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자유의 냄새

자가격리에서 해방되던 날

by 고요

오늘은 아이의 자가격리 해제 하루 전 날! 격리 해제를 위한 검사를 오전 중에 받아야 한다 하여, 부지런히 보건소에 다녀온 이후, 아이와 평화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린다. 해당 구의 보건소 번호이다. 무슨 일일까. 어디선가 전해 들은 말로는 바로 그날 전화가 오면 양성이고, 그다음 날 문자가 오면 음성이라는데.... 당일 오후에 울리는 보건소의 전화가 심상치 않다. 설마. 오전에 받은 재검에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일까...


"여보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누구네 집이 맞죠? 누구랑 함께 공동 격리........(이후 생략)." 이야기를 듣는다. 손이 파르르 떨린다. 침을 꿀꺽 삼킨다. 마음속으로 '침착하자.' 되뇐다. 머릿속이 하얘지려는 순간을 애써 붙들어 잡으며, 수화기 너머의 보건소 직원분의 이야기를 듣는다. 어느 순간, 두려운 마음과 동시에 분명히 무언가 잘 못 된 것 같다는 본능이 움직인다. "저기, 혹시요." 상대의 말을 끊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용기를 내어 말을 끊었다.


"혹시 그 누구가 몇 년생 어디 초등학교 자가격리 대상자 누구가 맞나요?"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걸 애써 참으며 침착하게 물었다. 잠시의 침묵이 백 년 같다고 생각할 즈음에, "아...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동명이인이었나 봐요. 연락이 잘 못 간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아닙니다. 다른 분이라 하니 오히려 마음이 놓이네요. 몇 년생 누구가 아닌 게 확실한 거죠?" 재차 확인한 후, 전화를 끊었다. 휴. 살았다. 다리가 이제야 풀린다.


딸 아이네 반 학급에서의 확진자 발생, 선별 진료소 검사, 자가격리 통보, 자가격리 중 큰 응급사고 발생, 응급치료 부작용으로 치료 시급, 자가격리 중 보건소 협조하에 재치료, 격리 해제 재검!


지난 14일의 끝자락, 마지막 검사를 오전에 마치고 고요하게 내일이 오기를 기다리던 차에 닥친 전화 한 통으로 다시 한번 지옥과 천국을 오갔다 온다. 사람의 마음이 이토록 한순간에 저쪽에 갔다가 이쪽으로 올 수 있구나! 우환 청심환이라도 집에 상비해두어야 하는 것인가! 휴우. 새어 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이야?" 저만치서 딸아이가 묻는다. "응. 누구라는 다른 이름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에게 가야 할 전화가 이리 잘못 왔나 봐."라고 설명해주었다. 그러면서, 누구라는 다른 학생이 이제부터 겪을 힘들고 외롭고 두려울 여정을 응원했다. 누군지 모를 저만치의 다른 아줌마가. 부디, 다치지 말고, 안전하게 잘 견뎌내기를 바라며!



아이의 자가격리를 바라보는 일은 가히 쉽지 않았다. 철저하 다 못해 극보수적으로 지켜온 방역수칙들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억울함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누구의 탓도 아니라고 되새기고 되새기지만, 아이가 크게 다치고,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된 상황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당장 누구라도 탓하고 싶은 나의 편협함과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피범벅이 된 아이를 마주했을 때는 도망가고 싶었다.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상황 앞에서 눈물이 먼저 쏟아지는데, 나는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찢어질 것 같이 두근거리며 뛰는 심장을 안고, 애써 침착한 척하며, 덜덜 떨며 주저앉아 메모를 했던 이 모든 상황이 버거워서 도망가고 싶은 비겁한 나의 실체와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아이가 자가 격리하는 것이 아니고, 차라리, 엄마인 나 혼자 어딘가에 자가 격리돼서 2주간 실컷 책 읽고 글 쓰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지혈이 되지 않는 아이를 달래며, 같이 주저앉은 채 큰소리로 엉엉 울어버리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과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였다. 세상에 빌어먹을 그 엄마라는 갑옷이 너무 무거워서 다 두고 도망가고 싶다가도, 나 하나 믿고 이 세상에 와서, 이런 세상에 살게 한 것이 나라는 사실에 소름 끼치도록 미안해서 다시 또 주섬주섬 그 갑옷을 꺼내 입는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어른들이 미안해!' 주문인지 주술인지 최면인지 모를 미안해주문으로 만회가 될까, 눈물을 흘리며.


다음날, 아이는 음성으로 자가격리가 해지되었다. 정오가 땡! 되자 아이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이제, 자가 격리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자, 가장 먼저 아이가 한 말은 이 한마디!

"아! 이 달콤한 자유의 냄새!"


"엄마, 나 산책 나갔다 와도 돼? 엄마, 진짜 이제 나가도 돼? 학교 갈 수 있는 거야? 우리 가족 다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거야?" 아홉 살이 겪기에는 너무나 큰 대가였던 "자유"의 실체! 그리고,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되던 날, 아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달콤한 자유의 냄새"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아이가 바라던 것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 학교에 가는 것, 가족이 함께 한 식탁에서 밥을 먹는 것. 이토록 소박한 것들이었는데....


내가 누리던 자유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감사히 생각하지 않았던 지난 날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았던 지난 날들, 내가 돌보아야 할 아이들의 양육을 그저 힘들다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구멍을 만들어 빠져나가고 싶어 했던 번아웃들, 이 모든 것들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이토록이나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서야 나는 뼈가 저리게 받아들인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이 세상이, 달콤한 자유의 향기를 감사히 누리며, 마음껏 그 자유의 힘을 펼치며, 선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희망하며, 작은 힘이나마 어른으로서 엄마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한다. 코로나라는 이 특수한 상황을 이토록이나 씩씩하게 견뎌주는 아이들에게 진 이 빚을 어떻게 다 갚을 수 있을까, 하면서......


격리 해제 후 하는 첫 산책, 땅을 밟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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