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얻은 것들

'하루'의 의미

by 고요

잊을 만할 즈음되면 연락이 온다. "확진자와 동선이 겹치니 선제 검사를 받아달라"는. 연락의 대상은 아이들의 학교, 학원, 유치원과 신랑의 회사 등 나를 제외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식구 모두에게 해당되었다. 지금까지 4인 가족 개별검사 횟수는 14회.


설날을 앞두고 또 한 번의 연락이 왔다. 설날이라 조심한다고 연휴 내내 집에만 있던 아이가 딱 한번 간 곳은 미술학원 보충 수업. 그림이 부쩍이나 그리고 싶은 딸아이를 위해 미리 확인해보니, 마침 학생도 세 명뿐이라 하기에 보낸 그곳에서 하필 또 확진자가 생긴 것이다.


조심을 한다고 그렇게 조심을 해도 딱 한 번 간 곳에서 동선이 겹칠 수도 있고, 여러 군데 다녀도 운이 좋으면 아무 일도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마음을 놓은 지 오래이지만, 잠잠하던 시간이 후에 다시 만난 이 여러 가지 감정은 내게 꽤나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졌다.


온 가족이 출동하여 검사를 받고, 음성을 받고, 자가격리 대상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모든 과정이 이제는 담담하고 익숙하다. 밖에는 눈이 내렸고, 아이들은 검사 결과를 받기 전까지는 눈과 놀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며 차를 탔었다. 워낙 개인 방역을 철저히 지켰던 지라 음성일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실제 문자가 오기 전까지 "만의 하나" 하는 조건이 자꾸 튀어나와 마음을 어지럽혔다. 그날도 그랬다.


매일 나오는 집안의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물 밀듯 밀려왔다.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 먹이는 터라, 음식쓰레기 양이 커다란 바케스에 가득 차게 되는데, 이것을 내다 버리지 못하여 냉동실에 얼린다 생각하니, 상상만으로도 기운이 쭈욱 빠졌다. 우리 집에 나오는 쓰레기가 이토록이나 많구나 하고 매일 확인하고 놀랐던 것도 코로나 이후였다. 자가격리로 발이 묶인 이후부터는 혹시라도 언제 격리 대상자가 될지 모른다는 마음에 일부러 쓰레기가 다 차지 않아도 매일 일정 시간에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자연스레 쓰레기 양을 줄일 수 없을까 고민하면서.


그저 하루하루에 충실한 삶을 살게 되었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은 것이면 백 점짜리 하루였다. 다른 어떤 욕심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청소와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내가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순간들을 적나라하게 신랑에게 들키고, 잔소리와 구박을 들어가면서도, 밥때가 되면 알아서 조금이라도 도와주려고 부엌에서 요리를 하는 신랑에게 고마워 조금 더 내가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고 싶으면 각자의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인터넷이 존재하여 조금이라도 사람의 체취를 맡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위로하곤 했다. 그리고, 다시 일상이 열리면 첫째 아이의 말마따나 "달콤한 자유의 냄새"를 맡으며, 각자의 삶 안의 자유를 향해 풍덩 뛰어들 수 있었다.공기처럼 너무나 가까이 당연히 있어 감사하지 못했던 작은 것들에 대한 감사를 온 마음으로 채운 후 맞는 자유! 그 맛은 정녕 달콤했다.


그 달콤함이 다시 새로운 버전의 익숙함으로 다가오기 전에 보란 듯이 이런 일들이 생긴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잊을 걸 뻔히 아는 자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하루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간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계속 관성의 법칙대로 살고 있을 테지.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코로나로 인하여, 그나마 어떻게든 제한된 이 상황에서 모두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감사함을 찾고, 꿈을 찾고, 건강함을 찾고, 사랑을 찾고, 관계를 되찾고, 자아를 되찾고. 그렇게 무너질 듯 위태로운 상황 안에서 모두가 하는 최선의 노력이 아름답다.


언젠가 우리가 되찾은 일상을 누릴 때, 이 마음이 희미해질 때, 꺼내볼 수 있도록 기록을 하고 마음을 담는다. 코로나가 어서 종식되기를 바라며, 종식된 후에도 우리가 이 시기에 얻은 가치들을 잊지 않을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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