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나의 글쓰기
글이 쓰고 싶었다. 쓰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났다. 마음에 무언가 이글이글 끓는데 정체가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눈물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글을 제대로 앉아서 쓴 적이 없다. 놀이터 바닥에 엎드려 무선 키보드를 두드렸다. 아이들이 잘 놀면 급한 대로 무엇이든 써서 남겼다. 종이가 없으면 휴지에 썼다. 야채를 자르는 중간,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데우는 중간에도 메모지를 옆에 두고 썼다. 길을 걸을 때는 핸드폰 녹음 기능을 이용해 말로 썼다. 아이들을 재울 때는 슬그머니 일어나 화장실 거울에 핸드폰 조명을 반사시켜 글을 썼다.
나의 글은 늘 조각이었다. 이어질 수가 없었다. 시간이 없었다. 앉아서 쓸 공간도 없었다. 사람들은 물었다.
"도대체 뭘 하는데 그래?"
대답 할 수 없었다. 나는 글을 쓰긴 했지만 작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얼 하냐는 물음에서 자유로워지려면 책이 되었든 상이 되었든 유형의 결과물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남들에게 이런 나의 마음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작아졌다.
나는 끈기가 있다. 한번 시작하면 반드시 끝을 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노력만큼은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다.
이런 나에게는 단점이 있다. 계획수립에 약하고 논리적인 것을 보는 눈이 없다. 글을 읽을 때도 나의 것이어서 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도 잘 보지 못한다. 또한 느리다. 느림에 익숙해진 나는 괜찮은데 이런 느림을 기다리지 못하는 주변인들은 안타까워한다. 나는 싫어하는 것들이 없다. 좋은 이유는 많아도 싫은 이유를 찾지 못한다. 음식도 책도 마찬가지다.
나의 이런 성향때문에 글이 더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어느 순간 나조차 나의 글이 답답하다. 나아가고 싶은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똥이 차서 참을 수 없어 싸긴 했는데, 내가 사용한 변기가 고장 난 변기였음을 뒤늦게 안 심정이었다. 물이 내려가지 않는 변기 가득 싸놓은 똥을 치우지 못하는 찝찝함, 그것이었다. 궁극적으로는 변기를 고쳐야 했고 급한 대로 뚫어 뻥으로 똥을 퍼내야 했는데, 나는 뚫어 뻥을 어떻게 사용해야 좋을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변기가 똥으로 가득 차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 화장실 안에 내내 갇혀 있을 수도 없다. 결국, 합평을 동반한 글쓰기 수업을 용기 내어 수강하였다.
편집자의 시선으로 보는 글이 새로웠다. 피드백을 듣고 보면 "아!" 하는 것들이 여전히 쓸 때는 보이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면 더 못쓰겠고 잘 쓰고 싶은 마음이 글을 쓰고 싶은 간절함 보다 커져버리면, 더더욱 못쓰겠다. '아, 이런 것이 산으로 가는 것이구나.' 싶다.
논리력 부족으로 여전히 글이 어떤 구조와 흐름을 가져야 좋은 글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결점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글을 향한 나의 마음을 다시 보게 된다. 간절히 쓰고 싶었던 마음과 그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내게 필요했던 결과를 되돌아본다. 글을 쓰는 진정한 의미와 동력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리고, 이제서야 조금씩 알아가는 나의 글의 단점들이 보인다.
'아직은 때가 아니구나.'
많이 읽어야겠다. 좋은 글은 필사 해야겠다. 그동안 수집해 놓고 열어보지 않았던 먼지 묵은 문장 수첩을 한번 정비 해야겠다. 그동안은 똥을 싸는데 급했다면 이제는 장을 잘 다스려 봐야겠다. 한 번에 똥이 밀려 나오지 않게 미리미리 대비하면서 건강한 장을 만들어야겠다. 끈기와 노력의 힘을 발휘할 것이다. 나는 찌그러질지언정 바스러지지는 않으니까.
글쓰기 수업이 차곡차곡 쌓이고 필사가 끝날 즈음에는 부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아! 이제 황금 똥을 쌀 수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