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오래전에 죽은 나를 살리던 아이의 눈물

있는 그대로

by 고요

"와! 어디서 이렇게 예쁜 꽃다발을 샀대?"

첫째 아이의 공연을 마치고 아이의 외할머니가 사 온 예쁜 꽃다발을 한 아름 안는다. 꽃다발은 특별한 날의 사진을 풍성하게 만드는 훌륭한 소품임이 분명하다며 만족했다. 집에 돌아와 예쁜 화병을 찾아 꽃을 담았다. 그때였다.

"우아앙!"

난데없이 여섯 살 둘째의 대성통곡이 시작되었다.

"호야, 갑자기 왜 그래?"

둘째는 눈물이 그렁한 눈으로 꽃병을 쳐다보며 꽃 가까이 다가갔다.

"왜 없어? 왜 다 없어? 뿌리도 없고 잎도 없어? 죽은 거야?"

아이의 눈동자에는 충격과 서러움이 담겨있다. 아이는 오래도록 서글픈 울음을 지속했다.


꽃병의 꽃이 조금이라도 시들까 불안했다. 시들어 말라 가는 꽃을 보면 충격받은 여섯 살의 마음이 더 서늘해질까 전전긍긍하며 '꽃다발 꽃 시들지 않고 오래 보관하는 법'을 찾아보았다. 설탕을 한 스푼 넣으면 영양제 역할을 한다기에 아이 몰래 미션을 실행했다. 그러나, 결국 시간이 지나 꽃은 시들었고 풍성하던 꽃이 볼품없어지는 민낯을 적나라하게 아이는 목격하고 말았다.


"왜 이 예쁜 꽃을 다 잘랐어? 죽이지 마."

꽃병에 꽂힌 꽃에 대고 '호오~ 호오~' 입김을 불어주던 아이가 보면 대성통곡할까 봐 유치원에 간 사이 몰래 시든 꽃을 갔다 버리고 돌아왔다. 소녀 감성에 나이만 먹은 나는 늘 꽃이 다정한 마음을 전하기에 좋은 매체라 생각했다. 마음을 주고 싶은 지인들에게 꽃 선물을 해오기도 했다. 이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이 날, 나는 처음으로 댕강 잘려 꽃만 보기 좋게 남은 꽃다발 속의 꽃의 최후를 새롭게 바라보았다.


작은 화분이라도 흙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보존하고 사는 꽃은 오래간다. 비록 시들더라도 벌레가 먹더라도 잘 관리해주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하지만, 꽃다발의 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유효기간이 있다. 결국은 말라 시들어버리는 꽃. 잠깐의 찬란을 위해 존재하는 꽃. 가장 예쁜 꽃들의 조합으로 묶어져 있지만, 어쩌면 아이의 말대로 '다 없는 꽃'.


사람도 그러했다. 당장 보기 좋은 모습, 아름다운 면모, 자랑스러운 지점들만 모아 포장하여 사는 이에게는 얼마만큼의 유효기간이 허락될까? 오랜 시간, 나는 나를 잘라내고 쳐내버렸다. 이 그룹에서 어울리기 위해 나의 뿌리를 잘라냈고 화려한 꽃송이만 보였다. 저 그룹에 어울리기 위해 나의 시든 이파리들을 잘라내고 매끈하고 아름다운 줄기 만을 보였다. 겉보기에 잘 어울리고 조화롭게 섞인 것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늘 불편했다. 입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 마냥, 자신의 모든 것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이 쓰는 가면의 한계 앞에서 모든 것이 피로해졌다.


'이런 모습의 나는 과연 나인 것일까?' 나이기도한데, 내가 아니기도 한 나. 꽃다발 속의 나. 이런 나는 어딜 가든 호의를 받았다. 이런 모습으로 묶여있는 내가 받는 칭찬과 인정이 그저 좋았다. 이런 나를 "왜 다 없어. 죽은 거야?"라고 슬퍼하며 울어주는 사람이 지금까지 없었다. 슬픈 눈으로 꽃병에 꽂혀 있는 나를 보며 '호오~ 호오~' 따뜻한 입김을 불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저 병 속에 물을 갈아주지 않으면 당장 몇 초 후라도 시들 꽃, 당장 자기가 곧 죽을지도 모른 채 자신의 아름다운 면모만을 보이며 만족해하는 꽃병 속의 다 잘린 꽃이었다.


'이건 내가 아니야. 이런 나를 살려줘. 나는 원래 이파리가 지저분하게 위 쪽에 많이 나고, 뿌리가 산발이 되어 자라. 매끈한 줄기 따위는 그 잎에 가려 보이지도 않고, 적당히 축축하고 진득한 흙이 있음 행복해져. 오후에 맞는 햇빛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고.'

조심스레 외쳐본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던 말, 그래서 아무데서도 할 수 없었던 말. 내 안에서 맴돌고 맴돌아 끝내 삼켜버린 말들을 한다. 그리고, 나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나를 많이 닮은 작은 사람이 보인 눈물 한 방울은 오래전에 죽어버린 내 안의 나를 다시 살린다.


© klimkin,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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