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는 가슴에 낙엽 하나 씩을 품고 산다.

불을 든 사나이

by 고요


처음 플라타너스 잎을 주웠을 때는 가면이었다. 어둑한 숲 속 바닥, 자신의 얼굴보다 큰 낙엽을 줍고는 가면인 양 신났던 아이다. 숲 길을 걷다 이내 더워질 때면 부채가 되기도 한다. 팔락 팔락 낙엽이 내는 바람은 달찍한 향과 함께 코 끝을 맴돌며 가을을 알린다.


다섯 시 무렵이 되자, 그 달짝한 낙엽이 변신을 한다. 두려움 없이 햇빛을 바로 마주하는 낙엽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닮았다. 뜨거운 해를 가리는 양산이 된다. 스스로 빛을 만들어 내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커다란 힘을 지닌다.


"엄마, 나 꼭 불을 든 사나이 같지 않아?"

아이는 낙엽을 통과한 아름다운 빛을 바라보며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본다. 불을 든 사나이가 된 아이는 두려울 것 없이 힘차게 강한 햇살을 가로지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발걸음은 씩씩하고 손에 든 플라타너스 낙엽은 활활 타오른다.

이는 다섯 시가 되기 전까지, 결코 알 수 없었던 일이었다. 플라타너스 잎이 석양을 밭아 어떻게 변하는지, 그 얇은 낙엽에게서 뿜어 나오는 힘이 얼마만큼인지, 이 시간이 되어서야, 쨍쨍한 석양을 바로 마주하고 나서야만 알 수 있었다.


위풍당당하게 불타는 낙엽을 들고 가는 아이를 보며 나는 생각한다. 인생 역시 그러하겠지. '너는 이런 아이야.'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때가 되어 어느 환경을 정식으로 마주하게 될 경우, 전혀 다른 빛으로 활활 타올라 기존과는 전혀 존재로 떠오를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우리 모두 마음 안에 저렇게 활활 타오르는 낙엽 하나를 마음에 안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 낙엽이 빛을 관통하는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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