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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여행 Mar 17. 2023

엄마의 축구

두 번째 사는 유년에 받은 선물


공을 가지고 놀아본 적이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늘 공이 두려웠다. 피구를 하면 피하기 바빴고, 배구를 하면 떨어 뜰이지 않기 위해 집중하다 끝났고, 야구공은 혹시라도 날아오는 공에 머리를 맞을세라 보이기가 무섭게 피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축구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며, 그나마 애정하는 것이 배드민턴이었는데, 그것은 공의 형상을 하지 않았으니... 나에게 공은 즐길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체육시간에 지나갔던 스트레스 유발 도구였고, 그마저도 체육이라는 과목이 사라진 인생부터는 그저 쓸모없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수우미양가의 평가시절을 살아온 학창 시절, 유일하게 아름다울 '미'를 뽐내던 단 한 개의 과목, 체육에 걸맞은 삶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두 번째 유년시절을 산다. 공이란 것이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을 주는 수단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배웠다. 피구에서 매일 두려움에 떨며 피할 것이 아니라 공을 정면으로 응시하여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배구공이 손목 위를 정통으로 맞을 때, 통 튀어 오르는 감촉만으로도 공이 그리는 포물선이 상상되는 짜릿함을 알게 되었다. 축구를 하며, 공을 때리는 발맛을 느꼈다. 제대로 맞은 볼이 힘차게 날아가는 순간, 발의 부분 이곳저곳이 공에 닿는 면적과 각도를 계산할 새 없이 감각만으로 차는 공이 얼마나 짜릿한지도 살면서 처음으로 배웠다. 왼발은 거의 못 쓸 수준의 헐렁이 발이라는 사실도, 몸의 균형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도, 역시 나는 오래 달리기 위주의 달리기만 소화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못해서 하면 안 되는 줄 알았던 시간이 아쉬웠다. 못할 것 같아서 지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세월이 이제야 아까워서, 아이들의 축구 놀이에 끼어 아줌마 선수가 되어본다. 심각하게 비루한 실력이지만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환호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 다행이다 생각한다. 헛발질이라도 나오면 박장대소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멋쩍음이 사라진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인데..." 그게 그토록이나 힘들 일이었냐며 이제야 무장해제가 된다. 놀이를 통한 배움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배운다. 학습을 통해 만나는 공은 스트레스였고, 놀이를 통해 만나는 공은 즐거움이었으니. 아이들이 살아가며 경험하는 작은 일들이 오롯이 놀이가 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길고 힘들다 여긴 육아의 중간중간, 신은 이러한 선물을 준다. 다시 한번 사는 유년을 통해, 나의 유년에서 빠졌던 경험을 채워 넣어 주는 선물을 말이다. 후덜 거리는 다리와 삐걱이는 무릎을 하고도 신나게 뛸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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