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전업주부의 ‘괜찮아’ 응원기

엄마의 수상한 글쓰기

by 고요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 시간은 늘 쏜살처럼 흘러간다. 아이들이 모두 등교, 등원하고 사라진 그 직후부터 바로 운동을 한다. 운동이 끝난 후, 도서관에 들러 컴퓨터실에서 30분씩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하고 장을 보고 집에 온다. 오자마자 장 본 것을 냉장고에 넣고 청소를 한다. 그중에 아이가 하교할 때도 있고, 오늘치 요리를 할 때쯤 아이가 하교할 때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하교는 늘 점심과 맞물려 있다.

도서관 4층은 어른 서가와 컴퓨터실이 합쳐져 있다. 들어서서 왼편은 서가, 오른편은 컴퓨터실로 나뉘어있다. 컴퓨터실의 반은 소파가 위치한다. 책을 들고 와서 소파에 앉아 보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다. 나는 그곳 컴퓨터를 좋아했다. 커다란 모니터, 노트북이 아닌 컴퓨터가 주는 그 든든함이 왠지 모를 일의 능률을 올려주었다. 우리 집에는 컴퓨터가 없다. 기껏 이용하고 싶으면 노트북을 이용해야 하는데, 어느 사이 노트북의 작은 화면이 답답하게 여겨지고 내가 집에서 사용할 수 없는 큰 화면을 공짜로 누릴 수 있는 도서관을 애용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카페를 찾곤 한다. 나는 그 사실이 늘 부러웠다. 카페에서 글을 쓰며 느껴지는 커피의 향, 옆 테이블의 수다 소리, 카페만의 공기 등이 어우러져 당시의 글에 묻어난다. 그런 환경은 풀리지 않고 엉킨 생각의 지점들을 자연스레 풀고 갈 수 있는 도움이 될 듯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전업주부 십이 년 차다. 카페를 가고 싶다가도 그런 공간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만원 이하를 소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섣불리 가지 못했다. 본인이 버는 돈이 없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만원 소비하는 것이 이렇게 아깝다는 것을 소록소록 깨닫는다.


집에 가면 눈에 발에 밟히는 집안일들이 나를 부르기에 내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도서관의 컴퓨터실이었다. 어차피 내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40분 정도이니.

그렇게 이용한 도서관에서 어제 제지를 당했다.

"키보드 소리가 나면 책 읽으시는 분들께 방해가 되니 소리 나지 않게 살살해주세요."

"어머?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주의하겠습니다."

키보드에 손을 올릴 때, 어느 정도의 힘으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쳐야 소리가 타타 타타 나지 않는 것일까? 내가 내는 타타타 소리가 갑자기 의식이 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이 정도로 했던 것 같은데 소리가 난다고 하니 더 살살 쳐야겠다. 그런데, 살살 치려고 하니 손목에 힘을 쭉 빼고 피아노의 달걀 모양처럼 되어 버린다. 이건 피아노 건반이 아니라 자판이다. 손목 안쪽 부분까지 바닥에 딱 닿아야 타자를 치기에 적절한 힘이 들어가는데... 손목을 붕 뜬 채 달걀 모양이 무너지지 않게 타자를 치는 것은 힘들었다. 결국 머릿속에 차오르던 생각들을 키보드로 빼내지 못한 채, 손목과 손가락의 힘 균형에 집중하다 몇 줄 쓰지도 못한 채 가방을 쌌다. 어정쩡하게 힘이 들어가 긴장한 목과 어깨, 손목은 이상한 상태로 굳어졌다.


"안녕히 계세요. 아까 죄송했습니다."

죄인처럼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마음이 쓸쓸했다.

'앞으로는 도서관은 오지 못하겠구나.'

도서관 앞은 환한 오월의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이곳을 나와 늘 쓰던 선글라스로 안경을 바꾼다. 그제야, 또르르 눈물이 흐른다.

돈 만원을 아끼고 싶다고 궁상맞게 이용한 도서관의 컴퓨터실에서 키보드 소리 안 나게 글을 쓸 자신은 없고,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아, 이래서 사람들이 카페를 가는 거구나. 적당히 시끌시끌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었구나.

결국, 도서관 옆 식료품 가게에서 당근과 파프리카를 사서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아이들이 먹고 남긴 아침밥의 흔적들, 어젯밤 놀고 잔 장난감의 흔적, 개야 할 빨래, 새로 돌려야 할 빨랫감, 만들어야 할 오늘치의 요리들이 나를 부른다.

만원 한 장 내 마음대로 못 쓰는 이런 지질한 상태를 누굴 욕하랴, 눈치 보라 하는 사람 아무도 없는데 나는 왜 이 돈을 당당하게 쓰지 못하나,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을 수치로 환산하여 내민다 하더라도 나는 또 이렇게 알아서 눈치 보고 알아서 지질하게 굴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씁쓸함이 위산과 함께 올라왔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이제 자꾸 소리가 의식이 된다. 타타타의 소리가 어디까지 들려야 하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한번 의식이 되니 이제 정말 쓸 수가 없다. 하다 하다 이제는 키보드 소리까지 나를 작아지게 하는구나. 하다 하다 이제는 내가 가장 사랑하던 도서관마저 나를 작게 만드는구나. 믹스 커피마저도 쓰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이 날도, 아이들이 모두 등교, 등원을 하였다. 매일 향하던 운동으로 향하지 않고 옆길로 샜다.

‘하하. 구질구 하면 바로 나지!’

쿨하게 그냥 인정하자. 동네의 천을 걸으며 이어폰을 켜고 노래를 틀었다. 음악의 볼륨을 더 높이고 분수가 있는 곳까지 왔다. 오르고 내리는 분수를 내려다보며 세 번을 외쳤다.

"나는 지질하다."

"나는 지질하다."

"나는 지질하다."

큰 소리로 만세삼창하고 나니 웃음이 터진다. 그래. 이런 날도 있어야지.

‘당당한 것도 용기가 필요한 사람도 있으니까. 좀 못하면 어떻고, 좀 망하면 어떠한가. 이런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안 돼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어야 제 맛이지.‘

분수는 저러거나 말거나 왠 미친 아줌마가 굿을 하네 마네 자기 페이스대로 열심히 물을 뿜어 낼 뿐! 지나가는 그 누구도 아줌마 한 명의 만세삼창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커피숍이 많았다. 딸아이가 늘 궁금해하던 곳에서 발길이 멈추었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을 했다.

‘들어갈까 말까.’

그리고, 뭐 좀 어때. 소심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 앉았다. 커피만 시키려다가 아직 아침도 못 먹은 내가 생각나 치아바타 큰 것도 같이 시켰다.

지금 나는 카페에서 글 쓰는 아줌마가 되었다. 옆 테이블의 다른 분들의 엄청 큰 수다 소리에 이어폰을 끼고, 무선 키보드를 있는 힘껏 두드린다. 의식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 알겠다. 나는 점핑 피트니스를 한다. 트램펄린을 발로 미친 듯이 뛰어 밟아 스트레스를 풀더니, 키보드로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손을 있는 힘껏 써대며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었는지도...


소리가 좀 크긴 큰 거 같긴 하다.

‘뭐 어때. 여긴 카페잖아.’

가끔씩 이렇게 한 번은 카페에서 글 쓰는 여자가 되는 호사를 누려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좀 더 당당해진다면 좋겠다.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글이라도 말이다. 돈으로 환산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채워주는 글이라는 것을 굳이 꾸역꾸역 증명해 보이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갖고 싶다.

안다. 나는 자주 이렇게 카페에서 글 쓰지 못할 거란 것을. 아마도 집구석 한 곳을 밀어 두고 숨어 쓰거나, 집안일에 밀려 시간 일에 허덕이며 쓰거나, 벤치에서 햇빛에 반사된 핸드폰 스크린이 잘 안 보여 그늘 찾아가며 쓰거나, 그마저도 시간이 없어 허덕이며 쓰겠지만, 가끔씩 이렇게 누리는 호사 앞에서만큼은 좀 더 당당해지고 싶다.

당당해지기까지도 지독히 용기가 필요한 사람이지만, 적어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지. 오늘 운동과 맞바꾼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게 써야지 앉아놓고 이 일기를 쓰고 나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 이제 부지런히 해야 할 과제를 편다. 내가 누리는 호사가 조금이라도 나를 편하게 하기를 바라며... 신들린 키보드를 두드릴 거야. 점핑을 못 간 만큼 발 대신 손에 힘이 실릴지도 모르겠다. 타타 타타. 즐거운 타자 소리에 나의 손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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