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이 진흙 속에 묻어있어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글쓰기의 목표

by 고요


나는 글을 달려 쓴다. 시작하면 한번 앉은자리에서 글 전체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고 쓴다. 백 미터 달리기를 하듯, 마침표라는 결승지점까지 단숨에 간다. 문장 사이 멈추어 머뭇거리며 글을 써본 적이 언제더라, 왜 나의 글 쓰는 형태는 늘 이렇게 토하는 형태인 것일까? 가끔 내가 써놓은 글을 읽으며 헉헉대며 숨이 차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너무 날 것이라 뜨거워 화상을 입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 달째 매일 글을 쓰며 달라진 점이 있다. 예전 같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싶으면 손가락을 목구멍에 가져다가 억지로 토를 했다면, 지금은 자연스레 토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가 나오기까지 욱욱 거리며 메슥거리는 속을 잡고, 생각들을 목구멍까지 입속까지 올려내며 다시 삼키는 생각들, 신물만 나와 뱉어내는 침들, 그리고 실제 토해낸 토 덩어리들로 나눌 수 있어졌다. 그런 과정에서 초반에 생각했던 사유와 달라지기도 하고, 사고가 더 깊어지기도 한다.

글을 토를 하면서, 이 글이 단순한 나의 일기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다. 혹시라도 나의 지나친 솔직함이 예상하지 못하게 독자들에게 상처가 되거나 불편함을 주지는 않는지 한번 더 살피게 된다. 편견을 뿜은 글들을 배제하고 단언한 문장이 없는지 살핀다.

비록, 나의 문장은 불완전하고, 구성은 갓 토해낸 채 뜨끈뜨끈한 위의 온도와 신물을 그대로 담아내어 날 것일지언정, 적어도 '사유'에 있어서만큼은 겸손하고 무해한 글이 되기를 바라며 쓴다.


출간 작가도 아닌 주제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그러나, 글을 쓰는 목표가 바뀌었기에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용기가 부족하고 실패할 것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안전함에 머무는 성향의 사람이다. 이는 내가 겸손과 자기 비하의 구분을 아직까지도 못하고 있고, 실패를 했을 경우, 다시 일어날 회복력이 낮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동안 크고 작은 도전들을 했다면, 그것은 멋모르고 했거나 무모했거나 간절했거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이유들에서 초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글을 쓰는 목표가 완전히 바뀌었다. 그동안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떤 구실이 필요하다 생각되었다. 눈치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 달 정도 글을 쓰다 보니, 그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두게 된다. 결과가 있던 없던, 결과물 자체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정말 보석같이 반짝이는 글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것을 안다. 마케팅으로 부풀려 소리만 요란한 글들이 있다는 것도 안다. 어느 정도 나의 구미에 맞는 글, 읽은 후에 보석같이 담을 수 있는 글을 볼 수 있는 나만의 눈이 생겼다.

순금은 진흙 속에 묻혀 있어도 순금이다.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금을 세공하여 멋진 반지로 만들어내서 세상에 나와 누군가의 손에 끼어져 자랑거리가 되지 않더라도 괜찮다. 숨어있는 순금을 발견하며 고귀해지는 마음을 갖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묻어있는 금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글을 써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마음 대신, 글을 써서 나의 삶이 순금이 되고 혹여나 나의 글로 마음에 위로를 받는 사람들, 공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넘친다고 생각한다.

지난 열 달간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같이 에세이 한 편씩을 썼다. 자신 있게 고백컨데 그 모든 글들을 단 한 번의 머뭇거림이나 힘듦 없이 온전히 즐겼다. 진심으로 좋아했고 즐거웠고 행복했다. 아무 조건 없이 무언가를 이토록이나 즐길 수 있다는 특별한 선물, 글쓰기는 내게 그런 선물이었다.


3.jpg


이전 03화어느 전업주부의 ‘괜찮아’ 응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