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어

나의 결에 맞는 색으로 신나게 오늘치 글을 쓴다

by 고요

글쓰기 수업을 듣기 전 지속적으로 고민하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삶이 보기에 따라 평탄해 보이는 무던한 삶이라는 사실이다. 가진 것이 많다고도 할 수 없지만 없다고도 할 수 없었고 물질적은 결핍 또한 없었으니, 이런 인생은 글쓰기에 사치 같았다. 내 삶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흔히 갖고 있는 공통된 특성이 빠져있었다. 고통. 확연히 눈에 보이는 고통 없는 생활은 글을 쓰기에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힘겨운 삶을 뚫고 나온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가 암흙 속에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인다. ‘이런 삶을 살아내야 글을 쓸 수 있는 거구나.’하며 스스로를 판단하고 가두었다.


도스토옙스키는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도시를 부정하고 자연을 동경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토대인 도시에 충실했다고 한다. 도시 속에 갇힌 채, 인간 내면을 탐사했다. 그렇게 그만의 '닫힌 느낌'을 정체성으로 구축했다. 농촌의 감수성과 자연에 대한 열망 대신 자신의 세계에서 감각하며 글을 썼다.


보기에 따라 평탄해 보일지 모를 나의 삶 역시 내가 살아온 유일한 삶이다. 숨 쉬고 느끼고 경험한 진짜의 내 것이다. 날 것의 비린내가 난 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인정하련다. 이 삶에 충실하련다. 무작정 ‘나는 안돼! 글쓰기에 너무 편한 길을 걸었잖아.’ 하며 나를 채찍질하여 쫓아내지 않으련다. 고난을 뚫고 나온 사람이 쓸 수 있는 글이 있고 나 같이 겉보기에 편해 보이는 전업주부가 쓸 수 있는 글이 있다. 나의 결을 찾고 만들어 보련다. 편평한 아스팔트 길을 달리다가 가끔씩 움푹 파인 자국을 만난다. 내 삶도 그러하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보이는 파임들이 나만의 무늬와 결을 만들어낼 거라 믿는다.


에메랄드 빛 잔잔한 바다, 깊고 진한 심해, 뻘이 심한 바다, 파도가 유독 세게 들이치는 바다, 모두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만나고 싶은 바다는 다르다. 짐승처럼 강렬하게 포효하고 쉼 없이 생동하는 바다를 만나고 싶은 자는 고요한 에메랄드 빛 바다를 찾지 않겠지. 집어삼킬 듯 끈적이나 그 속에 살아 움직이는 온갖 생명체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갯벌을 찾겠지. 이는 필요와 취향의 차이. 나의 결을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선호도의 차이. 그러니, 굳이 다수가 좋아하는 결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으리라!


따뜻하고 소소한 삶 속에서 보물을 찾는다. 소중히 캔다. 간직한다. 나눈다. 기억을 소유하는 가장 우아하고 멋진 방법으로 글을 선택하고 싶다. 그리고, 글 안에서는 나만의 결을 마음껏 내보이고 싶다.

내가 지내온 삶 안에서 소중하게 한 줄씩 써 나간다. 지금까지 나는 나답게 살아왔고 그것은 나만의 글감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새빨갛고 새파란 색을 손에 쥐었다가 과감히 내려놓는다. 파스텔 톤 잔잔한 색의 물감을 손에 쥔다. 마음이 편하다. 나의 결에 맞는 색으로 신나게 오늘치 글을 펼쳐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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