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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16. 2017

해뜨기 전

내가 항상 동경했던 사랑의 형태를 가장 최적화시켜 보여 준


작품을 꼽자면 단연코 ‘비포 선라이즈’ 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성인이 되면서 때가 묻기 시작했는지,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그 우연한 만남이 사랑으로 연결된다는 식의 운명적 전개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것의 '수정안'으로 빈의 거리를 거닐며 나누는 담백한 대화들이 새로운 판타지가 되었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조금 놀랐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릇 영화라는 것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구분이 명확한 시점의 변화, 그러니까 눈에 띄는 서사가 있어야 하고 등장인물들이 다양하며 인과관계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작품 속 시간의 흐름이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경험을 처음 겪어 본 것이다. 그러면서 특별한 영화적 장치 혹은 인과관계없이 두 명의 남녀가 죽- 어떤 말들을 늘어놓는데 ‘이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몰입이 되는 것이다.


현재성 때문이다. 작품 속의 주인공들이 보내는 반나절 남짓한 시간이 최대한 편집을 배제한 채 '있는 그대로' 진행되다 보니, 관객들도 그 자연스러운 흐름과 분위기에 휩쓸리다가 어느 순간 ‘제시’와 ‘셀린’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가벼운 언쟁부터 이른 새벽 속삭이듯 읊조리는 W.H. 오든의 시까지.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는 모든 대화들이 마치 내가 직접 내뱉고,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거기에 빈의 야경이 조용히 방점을 찍으면, 잔잔했던 낭만 그래프가 마구 요동치게 된다.


영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아, 이런 게 정말 내가 원하던 사랑인데.’ 생각하면서 흐뭇해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그때인 것 같다. 이 사람의 형체보다는 내면이 궁금해지고, 어릴 적 일화를 이야기하며 옅게 웃음 지을 때 순수함이 보이고, 장난스러운 대화 이후에 눈을 깊게 응시하며 사뭇 진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때. 그리고 ‘비포 선라이즈’는 사랑이 시작되는 때를 과장 없이 '모든 이들의 어제처럼' 표현한다. 우리가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이유도 그래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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