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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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불문,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2030 세대들이 한 번쯤은 겪었을 법한 질풍노도의 시기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특히, 가족 간의 갈등과 개인적인 방황이 고조되는 과정에서 공감 가는 요소가 많았다.
엄밀하게 보자면, 평범함에도 살짝 못 미치는 수준의 경제적 환경을 가진 주인공 크리스틴은 조금씩 발현되는 독특한 개성을 마음껏 노출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억압하는 주변의 모든 장치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장치는 어머니의 잔소리, 아버지의 걱정, 사랑과 우정에 대한 회의 같은 것들이다. 그 와중에 흔들리지 않고 꿈을 좇아 나아가려 하지만, 이번에는 부담스러운 학비와 부족한 성적이 발목을 잡는다. 나도 그랬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성향은 비주류와 가까워지고,
하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것들은 하나같이 비용이 많이 든다.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부모님은 가족의 생계를 어렵사리 유지하는데 고군분투하느라 점점 지쳐간다.
절친의 사소한 말장난에도 쉽사리 화를 낼 정도로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고,
처음으로 사랑이라 느꼈던 대상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무엇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 없이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처럼 정신을 옥죈다.
처음으로,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한다. 곧 서른이 되는 현재의 시선으로 당시 내가 힘들다고 느꼈던 요소들을 복기해보면, 그만치 순수하고 솔직했던 때가 있었나 싶어 가벼운 실소가 흘러나온다.
매 순간 느끼는 감정에 충실하고, 확실한 계획도 없지만 막연히 희망 가득한 미래를 그리는 시기.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열정적으로 소리칠 줄 알고, 반드시 쟁취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성장의 페이지.
육체적 변화에 다소 두렵지만, 이내 수용하고 성과 사랑의 신비로움에 매료되는 젊음.
'새크라멘토의 철로 옆 구린' 동네에 사는 크리스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으로서의 성장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느낌이긴 하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다.
특히, 크리스틴이 느리지만 천천히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잔소리꾼인 크리스틴의 어머니가 남몰래 딸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한 감동이 있다. 이제야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두 세대의 여성에게 각각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트러블 메이커지만,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아버지의 슬픔을 몰랐다는 사실에 풀이 죽는 크리스틴과 대학 진학으로 딸과 이별하는 순간에도 결코 살갑게 대하지 못하다가 떠나고 나서야 차 안에서 흐느끼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말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는 프롬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를 고르는 매장에서 크리스틴이 본인의 취향과 감정에 공감해주지 못하고 다그치기만 하는 어머니에게 내뱉는 말이다.
"이게 내 최선의 모습이라면?"
때때로, 부모들은 자식이 흠결 없이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 그들을 다소 기계적으로 다루려고 한다. 본인들도 겪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도 그럴 것이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감상적인 연민과 이상의 실현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방어기제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본다. 이런 관점에서, 어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의 아무렇지 않은 척 슬픔을 억누르다가 점층적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연기가 크게 와 닿았다. 떨어져 지내는 어머니 생각도 났고.
첫사랑으로 여겼던 남자 친구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하지만, 본인의 성 정체성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불안감을 내비치자 따듯하게 안아주는 장면. 성향과 어울리지 않지만, 두 번째 사랑을 위해 특정 무리와 형식적인 친분을 쌓다 진실로 자신을 아껴주었던 절친에게 돌아가는 장면에서도 차근차근 주체성을 발견해 나갔던 '우리들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성장의 진정한 의미,
자식과 부모가 어떻게 다르고, 또 같은지.
더불어, 성공과 실패를 떠나 사랑과 꿈이 왜 인생을 배우는데 필수적인 자양분인지를 과장 없이 조명한다.
요즘은 이런 담백한 작품들이 더 큰 깨달음을 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