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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pr 10. 2019

전향#1

건축공학 → 기획자 → 개발자

우유부단인가, 스스로에 대한 맹신인가


새로운 시작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어느 쪽인지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고민이 깊어질 찰나, 다시 한번 언제 그랬냐는 듯 냅다 질러버렸다.

타인에 의해 본인의 가치관이 침해당하는 것을 극도로 불편해하는 터라 되도록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오히려 내면의 소리에 바짝 귀를 기울이곤 한다.

마침내 세 번째로 선택한 직업 개발자.

선택의 옳고 그름은 잠시 제쳐놓고, 소회의 차원에서 길었던 여정을 되짚어보려 한다.




건축공학 전공

대학 전공으로 건축공학을 선택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소위 '사회적으로 평판이 좋은' 대학을 골랐고, 적성, 진로, 목표, 이상과 같은 것들은 고려사항에 끼지 못했다.

예상보다 저조했던 수능 성적으로 인해 목표 대학들 중 하한으로 여겼던 곳조차 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덜컥 겁이 났고, 그래서 최대한 합격 가능성이 높은 학과 위주로 지원했다.

그렇게 고난의 길이 열렸다.

평소 음악, 영화, 패션 등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어릴 적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반복해서 고민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적성'과 '성향'의 중요성을 깊게 체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특정 학기에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딱히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지 못했던 경험이 불씨가 되어 첫 전향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미 이전부터 두 차례에 걸친 IT 기업 대외활동, 광고 기획 인턴을 거치며 '기획' 직무를 제2의 진로로 잠정 선택한 상황이기도 했다. 해당 활동 중 주어졌던 미션들이 굉장히 흥미로웠고, 기본적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획의 특성상 창의적, 분석적인 성향과도 적절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기획자

기획 직무가 최선의 대안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재학 당시 짧게나마 맛 본 바깥세상과 내가 보유한 잠재력, 적성, 성향의 교집합을 고려할 때 적어도 '후회하지 않을' 선택인 것만은 분명했다.

기획자로 변모하면서, 가장 먼저 필요하다고 판단한 요소는 '실무 능력'이었다.

그래서 무작정 유명 대기업들의 인하우스 형태로 운영되는 광고 기획 계열사 채용팀에 이전부터 준비해뒀던 포트폴리오를 이력서, 자기소개서와 함께 발송했다. 그리고 어언 한두 달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이후에 1개월의 단기 인턴 계약을 맺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채용 지원한 전례가 없었다고 한다. 광고나 마케팅 관련 회사의 경우, 시기에 따라 트렌드의 급변, 막중한 업무량 등으로 인해 종종 계약직 충원이 필요한데, 보통은 직원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신속히 구인한다.

나는 동종업계 경력도, 관련 일을 하는 지인도 없었다. 그렇다면 직접 부딪히는 수밖에.

내부 담당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근자감'이 신기해서 뽑았다고 했다. 물론, 상하반기 시즌마다 진행되는 정기 공채에서는 불가능한 채용 루트이다.

어쨌든, 이 도전을 통해 한 가지 소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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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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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외활동 경험,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블로그 콘텐츠가 없었다면 포트폴리오를 제작할 수 없었을 테고 나아가 지원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될 대로 돼라', '어떻게 되겠지'라는 식의 회피는 본인이 바라는 결과를 절대, 그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하지 않는다. 보편적으로 납득할만한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비로소 기회, 즉 자격이 주어진다.

학기 중이었지만, 꿈을 찾아가겠다는 미명 하에 교수님들께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상경했다.

규모나 영향력면에서 명성이 자자한 회사였고, 지면, 옥외, TVCF 등 가리지 않고 크리에이티브 한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다.

주로 브랜드 팩트북과 간단한 보고서 및 개봉 예정 영화의 마케팅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았고, 여느 인턴이 그렇듯 출력과 잡다한 잔심부름도 담당했다. 계약 기간도 짧았고, 전문적인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중책을 맡진 못했지만, 곁눈질로 다양한 업무가 어떠한 프로세스로 진행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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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진리와도 같은 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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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회사의 분위기에 제대로 압도당했다. 바꿔 말하면, 이상적으로 꿈꾸던 모습의 근무환경은 아니었다. '행복한' 회사 생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선임들의 표정은 거의 매 순간 어두웠고, 어떠한 결과물에 대해 딱히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동기부여나 목표의식은 말할 것도 없고.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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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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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하게' 좋아했던 일이 생업이 되는 것만큼 비극적인 경우도 없다.

이른바 '덕업 일치'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야 시간이 흐를수록 대부분 자신의 한계를 체감하게 되고, 가슴속에 품었던 비범한 꿈들은 자연스럽게 '평범함'으로 치환된다. 그때부터는 생계유지가 제1의 목표가 된다. 슬픈 현실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그 일에 미쳐라'라고 말하지만, 도대체 '미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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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업이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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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산티아고 순례 여행, 원목 조명을 직접 제작 및 판매하는 소규모 개인 사업 등 몇몇 굵직한 이벤트를 벌인 다음 별 탈 없이 무난하게 학교 생활을 마무리했다. 친구들은 졸업 시기가 다가오자 대부분 시공사에 입사할 계획으로 취업 준비에 돌입했지만,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었다. 이미 학과 전공은 멀어진 지 오래였다. 명확하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려운 경제적 사정, 취업 압박감에 짓눌려 목표로 하지도 않았던 지역 내 창업지원 기관에 지원하게 되었고, 운 좋게 기획팀 정규직 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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