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여행 Apr 20. 2022

사고의 기억을 찾다. 감사의 기억을 쓰다.

살아가며 내가 가져가야 할 것들에 대하여

일어나 창문을 연다. 하늘이 파아랗다. 라일락 향기가 바람을 타고 코 끝에 닿는다. 정신없이 바빴던 한 주의 끝, 일요일이다. 오랜만에 지금은 신랑이 된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마음이 분주하다. 스물여덟 살의 봄, 가장 좋아하는 진한 남색 원피스를 입고 머리를 푼다. 렌즈를 끼고 옅은 화장을 한 후, 거울을 본다. 봄바람 같은 나의 모습이 왠지 좋다. 


A라인으로 떨어진 러블리한 원피스를 입으니 발걸음조차 가볍다. 주중의 펜슬 스커트 속 발걸음과 걸음걸이부터가 다르다. 긴장된 종종걸음이 아닌 가벼운 축지법처럼 있는 힘 껏 보폭을 넓혀 휙휙~ 웃으며 걷는다.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워 보이겠지? 하며 실없이 피식 웃는데, 바로 왼쪽 귀에서  애애애앵~~~~~ 굉음이 들린다. 


뭐지? 하고 고개를 돌리는 찰나, 무언가 몸을 팍. 하고 쳤다. 

퍽! 하는 굉음과 함께 붕! 몸이 뜬다.

양발의 구두가 벗겨진다.

하늘을 날고 있다. 

저만치 파아란 하늘을 향해 나의 몸이 난다. 

라일락 꽃나무를 지나, 45도 각도로 계속 올라간다.

바람이 라일락 향기와 함께 치맛자락을 부풀어 올린다. 


하늘을 날고 있는 시간은 비현실적이다. 영화 속 장면처럼 정지된 채 시간이 늘어진다. 뜬 눈으로 내가 보는 것은 저만치 하늘인데, 마음의 영상들이 상영된다. 하늘을 날며 내가 보았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들의 얼굴들, 가족들과 웃으며 행복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분명 마음으로 본 것일 텐데,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내 쿵. 하고 몸이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들어야 해! 하며 몸을 앞으로 쏠리게 하고자 온갖 힘을 썼다. 낙법을 배워둘걸 하면서.


눈을 떴다. 이곳은 하늘나라일까, 하는 찰나, "눈 떴어요? 정신이 드세요?"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눈앞에는 앰뷸런스가 와있고, 피자 배달 오토바이 청년은 어쩔 줄 몰라하며 사과하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마구마구 질문을 했다.


119 버스 안에서 부모님께 연락을 했다. 

"사고가 났어."

"누가?"

"내가."

"괜찮아?"

"지금 아산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어."


보호자 없이 응급실에 실려간 채, 여기저기 이끌려 검사를 받고 외삼촌과 남자 친구를 만났고,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울음소리와 비명소리 등에 그저 살아있음을 실감하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응급실에서 입원 가능한 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부모님이 오셨고, 오토바이 배달 청년이 찾아왔다. 손에는 주스를 사들고는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를 했다.


 "너도 넘어졌는데, 너는 괜찮니?"

엄마가 오토바이 청년에게 물어보신다. 

사람이란 게 그렇다. 교통사고로 처리되면 청년의 이력에 남는다 하여 그냥 합의를 하기로 하고 보험에서 처리받겠다고 하였다. "감사합니다"를 백번쯤 외치고 피자배달 오토바이 청년은 집에 갔다.


나는 몸이 낙하할 때의 충격으로 꼬리뼈가 전부 으스러졌는데, 엑스레이로 살펴보니 완전히 'ㄷ'자로 형편없이 구겨져있었다. "아직 결혼 전이신데, 나중에 혹시 아기를 낳게 되신다면 자연분만이 어려우실 수도 있습니다." 의사가 말한다.

허벅지 아래 부분은 바퀴에 부딪힌 대로 살점이 뜯겨 나갔는데, 흉이 크게 남을 수 있지만, 다리의 기능의 측면에서는  크게 심한 부상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게 나의 병실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변 줄을 달고 오줌이 시원하게 나오는 느낌 한 번을 느끼지 못한 채, 찝찝하고 갈증스런 병실생활을 맞이 하게 되었다.


그날은 다음 주에 이란 상무부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해야 할 국제회의가 있어 바쁜 찰나의 짬을 내서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다시 일어서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말았다. 의식이 있어준 덕에 병실에서 회의 준비를 하고 병실에서 업무 인수인계를 했고, 결국 나는 정작 이란 상무부 정부 관계자의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였다.


새로이 느끼고 배운 것이 많았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그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의 마음이 어떠할지.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간병인이라는 직업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구나. 응급실의 의사, 간호사들은 강심장, 강체력이어야 하는구나. 휠체어를 스스로 끌려면 어깨와 팔 힘이 좋아야 하는구나..


누워서 물 마시는 법,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환자복 갈아입는 법, 세수하는 법 등 이곳이 아니었다면 배울 수 없었던 것들도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였던 것 같다. 오늘을 살려고 애를 썼다. 먼 미래도 물론 생각하지만, 당장 내게 주어진 오늘 오늘을 살아내는 것이 우선시 되었다. 굳이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말이다. 그래서 내게는 더 쉬웠던 것 같다. 육아를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커리어를 내려놓는 것이. 일을 하면서 신나게 날아다녔던 행복했던 직장생활, 나의 일들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기에, 나는 괜찮았다.


사고가 나던 날, 공중을 날아가면서 분명 나는 나와 가족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를 들었고, 파노라마처럼 행복했던 순간들을 눈으로 보았다. 공중으로 날라 떨어지기 직전의 그 짧은 시간이 늘어나서, 그 짧은 시간 사이 나는 아주 천천히 케이크의 초를 부는 모습, 어린 시절 튜브를 밀어주던 아빠의 모습, 비 오는 날 우산을 들고 하굣길을 맞아주던 엄마의 모습 등을 파노라마처럼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어쩌면 환청이고 환영이었을 수도 있지만,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만 하늘을 날며 나는 분명 보고 들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어쩌면, 나는 단 한 번의 주저함도 없이 전업 엄마로 하루하루 아이들이 빛나는 눈망울을 보는 것에 미련 없이 동의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이 안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당장 내가 더 집중하고 싶은 '오늘'에는 아직 나의 손이 필요한 '작은 아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더 확고해졌던 것 같다. 어떤 물건이나 눈에 보이는 유형적인 것들이 아니라, 내가 정말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할 것들은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구나 하는 것이. 행복했던 기억, 즐거웠던 기억, 보람찼던 기억, 따뜻했던 사랑. 결국 지갑 속이 두꺼운 부자가 아니라, 머릿속에 마음속에 가득가득 담은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리고, 어느 순간 희미해진 이 사고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 사고를 당하고, 부모님께 연락을 했던 그 당시로.


너무 아파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당시 엄마, 아빠, 할머니께서 시골에 다녀오시는 길에 사고소식을 접하고, 급히 가고 있으니, 응급실에서 응급처치 잘 받고 있으라는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만난 엄마 아빠의 그때의 표정. 그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미소를 활짝 지어 보였던 것 같다. 본능적으로 웃어서 내가 괜찮다고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이만하길 다행이지. 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 또한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지! 아이가 조금만 다쳐도, 일단 패닉이 와서, 아이가 나의 소리에 더 놀라고, 나의 눈빛에 겁을 먹어버리는 엄마가 된 지금의 나의 모습을 보면, 이렇게 침착하고 따뜻하게, 상황은 비록 이러하였으나, 먼저 심리적 안정을 취할 수 있게 대처해주신 부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배달 오토바이 청년을 만나자마자 "너는 괜찮니?"하고 물어보아준 엄마! 우리 엄마의 스케일은 무려 이러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정말 묵묵히 응원해주신 부모님의 마음이 그저 감사해서, 늘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던 날들.

그런 날들이, 이만치 육아를 하면서 이만치 아이를 키우면서 이상하게 봉인 해제되어버린 나의 어린 시절의 잠재의식들의 방에 초대를 받았다. 그 방에서 길을 잃어버린 채, 소중했던 그날의 기억들이 희미해져 감을 깨달았다.


그동안 희미해져 내게 보이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이 도드라지게 생생하게 펼쳐짐과 동시에, 내가 서서히 희미하게 잊어버릴 뻔 한 이 사고의 기억들을 잡아본다. 


생생히 다시 잡아넣어, 아픔 안에 있던 부모님의 크나큰 사랑을 다시 생생하게 안고, 나의 마음의 방에 커다란 명패를 달아 놓고 싶다. "사고를 겪으며 느꼈던 내게 소중한 것들의 기억"이라고!

살아가며 내가 감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살아가며 내가 사랑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살아가며 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작가의 이전글 공상이 현실이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