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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Feb 05. 2017

about MOVIE_라이언

뿌리와 가족

누구나 살다 보면 한두 번쯤 정말 예기치 못한 우연과 운명의 순간들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토록 '드라마틱한' 경우가 또 있을까 싶다. 가장 최근까지 현재 진행형이었던 실화라 피부로 와 닿는 부분이 있어 그렇게 느낀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구글어스'로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은
실로 아름다운 기적임에 틀림없다.


성인이 되어 마침내 고향을 찾은 '사루'


영화의 구성적 측면에서 보자면, 개인적으로 전반부가 조금 지루하긴 했다. 다섯 살 어린아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7600km나 떨어진 호주의 한 가정으로 입양되었는지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다소 많은 시간 동안 입양 전의 스토리가 전개된 탓에 몰입감이 조금 떨어졌던 것 같다. 그리고 후반부 클라이맥스에서 터지는 '감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전문 배우로서의 경험이 부족한 아역배우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부족함'을 체감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주는 감동이 결코 가볍지 않은 것은 동시대 비교적 비슷한 또래의 입장에서 분명 굉장한 기적임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대한 의심과 그로 인한 정서적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고향에 남겨져있는 가족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루의 모습은 '가족의 해체'가 익숙해져 버린 현대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따듯하게 덮어주는 듯하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존재인 사루의 형 '만토쉬'

그러면서 영화는 입양아와 다문화 가정의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못 본 척 지나치지 않는다. 양부모인 수(니콜 키드먼)와 존(데이비드 웬햄)은 사루를 입양한 이후에 '만토쉬'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인도 아이를 입양하게 되는데, 지극한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감싸주려 하지만 이미 정서적 트라우마 자리 잡은 탓에 쉬이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고 겉돌게 된다. 사루는 양부모의 진심 어린 환대에도 자꾸만 이탈하는 형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데, 네 명의 인물이 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 것만 같아서 확실하게 누구의 편을 들기가 힘들었다. 그 말은 즉, 입양을 한 부모나 입양된 아이들이나 필연적으로 결핍과 상처를 떠안게 된다는 것인데, '사루'와 어머니 '수'가 서로의 진심을 표현하는 장면에서 이러한 부분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니콜 키드먼의 연기는 날이 갈수록 완성형에 다다르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대부분 작품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구심점 역할을 많이 맡았었지만,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면서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게 되었고 이번 영화에서처럼 조연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슴속에 강력한 훅 한방을 던져주는 것이다. 참으로, 부모란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입양아들을 훌륭하게 양육한 부모들을 보면, 정말 '가슴으로 낳았다'는 표현이 이해가 간다. 어느 작고 아름다운 존재가 성장해가는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고 보듬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생각보다 초월적인 헌신이다.


형태만 변했을 뿐, 본질적인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성인이 된 '사루'가 나오면서부터 스토리가 풍부해지게 되는데, 중심축은 가족과 연인 두 갈래로 나뉘게 된다. 앞서 말했듯 수와 존, 만 토쉬가 속해 있는 가족이 있고, 대학교에서 친구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 루시(루니 마라)가 사루의 곁에서 함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루니 마라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특히 수수하게 걸쳐 입은 옷차림과 옅게 미소 짓는 민낯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밀레니엄캐럴에서는 캐릭터의 색깔이 다소 독특한 편이어서 평범한 여성으로서의 연기가 쉽게 매치되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보다, 루니 마라의 담담하고 사랑스러운 연기가 너무 좋았다. 그동안의 필모를 보니 블록버스터와 같은 '대작' 혹은 '상업영화'보다는 독립영화나 다양성 작품을 많이 선택했던 것 같은데, 앞으로도 그 행보를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이번 영화처럼 잔잔하게 울림을 주는 드라마 장르의 분위기에 유난히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과잉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주는 일종의 편안함과 몰입감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지점을 적절하게 건드려 관객 입장에서 조금 더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성인이 된 '사루'와 여자친구 '루시'

정체성의 혼란이 갈수록 심해지는 사루의 옆에서 루시 또한 힘들어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의 곁으로 와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루는 자신의 고향을 찾게 되고 낳아주신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다행히,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25년간 고향 동네 근처를 떠나지 않고 살고 있었으며 저 멀리서 아들이 눈에 보이는 순간, 직감적으로 자신의 아들임을 확신하고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고향으로 떠나기 전, 사루는 키워 준 어머니 수에게 낳아주신 어머니를 찾더라도 당신의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이미 그에게 '진짜' 어머니는 두 명 모두인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담아 존경을 표한다.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어쩌면, 고통의 과정을 지날지언정 끝내 서로가 진심을 쏟아내어 다시 한번 화합하게 되는 순간 성숙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내 옆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여 소중히 여김을 멈추지 않고 표현하고 또 드러내는 순간 비로소 완성체에 가까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뿌리'를 알 수 없다는 것은 정말이지 엄청난 괴리감과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다섯 살의 사루는 5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돌봐준 어머니와 형제들의 온기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포기할 법도 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가족'은 그저 추억 속에 남겨둘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무릇, '인간'의 뿌리에 대한 회귀 본능은 때때로 경이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확립할 수 있는,
나아가 앞으로의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유일한 창구 이리라 생각해본다.


'캐롤'에서의 루니 마라. 단아하고 귀여운 모습이 잘 어울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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