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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16. 2020

#작은아씨들

울림 있는 고전의 현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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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소설인 '작은 아씨들'을 읽어 보지 못했는데, 이 작품이 마치 한 편의 소설을 대신 속삭여 주는 듯했다. 남북전쟁으로 혼란한 세상의 풍파를 각자의 꿈과 주체성으로 헤집고 나가는 네 자매의 이야기는. 지금껏 한결같이 '여성'의 삶에 집중해 온 그레타 거윅 감독을 만나 새롭게 탄생했다.


네 자매의 꿈이 각각 배우, 작가, 음악가, 화가와 같은 예술가로 설정된 것 역시 흥미롭다. 성별, 시대와 관계없이 예술가들은 시대불문 가장 정체성이 짙고, 있는 힘을 다하여 삶을 향유해온 존재들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사상과 독창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대부분의 경우 그 표현의 대상은 다양한 '인간 군상'이다.


거윅 감독은 이러한 예술가들의 천성적 개성과 현대 사회의 진보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여성상을 매끄럽게 연결 지었다. 덕분에 19세기가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이질감이 들지 않고 오히려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네 자매 중에서도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인공 '조'의 경우 분명 당대 여성상과는 다른 성격과 가치관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배타적이거나 무례하지 않다. 오히려 본인을 굉장히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렇게 파악된 본연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할 뿐이다. 몇몇 장면에서 마치 여성의 삶을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특정한 프레임으로 규정짓곤 할 때,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은 선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태도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날이 기울어가는 가세에 굴하지 않고, 전쟁터에 있는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배려하고 부양하고자 노력하는 따듯한 성품도 충분한 시사점이 있다. 핵가족을 넘어 가족 구성원 간 '단절'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 시대의 삭막함.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도 모른 채 경쟁에만 매몰된 치열함. 그것들에 치여 가장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들을 돌보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젊은 세대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후반부 가족에게 큰 시련으로 닥친 사건 이후 자신이 느끼는 모호한 감정에 대해 어머니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 친구로만 생각했던 이웃집 소년 로리가 사랑을 고백할 때 본인의 결혼관과 독립성에 대해 가감 없이 드러내는 장면 등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젊은이들이 고민할 수 있는 혹은 맞닥뜨릴 수 있는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몰입도가 높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외에도 영상미, 신성부터 베테랑 배우들의 조화, 교차 편집을 통해 서사에 따른 음과 양의 질감 표현 등 주목할 만한 요소가 많다. 특히, 최근 떠오르는 배우 '미드 소마'의 플로렌스 퓨,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가 신선하고 안정적인 조연 역할을 맡았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는, 결국 '인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여운이 밀려온다.


수동적으로 사랑받기보다, 진정으로 본인의 마음을 좇고

전형적인 여성의 삶 대신, 작가라는 꿈을 향해 정진하며

어린 시절 깊은 추억을 나눈 가족을 언제나 사랑하고 아끼는.


나 역시 진실로 '조'처럼 흔들리 지언정 끝내 직진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연유는 알 수 없지만, 갑자기 <빠삐용>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인간으로서의 중죄, 인생을 낭비한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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