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따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수줍은 자의 고백

by 고요

도서관에 잠시 들를 시간조차 귀했던 요즘, 귀하게 들른 도서관에서 즉흥적으로 책을 세 권 들고 왔다. 이슬아 산문집 <<심신단련>>이 그중 한 권이었다. 질리지도 않는지 하루 종일 놀이터에 있는 아이들을 보며 햇살 한가운데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릴레이 자가격리 끝에 오랜만에 나왔던지라 그 사이 해가 이토록이나 포근해졌는지, 바람에 찬기가 많이 빠졌는지, 연둣빛 새싹들이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나는 두꺼운 롱 패딩을 이불 삼아 뜨끈뜨끈 땀이 솟는 등을 느끼며 봄 햇살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아이들의 소리들이 엉켜, 여기저기에서 불러대는 "엄마" 소리가 꼭 우리 아이 소리인 것만 같아 고개를 들었다 숙였다를 반복하며 읽어 내린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특히 <수줍은 흰 어디에>라는 에피소드에 마음을 푹 빼앗겼다.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수줍은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움츠러든 채로 무리 속에서 조용히 움직이기 때문에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어떤 수줍은 사람은 너무 수줍어하는 나머지 더 눈에 띄기도 한다." (p.177)


살아오며 나 역시 눈에 띄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눈에 띄게 되면 의지와 상관없는 심장의 박동이 만들어내던 어버버 한 행동이 나오기 일쑤였고, 그로 인해 이불 킥을 하기 바빴다. 어색함에 늘 수줍은 책 속의 '희'의 형태가 나와 너무 닮아있어 숨을 죽이며 읽게 된다. 여기저기에도 섞여있지만 움츠러든 채 있기에 얼핏 보면 놓치고 지나가버리기 쉬운 존재에 대해! 나를 닮고, 나의 아이들을 닮은 그런 존재에 대해! 놀이터의 저 많고 많은 아이들 중에서 꼭 투명인간처럼 놀고 있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 보인다. 남들은 신경도 쓰지 않을 작은 것들에 어쩔 줄 몰라하고 수줍어 결코 먼저 다가가지도 못하면서도 놀고 싶은 마음에 뱅뱅 맴돌다 다시 돌아오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진다.


책 속 희.라는 친구는 수줍고 내향적이고 눌변이지만 제때에 떠드는 사람들이 결코 쓰지 않을 문장을 쓰고 말로 휘발돼 버리지 않는 것들이나 말해놓고 부족한 것들을 다시 말해야 할 이야기들을 쓴다. 수줍어서 듣는 데에 도가 터 버린 사람이 발휘하는 우아함을 작가는 이야기한다. 그런 수줍은 희가 어느 날 친구들 앞에서 훌라댄스를 춘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 춤은 말을 곧잘 더듬던 누군가가 갑자기 낯선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때처럼 놀라웠다. 말보다도 훨씬 근사한 거였다. 말 따위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p.187)


희가 내었던 용기에 전율이 흐른다. 말을 잘하지 못하는 것, 달변이 아닌 것, 치고 빠져야 하는 부분을 잘 모르겠는 것, 단체보다는 소수의 그룹이 더 마음이 편한 것,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한 것, 그리고, 때로는 마음보다 몸이 더 그런 나를 표현해 보이기 좋은 도구라는 것을 언제부턴가 깨닫게 되었기에, 어쩌면 그래서 나는 뛰고 있기에 그러하였는지도 모른다. 비록 몸치라는 거대한 벽을 뚫지 못하여 춤의 세계에는 가지 못하지만 무식하게 뛸 수 있는 두 다리가 있음에 감사하며, 오늘 하루치의 뜀박질을 마치고 왔던 터! 그렇게 앉아 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에서 쪼그려 앉아 읽은 내게 들어온 반짝이는 이 순간의 전율.


누군가 왜 그렇게 못 뛰어서 난리냐고 물었던가. 하고 싶은 말은 둘째치고 해야 할 말이 나오지 않아 답답하고 늘 수줍은데 그나마 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뛰다 보니 만들어진 근육들이 언젠가는 마음까지도 단단히 만들어줄 거라 믿었을 뿐. 어느 날 시간이 흘러 용기라는 것을 조금씩 흘려보낼 날들이 올 것이라고도 믿었을 뿐. 멋진 삶을 사는 요령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조금씩 흘러들어오는 것이라고 믿었을 뿐.


아름답고 싶어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나 흐르고 흘러 종착한 지점에는 늘 아름다움이 있음을 경험하며 나이가 든다. 그것은 비단 외모나 결과에만 메이는 것이 아니다. 때마침 오늘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에 대한 비난조의 글을 보게 되었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맞아,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지." 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고도 남을 단상이었을 터. 하지만, 이제는 안다. 몸도 마음도 아름다움이라는 경지 앞에서는 그저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바탕에는 용기가 있다. 용기는 비로소 드러날 때 반짝하고 빛나기 때문에 말이다. 너그러운 마음의 미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 용기 또한 포함될 것이기에.


"수줍은 흰 어디에 있는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었다. 가끔은 있는 듯 없는 듯하였으나 어떤 오후에는 훌라로 모두의 시선을 자신에게 모으기도 했다. (...) 서로 다른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 뒤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p.189)" 마지막 문장을 마치며 고개를 든다. 따뜻한 봄 햇살에 살짝 찡그린 눈앞, 나의 아이들은 어느덧 힘겹게 어느 한 그룹에 속해 같이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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