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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언 Sep 16. 2020

양자택일,
사수 옆자리 vs 통로 옆자리

Jari maketh man

파티션 없는 사무실은 이 회사가 처음이었다. 첫 출근하던 날, 애써 태연한 척 자리에 앉았지만 왠지 모르게 헐벗은 기분이었다. 아니 글쎄, 눈알만 살짝 옆으로 굴려도 옆 사람 모니터가 보였다니까. 뭐 지금이야 적응이 될 대로 되어서 오히려 파티션이 생기면 답답하고 불편할 것 같지만 어쨌든 첫날의 그 당황스러움은 나에게 꽤 많은 사람과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할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우연히 시작된 토론의 주제가 바로 ‘사수 옆자리 vs통로 옆자리’였다.


사수 옆자리를 택한 이들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100명의 눈길을 받느니 사수의 눈길을 받겠다’였고 통로 옆자리를 택한 이들은 ‘사수의 눈길보다는 100명의 눈길을 받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토론은 각자의 취향과 업무적 특성 등에 따라 저마다의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결론은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막상 듣고 보면 쉽게 답을 내릴 수 없는 뜨거운 토론 주제가 될 만큼 직장인에게 자리배치란 매우 중요한 요소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자리는 직장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며, 자리가 업무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그렇다면 자리가 업무환경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풍수자리론


좋은 자리

창가자리(창문 있는 고시원, 오션뷰 객실, 한강 조망권 아파트에 버금가는 인기)

뒤에 아무도 없는 자리(학창시절 많은 학생들이 뒷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나)

벽 옆자리(양쪽에 사람이 있는 것보단 한쪽에 있는 게 낫지)

나쁜 자리

사수 옆자리(업무적 거리가 가깝다고 물리적 거리도 가까울 필요는 없으니)

내 모니터가 남에게 잘 보이는 자리(통로 옆자리, 복사기 옆자리 등)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리는 좋은 자리, 그렇지 못한 자리는 나쁜 자리인 셈이다. 일각에서 누군가는 업무 중 딴짓하려고 구석진 자리를 선호하는 게 아니냐 하겠지만 시선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꼭 소개하고 싶은 ‘파놉티콘’이라는 개념이 있다.


파놉티콘(panopticon)은 ‘모두(pan)’+‘보다(opticon)’의 합성어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법학자인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원형구조의 신개념 감옥을 의미한다. 소수의 감시자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수의 수용자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교도관이 언제 수감자를 감시하는지 알 수 없게 설계되었다. 따라서 ‘교도관이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과 ‘주변 죄수들이 실제로 보내는 시선’이 합쳐져 수감자는 교도관이 있든 없든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게 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시선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으로부터 스스로를 통제하는 데에 신경이 쏠리고 무언가에 100% 집중하기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자리에 많이 예민한 편은 아니라 어느 자리든 곧잘 앉지만 각자가 선호하는 조건과 환경이 다르다는 것만큼은 백번 공감할 수 있다. 내 자리가 현대사회의 파놉티콘이라니, 이 얼마나 숨 막히는 상황인가.


이번 글에서 소개한 건 ‘시선’이 끼치는 영향이지만 그 외에도 업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조명, 온도, 습도 등) 이러한 개인차를 인정하고 우리 회사는 그 어떤 환경에서 업무를 하던 신경 쓰지 않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정착돼있다.


덕분에 이번 사무실로 이사 오면서도 이를 중점으로 고려한 오피스 공간을 꾸렸다. 개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고 집중을 돕는 업무 공간,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까지 모두 개인의 취향과 업무 특성에 맞추어 그날의 공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그래서 지금도 누군가는 폰부스에서 노트북과 함께 씨름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탕비실에서 당 충전과 함께 업무를 하고 또 어떤 팀은 1층 로비의 카페에서 리프레쉬와 아이디어 회의를 한 번에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각자를 각자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사내 분위기가 매우 개방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이런 환경에서 근무하다 보니 꽤 괜찮다. 아니 사실 되게 좋다. 모든 회사에서 파놉티콘 요소만 제거해도 그 회사의 생산성은 올라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길 정도다. 실제로 나는 원래 집중력이 좋은 편이 아니었는데, 여기선 굉장한 집중력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키보드를 두드릴 때가 많다.



Jari maketh man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속담은 직위에 따라 사람이 어울리는 모습으로 변한다는 뜻이지만 나는 그 속담을 좀 더 직관적으로 해석해보았다.


시디즈는 의자가 인생을 바꾼다 했고 킹스맨은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하지 않았던가.

그 둘을 합쳐 보자. 나는 앉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ps. 사수 옆자리 vs통로 옆자리의 난제는 끝까지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팀장님! 그래도 저는 팀장님 옆자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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