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벌레를 사랑하는 아이와 까치만도 못한 엄마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을 삶
배추흰나비애벌레알이 집에 왔다. 아이들은 매일같이 눈을 뜨면 알에게 간다. 너무나 자그마해서 노안이 온 나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알에 대고 온갖 말들을 해주며 반긴다. 그런 알이 며칠 새 길쭉해지더니 애벌레가 되었다. 역시나 아주 작은 애벌레를 하루에도 몇 번씩 쳐다보며 아이들은 인사를 한다. 내 눈에는 너무 작아 잘 보이지도 않는데 아이들은 귀신같이 잘도 찾아낸다.
"여기 있잖아. 케일 잎 제일 아래 뒷면에."
"맞아. 얘는 햇빛 바로 맞는 거 싫어하나 봐. 그래서 뒤에서 잎을 먹나 봐."
언제 알에서 애벌레가 되었는지 꾸물거리며 움직이는 작은 생명이 신기하다. 이 작은 애벌레가 날개를 편 나비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 현미경을 갖다 대보니, 애벌레가 요리조리 꼬물거리며 잎사귀를 열심히도 먹어댄다. 케일 잎에 구멍이 숭숭 뚫릴 때면 아이들은 그 앞에 모여 머리를 대고 한참을 구경한다.
"애벌레가 입을 벌리고 잎을 사각사각 먹는 게 너무 귀여워."
도무지 침침한 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아이들은 너무나도 잘도 본다. 첫째 아이는 하루 종일 애벌레 앞에서 무얼 그리 열심히 보는지 붙어있다. 몸을 공처럼 웅크린 채 숨죽여 조용히 관찰하는 아이의 모습이 꼭 커다란 애벌레 같다. 동그랬던 나의 배에 웅크린 알에서 나온 작디작은 애벌레가 언제 이리 컸담. 아이는 마지막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랑을 듬뿍 담는다.
"애보야, 애이야, 우리 건강하게 잘 자라서 빨리 나비가 되자. "
이 작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는 인고의 시간에, 움직이는 애벌레를 만나지 못하지만 고스란히 기다려 줄 아이들. 나비가 번데기에서 나비가 되어 처음으로 날개를 펼쳐볼 때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얼마나 클까. 우리 집에 온 애보랑 애이, 두 애벌레가 건강하게 나비가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머리를 맞대고 엉덩이를 위로한 채 온 힘을 다하여 보아 주는 우리 집 녀석들을 먼발치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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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깍깍깍깍!
어제는 유독 까치가 깍깍였다. 그 소리가 단순히 지저귀는 것이 아님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는데, 까치 두 마리가 고양이를 쫒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큰 날개 짓을 하며 무섭도록 위협하며 소리 높여 깍깍이며 고양이를 몰아냈다.
"어머! 저것 좀 봐. 보통은 반대로 되지 않아? 고양이가 까치를 쫒지 않아?"
내가 본 것을 믿을 수가 없어 다시 물으니 옆에서 본 친구도 끄덕인다. 까치들은 정말 악에 받쳐 소리쳤다.
깍깍깍깍깍까아아아아아아아악!
그 소리는 알 수 없게 두려웠다. 미친듯한 절규 같기도 했고 죽일 듯 달겨 드는 울부짖음 같기도 했다. 마음이 한 곳이 찝찝하였다. 우리 집 놀이방 앞 나무에서 오후 내내 까치 두 마리가 분주히 움직이고 소리치다 어느 순간 조용해졌는데......결국에는 내 마음대로 생각을 정리하며 하루를 마쳤다.
'까치는 원래 성격이 고약해. 정말 그래.'
다음 날, 아침 맘 카페 글을 보니 <아기 까치가 떨어진 것 같아요>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우리 동 앞의 사진이 나오고 어미 새가 내내 지저귄다는 이야기다. 새끼 한 마리는 나무 위에 있고 다른 한 마리가 떨어진 것 같다고 한다.
'아...그래서였구나.'
이제서야 이해가 된다.
'아기 새가 나무에서 떨어졌구나. 들 고양이를 그래서 그렇게 매몰차게 쫒아 낸 것이었구나.'
어미 새가 외치는 절규가 귓가에서 재현된다.
'아가, 너는 날기 연습 중에 떨어진거니?'
그 ‘까아아아악’ 하는 두렵던 소리는 자신의 아기를 살리기 위한 안간힘이었구나. 심장이 울컥 눈물이 왈칵 올라온다. 어미 새가 쏟아낸 모성애를 ‘까치는 성격이 별로다’로 퉁쳐 결론지은 나의 오만함을 어떻게 떨쳐 낼 수 있을까?
“너 그러면 친구들이 다 싫어해.”
“아니, 왜 어른이 말하는 걸 안 듣고 네 멋대로 하려 하니?”
조금전까지도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혀를 내두르며 냉소의 눈빛으로 아이를 대하던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날기 연습 중에 떨어진 아기 새를 구하기 위한 어미 새의 안간힘 앞에서, 하루하루 자라는 아기 사람을 키우기 위한 어미 어른의 냉소 섞인 말들이 부끄럽다.
아이가 애벌레 앞에서 늘 해주는 말들,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나 따뜻해서 그 말을 들으며 가슴이 채워지는 나는, 정작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었던가? 기껏 한다고 입을 떼어서는 “너는 이래서 안돼.” 하며 김을 팍 새게 만든다. 그럴 때면 왠지 마녀가 되어 아이에게 주술을 부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이 본인이 자신이 사랑받을 사람임을 의심하게 만드는 검은 주술. 기껏 입을 떼어 내가 한다는 말에는 "휴우."하는 긴 한숨도 있었다. 아이는 그저 자신의 자리에 있는데, 나는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일까?
아기 새의 날개 짓은 미숙하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하늘을 날다 보면 떨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아기 새가 잘 날아 다닐 수 있게 되면, 어미 새는 넓은 하늘 훨훨 날아 자신의 삶을 살다 갈 거라 믿으며 돌보는 거겠지.
애벌레를 정성껏 돌보는 아이를 본다. 번데기에서 나온 나비가 처음 펴는 날개가 잘 마르기를, 그래서, 자연을 향해 날아가길 바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에 나의 마음을 담는다. 나비가 되면 활짝 편 날개로 날개 짓을 할 테지. 그렇게 날아간 이후의 삶을 우린 모를 것이다. 날아 올라 거미줄이 있을지 천적인 새가 있을지. 다만, 나비가 나비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을 오롯이 쓰고 가기를 바랄 뿐.
나 역시 우리아이들에게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는 언젠가는 나의 품을 떠나기 마련. 애벌레, 번데기 시기를 지나 자신의 힘으로 훨훨 날아올라 맞을 미래는 나의 소관이 아닐 것이다. 다만, 어미 까치가 떨어진 아기 까치를 위해 보인 안간힘처럼 아이의 어려움 앞에서 어미로서 도와줄 수 있는 영역들을 찾을 것이다. 나비가 잘 살 거라고 온전히 믿는 우리 아이들의 사랑처럼 철저히 각자의 몫으로 남겨질 삶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믿고 사랑해 줄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해야할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