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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희 Jan 04. 2023

떡국 싫어!

“싫어! 나 떡국 안 먹을 거야!”

어김없이 이번 새해에도 싫증 섞인 외침이 들려온다. 엄마는 1월 1일이 돌아올 때마다 언제나 아침으로 떡국을 끓여주시곤 한다. 누군가는 떡국을 먹는 것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떡국은 꽤나 특별한 음식 중 하나이다. 떡국은 일 년에 딱 한 번, 바로 이날. 1월 1일에만 먹는 까닭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살면서 떡국을 먹고 싶어서 입맛을 다신 적도, 엄마에게 손수 떡국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다. 그만큼 나에게는 친하지 않은 음식 중 하나일 테다. 예전에는 나이를 먹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어른이 되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좋았고, 그만큼 손꼽아 새해를 기다렸다가 기다렸다는 듯이 떡국을 먹었다. 심지어 열 살이 되던 해에는 드디어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었다며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떡국을 두 그릇 먹으면 나이를 두 살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누구보다 떡국을 더 많이 먹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이십 대 중반을 넘어 머지않아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점점 나이가 먹기 싫어졌다. 이 말은 결국 떡국을 먹기 싫어졌다는 말과 같다.​


매년 새해마다 찾아오는 떡국 레퍼토리는 무섭도록 똑같다. 엄마는 어김없이 아침 일찍 내 방문을 열어 잠에 들어 있는 나를 깨운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 내 마음은 밀어두고 기필코 나에게 떡국을 먹이기 위해서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떡국 속에 담겨있는 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떡보다는 만두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떡국은 더더욱 나에게 반가운 음식이 아닐 테다. 떡만둣국, 아니 차라리 만둣국을 먹고 싶은데 왜 새해에는 떡국을 먹어야 하는지. 오롯이 만두만 가득 담겨 있는 국이라면 조금이나마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을 수 있을 텐데. 하며 나는 가만히 떡국을 바라본다. 뽀얀 국물에 퐁당 빠져있는 동그란 모양의 떡과 포슬포슬한 만두. 짭짤한 김가루와 후추, 고소한 깨까지. 먹지 않으려고 굳게 마음을 먹었던 사실은 까맣게 잊고 못내 어쩔 수 없는 척하며 떡국 한 그릇을 비우고 만다. 바닥까지 훤히 보이게 아주 깨끗이. 그렇게 나는 떡국을 집어삼킨다. 나이를 집어삼킨다. 그렇다. 사실 나는 떡국을 먹기 싫은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이를 먹기 싫어 떡국을 핑계 삼아 투정을 부린 것뿐이다.​


매년 돌아오는 1월 1일도, 매년 엄마가 아침으로 만들어주시는 떡국도, 매년 떡국을 먹기 싫다고 소리치는 나도. 매년 돌아오는 이 당연한 레퍼토리가 지겨울 때도 있지만, 이 삼박자가 완벽히 맞아야 비로소 완전한 새해가 찾아온 것일 테다. 올해도 어김없이 새로운 해가 밝아왔다는 다행스러운 신호일 테다. 누군가는 아직도 한참 어린데 건방지게 벌써부터 나이가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냐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살았던 나이 중에 지금이 가장 많은 나이라고. 그러니 같이 나이를 먹어가는 동지로서 함께 슬퍼하자고. 그렇게 나는 벌써부터 내년에 먹을 떡국을 걱정하며 새해를 보낸다. 아, 내년부터는 떡국이 아니라 만둣국을 먹어볼까. 어쩌면 조금은 특별한 새해를 보낼 수 있을지도. 그렇게 나는 벌써부터 내년에 먹을 만둣국을 걱정하며 무사히 새해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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