 책 읽는 벤치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한껏 느끼기도 했다. 평촌도서관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렇게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금은 당연하듯 평촌도서관을 자주 찾는다. 예약한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가까워지면 엄마는 회사를 다니는 나대신 도서관에 가주신다. 그리고 내가 관심 목록으로 넣어둔 책, 미리 예약한 책, 읽고 싶었던 책을 몽땅 빌려주신다. 매번 부탁하는 게 미안해 쭈뼛쭈뼛 거리는 나에게 귀찮은 기색 없이 운동하는 셈 치고 다녀오는 거라며 호탕하게 대답해 주신다. 이제는 겨우 주말이 되어야 엄마와 함께 도서관을 갈 수 있다. 그래도 가끔씩 엄마와 나란히 도서관을 가는 발걸음은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도서관을 걸어가는 이십 여분의 길. 그 사이를 채워주는 엄마와의 도란도란 이야기 소리. 도서관에 가는 길은 언제나 혼자가 아닌 둘이었기에, 엄마와 함께였기에 외롭지 않았다. 이제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잠시 멀어져야 하겠지만, 새롭게 단장한 평촌도서관을 찾으러 또 엄마와 함께 걷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