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던 바다에서도 웃으며

아이의 코로나 검사: 코로나 시대의 결코 당연하지 않은 것들

by 고요

물을 마신다. 이제야 물이 목을 통해 식도로 위로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텅 비어버린 위에 물 한 모금이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지난 이틀, 물 한 모금을 마셔낼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물 한 모금을 삼켜 소화시킬 몸의 상태가 아니었다. "피 말리는 상황"이라는 표현의 뜻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순간이었다.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입만큼, 더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마음. 그렇게 체내 모든 수분이 전부 타 들어가고, 급기야 몸을 타고 흐르던 피마저도 조금씩 증발해버린 듯, 하루가 일주일만 같았다.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아이들과 바닷물에서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나를 믿으며 이미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서 신나게 표류하며 깔깔 웃는다. 엄마가 그저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 아이들은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한 발자국을 조심스레 더 내디뎠다. 딱 한 발자국 이었는데, 이내 내게도 발이 닿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이제 모두의 발이 닿지 않는 까마득한 바다. 아이들은 진작에 발이 닿지 않았기에, 지금 이곳이 엄마의 발조차도 닿지 않는 깊은 바다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해맑게 웃고 있다.


꿈속에서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발이 닿지 않는 바다에 떠있다는 것이 극도로 두려운데, 곁에는 이런 나를 믿으며 따라 나온 아이들이, 바다의 깊이 따위는 안중에 없는 채, 그저 나를 보며 웃고 있다. 이 웃음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하나뿐! 두려움을 온몸으로 삼키며, 울렁이는 파도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심장이 쫄아들었다 펴졌다, 온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혹여나 발이 다시 땅에 세라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여전히 얼굴은 웃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의 웃음을 보고 여전히 함께 웃는다. 울고 있지만, 눈물이 났다.


잠에서 깼다. 무서웠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신랑 회사에 확진자가 나왔고 신랑이 검사 후 격리를 하였다. 그 당시 신랑과 이야기 나누었던 '인생은 아름다워"영화 속의 주인공의 아버지가 수면 위에 떠올랐다.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던 절망적인 위기 상황에서조차도 당시 대여섯 살인 아들에게 지금 이 상황이 게임이라고 이야기하던 아버지. 그 절망의 수용소 삶에서도,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이 죽으러 끌려가면서도, 아들에게 아버지가 숨기 놀이를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덕에 아들은 끝까지 삶의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영화 속 아버지처럼, 내가 어른이고 부모라면, 같은 위기가 와도 나 혼자일 때와는 다르겠구나! 나의 아이들을 위해 어떤 삶의 자세로 위기를 대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었다. 꿈속에서 수영을 할 줄 몰랐던 엄마로, 다리가 닿지 않은 깊은 바다에서 아이들이 겁먹지 않게 끊임없이 웃음을 날려줬던 내가 나왔음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꿈에서 웃고 있던 나의 미소 위로 파도가 치면, 얼굴에 닿은 짭짤한 그 맛이 눈물인지 바닷물인지 헷갈렸다.


무서웠다. 아이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다는 것도, 설령 확진이 된다 해도, 그건 별로 두렵지 않았다. 아이는 건강한 생명력으로 무한한 사랑과 신뢰로 잘 이겨낼 거란 걸 믿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망할 주변의 시선이었다. 거기에는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나의 마음보다는 타인의 마음이 우선이었던 지난 사십여 년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걸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아! 이를 악물고 외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혹시 모를 익명의 비난들이 두려웠다. 아이는 그저, 동선이 겹쳤을 뿐인데...... 우리 가족은 모두 최선의 개인 방역을 지키며, 누려야 할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지낸 지 2년째인데...... 억울할 마음이 들어설 자리도 없이 혹시 모를 눈총의 그림자가 먼저 드리웠다.


지금은 작년이 아니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고 지금 이 상황은 어쩔 수 없었던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아이가 코로나 검사를 잘 받고 오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자가격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자신의 방 안에 갇힌 이제 겨우 아홉 살 아이. 밤에 잠을 잘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자고, 밥도 혼자 방에서 따로 먹어야만 했던 아홉 살. 나의 아홉 살은 적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아무 죄 없는 너의 아홉 살을 이런 기억들로 채워주게 돼서 마음이 아려왔다.


일주일만 같았던 하루가 가고, 음성 문자를 받은 날. 아이가 쓴 일기의 제목은 "기쁜 날"이었다. 아이가 놀이터에 다시 나갈 수 있고, 동생이 나비를 잡는 모습을 쳐다본 것에 대해 행복한 마음을 담아 쓴 그날의 일기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이 터널에서 나와서, 네가 본 세상은 어땠을까?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누리지 못했던 많은 것들에 집중하며 마음이 아팠던 시기가 있었다. 캠프로, 소풍도, 생일파티도 그 어떤 것도 허용되지 않은 아이들의 현실이 아파 가슴이 미어졌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으로 본 일기에서, 아이는 가장 소소한 것들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아이에게 기쁜 날, 아이의 눈빛이 머문 것은 나비를 잡는 동생의 모습이 예쁘고, 함께 놀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기뻤던 것!아이의 마음이 머물었던 그것들은 정말 소소한 것들, 그 소소한 것들 조차 지켜주기가 힘든 이런 세상과 대비되게 순수한 동심이 예뻐서 곧 숨이 막혀온다.


당연한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토록 가슴 저리게 깨달아야만 한다니! 이 날 나는 딸아이에게 마스크를 잘 쓰고 다녀준 것을 늘 당연시 여겨서 처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덥고 힘들 텐데, 마스크 코 밑으로 내리지 않고, 잘 써줘서 엄마가 정말 고마워!" 당연한 게 결코 아니었던 아이가 지켰던 당연한 약속들에 감사했다.


아이들이 감내해주는 많은 불편함, 아이들이 지켜주는 많은 불편함을 앞으로 결코, 당연시 여길 수 없을 것 같다. 고마운 마음으로, 어른으로 미안한 마음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좋은 어른이 되어야지, 뼛속까지 담아 새긴다.


하루 사이 밤공기가 많이 차가워졌다. 바람결이 손을 빠져나가는 느낌을 즐기며, 두 팔을 살짝 벌리고 혼자 걷는다. 신랑에게 받은 20분이란 짧은 시간, 그동안 두려움과 긴장감과 잘 싸워준 내게도 "잘했다" 토닥여주며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디뎌 본다. 발에 실리는 삶의 책임감이 중력과 더해져서 앞으로의 나를 더 성장하게 해 준다 믿는다. 새삼, 돌아갈 소중한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눈물이 난다.


오늘 밤 꿈에는 깊은 바다 표류하던 아이들과 내가 무사히 정착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악몽만 같던 이틀이 이렇게 지나간다. 꿈으로 남을까 봐, 이것이 현실이고 지금 당장 우리들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2021년 9월, 공기에 열기가 빠진 유독 선선하고 시원하던 날, 우리에게 예고치 않고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2021.9.4



밤에도 마스크 쓴 채 잠을 자주어서 고마워. 굳게 닫힌 방문 안의 네가 너무나 보고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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