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힌 딸아이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본 방에서, 아이는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넘어져있었다. 유치가 빠진 자리에 조금씩 내려오고 있던 영구치가 뒤틀리고 흔들린 채, 피가 가득하다. 다리 한쪽은 침대 가드에 긁혀 살이 벗겨져 있다.
어떡하지. 급한 마음에 119에 전화를 해본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린다.
"자가격리 중인 아이는 저희가 어떻게 할 수 없으므로, 먼저 보건소랑 연락 후, 가능한 병원을 섭외한 뒤에 다시 연락해주세요."
해당 구 보건소로 전화를 돌린다. 휴일이라 그런가, 전화가 닿지 않는다. 바로 앞에 피로 얼룩진 아이가 쏟아내는 피를 받아내며,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잠재우려, 두 손으로 손에 손을 잡고 겨우겨우 연락처를 찾아, 자가격리 담당공무원에게 전화를 드려본다.
"자가격리 중인 아이가 다쳤습니다. 얼굴과 치아를 많이 다쳤는데, 다녀올 수 있는 병원을 알기 위해 보건소와 연락이 닿아야 한대요. 보건소랑 연락이 닿지 않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선생님." 마지막 말을 마칠 때 즈음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진다.
얼음찜질을 해주고, 튀어나오는 피들을 막아대며, 아이를 진정시키며,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보지만, 자가격리 중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에서 이미 거절을 당할 확률이 크다는 것을 벌써부터 체감한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과 막막함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제발.... 치료만 받을 수 있게 해 주세요. 지난 2년간 개인 방역 누구보다 잘 지키며, 살아왔어요. 단지 반에 한 학생이 확진이 되어 반 친구 모두가 음성인데,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을 뿐이에요. 제발 도와주세요.'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빈다. 보건소와 연락이 닿았고, 그렇게 다친 지 2시간 만에 보건소에서 연결해준 치과 응급치료만 해주신다는 선생님의 전화번호를 받게 되었다. 급하게 보건소로 이동하여 의료진 보호장구를 챙겨,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치료해주셔서 그저 감사하다고 여기던 마음이 야속하게, 운명의 장난처럼, 응급치료 자체를 잘못해주셔서, 아이는 그 이후 더 이상 저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물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먹을 수 없게 된 아이. 너무나도 광범위한 레진을 치아에 전부 붙여놓아, 교합도, 저작도 아무것도 되지 않은 채 레진 위에서는 계속 피가 고여있다. 급한 마음에 전화 의료 상담을 받아보니, 이런 형태의 응급치료가 더 현재 치아에 좋지 않을 수 있어 제대로 된 치료가 시급하다고 한다.
이 날 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쏟아지는 눈물에, 눈물만큼 아이가 나았으면 좋겠다고 여기며, 아이가 머물었던 방에 들어갔다. 유독 에너지가 넘치고, 운동을 좋아하고, 밖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홉 살 아이는 자가격리 중인 아이는 작은 자신의 방 한 칸이 답답하였다.
작은 방에 갇혀 아이가 바라보았을 시선에 멈추며 막막한 이 마음을 겹쳐놓는다. 친분이 전혀 없는 학급의 학생이 확진이 되어, 반 전체 친구들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었고,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하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날들. 아이가 견뎌냈을 저 작은 공간들. "엄마, 보고 싶어!"하고 문안에서 외쳤던 아이의 목소리. 아이가 읽었던 책들. 그리고, 바닥에 얼룩져 굳은 피자국. 이제야 어질러진 방을 정리하며 생각한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침대에서 방방 뛰고 싶었을까. 하필 그러다 발이 걸렸을까. 운동신경도 좋은 녀석이 왜 그토록이나 처참하게 얼굴로 그대로 고꾸라져 바닥을 내리찍었을까. 왜 하필 입안일까. 마스크만 벗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면 치료받기가 좀 더 수월하였을까.'
살면서 이토록이나 무력함과 막막함에 공포스러웠던 적이 또 있을까. 살면서 이토록이나 누군가를 탓하고 싶은 유혹에 휩싸인 적이 또 있을까.
다음날이 되어 문을 여는 치과마다 전화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아침이 되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목이 바싹바싹 타는데, 여러 군데의 병원을 돌릴 마음의 대비가 되지 않아, 엄마 사람 친구들에게 처음으로 부탁을 했다. 남에게 무언가 부탁을 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내게서 어떻게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황을 설명하고, 고맙게도 엄마 사람 친구들은 전화를 돌려주었다.
거절. 거절. 또 거절....
서로 다른 이유로 모든 병원들이 다 거절을 할 때, 마지막으로 정말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핸드폰의 키패드를 두드린 병원에서 아이를 치료해주겠다고 한다. 꼭 이렇게 극적으로 마지막에 연락한 곳에서 허락을 받다니! 그래도 마지막에 허락을 해주다니! 꿈만 같은 상황에 주저앉은 채 병원에서 이야기해주는 환자가 없는 시간인 몇 시를 받아 적는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감사합니다." 90도 각도로 전화기에 인사를 하며, 마음에서 가득 감사함을 담아 인사를 드린다. "저희 아이 치료받을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눈물이 바닥으로 뚜욱. 떨어진다.
그날, 아이는 잘못된 응급치료를 뜯어내고, 저작을 할 수 있게 되어 죽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보건소 직원, 자가격리 담당자, 병원 담당자에게 모두 고지한 후, 일정에 따라 음성 확인서와 보호장구를 가지고 이동을 하고 안전하게 치료를 받고 돌아올 수 있었다. 정말 휘몰아치는 1박 2일이었다.
이날 나는 난생처음, 철면피를 쓰고 부탁이란 것을 해보았다. 이사를 할 때도, 기숙사의 모든 짐을 혼자 800번 넘게 계단을 왔다 갔다 하며 짐을 나르며 1주일을 앓을 정도로 미련하게, 뭐 하나 "도와주세요" 소리 한번 못하는 내가 "전화 좀 대신해서 물어봐주세요"라고 말하기까지! 절박한 심정이 그려진다. 그렇게 용기 낸 부탁의 말로 인하여, 10군데에서 들어야 했던 거절을 다른 사람들이 나눠 들어주어 내가 직접 들은 거절은 몇 개 되지 않았다. 주저앉은 상황에서 거듭되는 거절의 말을 듣고, 거듭되는 설명을 해야 했던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대신 두 손 걷어부 쳐들고, 전화를 해주고 나 대신 거절의 말을 들어준 엄마 사람 친구들에 대한 감사함에 목이 멘다.
난생처음, 강한 척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신뢰하는 글벗 언니들이 있는 카톡에 "무섭고 힘들다"라고 민낯을 내던졌다. 도저히 "척"을 하기 너무 버거운 상황들이 쏟아지고, 작은 마음의 한 구석에 누군가가 해주는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 한마디가 너무나도 절실했다. 누군가가 해주는 기도, 누군가가 보내주는 마음 한 자락으로 정말 아이가 나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마음이 어찌나 필요하고 든든한지, 존재만으로도 그저 고마워 눈물이 났다.
대문 앞이 바쁘다. 어느 날은 죽, 어느 날은 치킨, 어느 날은 귤, 어느 날은 빵, 어느 날은 책. 자가격리 중인 아이를 위한 것들도, 함께 삼시세끼 차려낼 나의 일손을 덜어줄 것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어나는 따뜻한 마음들을 손 쓸 새 없이 받고 있다. 평소라면, 손사래 치며, 괜찮다고 굳이 굳이 내저었을 "절대 무언가를 받지 못하는 불편한 심정"을 억지로 누르며, '지금은 좀 받아도 괜찮을 거야. '하고 애써 생각하며 누려본다.
누군가가 보내주는 마음을 늘 손사래 치며 내보내기 바빴던 인생이었는데, 누군가의 마음을 어떻게든 꾸역꾸역 감사함과 함께 받아내고 있는 시간을 겪고 있다. 어떻게 갚을지는 나중에 생각해봐야겠지만, 감사함이 넘쳐흐르고 흐르는 시간들이 올라오고, 휘몰아치며 다친 아이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두려움에 덜덜 떨던 날들이 꿈처럼 지나간다. 지독한 악몽을 꾼 후, 꿈에서 깨니, 따뜻한 나라에 도착해있다. 비록 아이의 영구치는 크게 다친 것이 맞고, 추후 많은 치료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또한 의료기술이 이토록이나 발달했는데,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겠냐며...... 애써 마음의 여유 또한 부려본다.
병원을 알아봐 준 엄마 사람 친구들, 병원에 일일이 전화해준 엄마 사람 친구들, 온 마음으로 아이의 안위를 걱정해준 글벗들, 기도해준 가족들. 이토록이나 든든한 군단들이 지키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 있으랴! 휘몰아치던 폭풍우가 남기고 간 것들에서 쓰러지지 않고 우뚝 남아있는 것들은, 진실되고 따뜻한 마음들! 그 마음만을 담아 남기고, 앞으로 갚으며 살아가야겠다. 좋은 어른으로, 조금 다른 형태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빚으로 갚아내며 살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