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급회장 선거

너는 그저 너를 살면 되는 거야.

by 고요

딸아이네 학급 회장과 부회장 선거를 하는 날이었다. "너도 나가고 싶어?" 묻자, 아이는 단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는 발표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냥 안 하고 싶어."


나 역시 그러했다. 다만 내가 지낸 1980년대 후반 국민학교에서는 비인간적으로 반장과 부반장이 시험 성적으로 자동 결정되었었다. 1등이 반장, 2등이 부반장. 남 앞에 서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던 내게, 늘 3월의 첫 시험은 일부러 더 많이 틀리는 전략을 구사하게 만들었다. 정 피할 수 없다면 그나마 반장이 아닌 부반장이 되는 것이 그 목표였다. 자존심이 상하니 너무 많이 틀리는 것은 싫었고 올백이 아닌 어느 정도를 틀려야 안전하게 부반장 선에 들까 소심하게 고민하고 고의적으로 틀린 답을 적어 내곤 했다. 고학년이 되고부터는 선거제로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후보를 나가지 않으면 뽑힐 일이 없다는 사실에 안심하며 편안히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아이가 회장 후보에 나가지 않겠다 하길래 쿨하게, "그래. 잘했어. 다음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언제든 하면 되지."하고 넘겼다. 동시에 핸드폰 속 카톡이 바쁘다. 누구누구도 회장 후보라 하며 함께 지내던 아이의 친구 전원이 모두 준비를 한다고 한다. 단 한 사람, 우리 딸만은 애초에 자신은 원치 않는다며 자리를 피했다. 당선이 된 친구는 친구대로 아닌 친구들은 아닌 대로 2학기 때 다시 준비를 한다며 의지를 다졌다. 역시, 단 한 사람, 우리 아이만은 거기에 있어 확고히 "나에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했다.


학부모가 되어 단체 카톡에 들어 있는데, 모두가 리더를 준비하는 시점에서 우리 집만 하지 않고 있다는 것, 다음을 준비하고 싶다는데 우리는 다음 또한 없을 것이란 것을 그다지 별수롭지 않게 알렸다. 그리고 지속해서 울리는 대화창을 보며 그동안에 없던 초조함이 갑자기 몰려왔다. "내가 이 방에 있어도 되는 것일까?"


정작, 나는 아이가 회장 후보를 나가지 않는다 하여 "아싸"를 외쳤고, 어린 시절 내가 겪었던 비자발적인 역할로 인해 소모한 책임감과 마음씀으로 인하여 아이의 선택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비추어졌을까? "왜 그 집 아이는 똑 부러지게 자기 할 말 다 하면서, 이런 건 또 안 나간대?" 하지는 않을까? 혼자 소심해져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펴다 한없이 움츠려 들었다.


급식을 마치고 와도 늘 배가 고픈 아이가 밥상 앞에 앉았다. 그런 아이에게 따끈한 밥을 다시 내어주며 마주 앉았다. 아이의 눈을 보며 웃었다. 아이가 내게 묻는다. "왜? 엄마? 내가 회장 안나 간다 그래서 실망했어?"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난다. "아니야 안아, 엄마도 너만 할 때 정말 그런 회장 되기 싫었어. 일부러 안 한다 하고 하고, 혹시라도 될까 봐 안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그랬어. 너 보니까 갑자기 그때 엄마 생각이 나서. "

아이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뭐야. 엄마도 그랬어?" 기질이 180도 다른 우리 둘 사이에 닮은 구석이 있다니! 허허허. 나는 말을 이었다. "안이가 선택하는 일이고, 엄마는 그 선택을 존중해. 나중에 나가고 싶으면 그때 가서 나가면 되고, 그렇지 않다 해도 괜찮아. 안이가 안이로 행복하게 지금처럼 잘 지냈으면 좋겠어." 아이가 환히 웃는다.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채워 넣고는 입안에 넣고 씹으며 "엄마, 고마워." 한다.


카톡은 여전히 바삐 울린다. 모두가 도전한 친구들이 멋지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도전하지 않은 아이에게 "너 또한 멋지다."고 이야기해준다.당선된 친구 엄마들에게 축하의 카톡 인사를 한가득 보내고, 당선되지 않은 친구 엄마들에게도 도전한 아이가 장하다며 칭찬을 한가득 보냈다. 카톡 안에는 당선/비 당선 두 가지로 나뉘고 그 안에서 단 한 사람, 오직 '나'만이 아예 나가지도 않은 자에 속해 있다. 나는 이것이 편하다. 나의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되고 아이의 일에 관여하지 않아도 되고 무색무취의 사람에 익숙한 나에 맞게 잘 지낼 수 있도록 아이가 깔아준 밑밥 인지도 모르겠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는데, 엄마가 돼서도 벌벌 떨지 않게 해 주려고 아이가 벌어준 작은 자유였다. 잠시나마, 타인의 눈치를 보고 남들이 나를 그리고 우리 아이를 포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을 가진 나 스스로가 창피해졌다.


오늘 아이에게 말했듯, 나에게도 말한다. "나는 그저 나를 살면 되는 거라고! 일부러 맞출 필요도 대세에 따를 필요도 없는 거라고! " 어쩌면 이 긴 세월을 살고 다시 열 살을 사는 나에게 이 말을 해주고자 딸아이가 내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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