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 옴팡지게 팔을 물려왔다. 이빨 자국 가득 피멍이 든 팔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나의 마음과 달리 아이는 가볍게 말했다.
“엄마, 모기도 나를 물잖아. 친구도 나를 물 수 있어."
그날, 아이의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모기는 원래 그렇게 태어났다.
모기는 살기 위해 피를 빨고 문다. 사람의 손바닥 가득 후려 잡아도 속이 후련하다. 하지만, 길바닥의 작은 개미는 밟으면 꿈틀거린다. 이 미물을 볼 때면 마음이 동요된다. 이것들을 통해 나를 본다. 그렇다. 나는 모기와 닮았다.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애쓰지 않는다. 그저 후려쳐지지 않길 바라며 하루하루 생존하는 모습이 닮았다. 먼지처럼 가볍고 무력해 보이지만 한번 물면 퉁퉁 부어오르게 하는 해충들의 흔적처럼, 기를 쓰고 살아내어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를 드러내는 삶도 비슷하다. 남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할까 늘 걱정하며 살았다. 작은 민폐도 용서받지 못할 큰 일이라는 생각으로 매일 긴장하며 지냈다.
'나는 왜 이리 어려운 걸까? 할 말을 하는 것이.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다 말하는 것이. 당당해지는 것이! 이것이 이토록이나 어려울 수 있는 것일까?'
기질은 유전으로 물려받은 특질로 살면서 조종하거나 바꾸기 어렵다. 반면, 성격은 물려받은 기질과 후천적으로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삶의 영향을 받는다. 기질은 오해를 낳는다. 자신의 기준이 나락인 사람은 자칫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이상한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세상에는 작은 것 하나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물러서는 것은 쉬워도 나서는 것이 유독 어려운 사람들이 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닐 거야.’이 세상 어딘가에 비슷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돌연변이 같은 삶을 받아들였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글만큼은 나의 편이었다. 이해받을 곳 없이 구겨진 마음을 펼 수 있는 작은 종이 한 장으로 인해 숨을 쉴 수 있었다.
용기가 없어 숨어 썼다. 글은 소심하게 접혀 있었다. 글을 쥔 나의 손 역시 오므려져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므린 손을 펼쳐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진심이 조금씩 전해졌다. 마음 안에 작은 용기가 솟아났다. 사람들에게서 받은 진심은 구겨진 나의 글을 펴게 했다. 오므린 손을 열게 했다. 좁게나마 개방된 공간에 글을 쓰며 조금씩 나를 드러냈다. 기적같이 두려움은 한 겹씩 벗겨졌다.
글을 읽은 사람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을 받았다. 그중에는 역시나 공개된 곳에서 댓글로 말을 전하기에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하여 댓글 대신 쪽지가 등장했고, 조심스레 보낸 오프라인 선물이 등장했다. 나의 글이 창피하고 삶이 자신 없어 읽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했었는데, 도리어 진심이 가득한 마음을 받았다. 나를 드러내면 몰락할 것 같았는데 오히려 호의 가득한 답장을 받았다. ‘용기를 내어 써 주어 고맙다. 공감된다.’,’ 제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마음속 떠도는 생각들을 이렇게 정리해 주어서 고마워요. 이런 마음은 늘 이야기하기가 어려웠어요.’ 등의 말을 소중하게 매만진다.
오래된 엉킨 마음은 진심과 공감으로 풀리기도 한다. 네 살 아이가 해준 원래 그렇게 태어난 모기처럼, 나는 존재해도 괜찮은 것이다. 철학자 샤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을 앞선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함으로써 본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그리고, 자유로움을 무기로 스스로 삶을 선택하여 살 수 있다. 나의 글에 진심을 보여준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연료로 채운다. 물러서지 않을 힘을 얻는다. 용기를 얻었다. 이제, 기질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며 접어 두었던 묵은 글 또한 다시 펼칠 수 있다. 나와 가족을 위한 기록만이 아닌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위해서도 쓰고 싶다. 위로받지 못하고 오래도록 오해받는 마음을 달래줄 글을 쓰고 싶다. 내가 받은 응원과 진심은 물러서고 싶은 마음을 물리쳐 다시 쓸 힘이 된다.
마음과 마음이 닿으면 진심이 된다. 진심과 진심이 닿으면 사랑이 된다. 사랑을 담아 글을 쓰고 진심을 담아 감사를 건넨다. 비록, 다시 쓰며 살며 오해에 부딪히더라도 계속 갈 것이다. 진심이 있는 한, 내가 겸손하고 진솔하게 글을 대하는 한, 글 안의 마음이 반드시 독자에게 가 닿을 것이라 믿는다. 가만히 마음에 들어와 오래도록 남아있을 글, 어떤 형식으로든 작은 위로와 힘이 되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쓸 힘은 충분하다. 쓰다 넘어질 때면 토닥이며 응원해준 말들을 꺼내 보아야지. 구겨지더라도 찢어지지 않는 마음으로 계속 쓸 것이다. 이렇게 나의 본질을 찾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