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이유, 기억의 이유
엄마, 추억은 죽지 않아!
작년 가을, 아홉 살 첫째는 처음으로 황순원의 소나기 책을 접했다.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에 오래도록 마음이 아파서 아이는 유독 힘들어하였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불현듯 깨달음이 왔는지, 아주 큰 소리로 "엄마! 추억은 죽지 않아!" 하고 외마디 비명을 외치더니, 독후감을 쓰기 시작했다.
아이는 독후감 마지막에 "나는 소녀가 불쌍한 마음이 들었고 소년은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추억은 소년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썼다. 앉은자리에서 연필 한번 안 놓고 쓰는 아이를 쳐다보며 어린아이들도 글쓰기에 있어 이렇게 작두를 타는 순간이 있구나 싶어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깨달음이 마음에 박혀 어떻게든 배출해내야 하는 짜릿한 순간이 느껴져서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가까이에서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다는 크나큰 특권이구나 싶기도 하다.
아홉살 첫째의 <<소나기>>독후감 (작년 가을)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들과 지금까지 지내며 다닌 모든 곳들을 조금씩 다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간단한 근교의 소풍부터 코로나 이전의 해외여행까지. 기록되지 못한 채 남겨진 몇만 장의 사진들은 이미 빛을 잃었고 어디 있는지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벌써부터 희미해져 버린 기억의 일부를 붙잡기 시작했다.
<<보통의 언어들>>에서 작가 김이나는 말한다.
"추억이 인화되어 액자에 넣어진 사진이라면, 기억은 잘려 나온 디지털 사진이다. 잘리기 전의 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몰랐던 것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지나가긴 했지만 소멸되진 않았기에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기억이 익어 추억이 되진 못하지만, 모든 추억은 결국 기억의 흔적이다. "
그렇게 나는 다시 아이들의 기억이 추억이 되기 위한 작업들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늘 변수 투성 이이다. 어른의 욕망에서 머물러야만 할 것 같은 곳은 스킵하고 뻔하다 생각하는 곳에서는 한없이 머무는 것은 다반사! 그런 아이들의 느린 그러나 때로는 전력 질주하는 발걸음에 맞추어 아이의 시선으로 만난 세상은 실로 새로웠다.
마카오까지 가서도 케이블카만 무한 반복해서 타는 아이들과 함께라면, 하루의 해가 저무는 모습을 케이블 카 안에서 지켜보게 된다. 지겨움과 답답함의 지점 끝에 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잔잔한 물결, 야경이 물결에 비친 모습, 매번 타는 케이블 카 안에서 아주 작은 변화의 지점들을 응시하는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해가 서서히 넘어가며 물결에 어떤 빛을 남기는지를.... 그런 시간의 흐름과 변함없이 밖에는 여전히 줄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넘친다는 것을, 그리고 유리에 비친 가족들의 모습이 보인다. 한 명 한 명 우리의 작은 표정의 변화까지도 아이들 눈에는 빠지지 않는다.
이 와중에 남는 것은 사진이라며 사진만 주야장천 찍어대는 나의 모습이 창피스러울 때는 바로 이럴 때이다. 아이들이 고요하게 응시하던 그 모든 것들. 나 역시도 그렇게 마음에 담고 싶은데 실상은 아이들이 어리니 그것이 금방 휘발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든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조금은 기록할 여유가 생겼을 때 글로 남긴다. 그렇게 한 때 '우리가 이런 여행을 했었지' 하는 기록이 온전히 남는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기억이라는 것이 참 얄궂게도 얼마나 왜곡되기 쉽고 자기만의 렌즈로 꾸려진 기억이 될 것이란 것을 알면서도 꾸역꾸역 기록하게 된다. 이렇게라도 남기지 않으면 마치 모든 것이 소멸될 것만 같은 초조함을 안고서! 아이는 하루하루 커간다. 언젠가는 이 아이를 이렇게 업고 다닐 날이 오지 않겠지. 다리가 아프면 업어주고 안아주고 신랑과 함께 무한 동지애를 품으며 함께 했던 시기가 까마득한 과거형이 될 날이 올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매일같이 글을 쓰는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비록 나만의 렌즈로 찍힌 하나의 순간이지만, 언젠가 확대하여 돌아보며 이 순간 지나치고 보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비밀의 보물창고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