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2년 차 등교 이야기
1학기의 마지막 하굣길.
아이들은 오늘이 마지막 인지도 모른 채 신나서 등교를 했다. 등교 전 아파트 내 놀이터에서 만나 그네를 한번 타고 아이는 친구와 여느 때처럼 등교를 했다. 오늘은 엄마가 하교 마중을 나가지 않으니 혼자 잘 오라고 인사를 해주었다.
11시 즈음, 학교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 4단계로 인하여, 월요일부터 전면 원격 수업 전환되고, 오늘 아이들의 사물함 물건 및 모든 교과서를 배부하니, 하교 시 오실 수 있는 학부모는 보조가방을 들고 오라는 문자였다.
아이들은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이고, 가방이 터지도록 (심지어 어떤 가방은 문이 잘 잠기지도 않는다.) 물건을 한가득 짊어지고 교문을 나왔다. 어깨에 짊어진 아이들의 가방은 실로 무거웠고,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가슴 깊은 곳에서 안타까움인지 분노인지 모를 뜨거운 것들이 내 안을 지나갔다.
화가 난다.
아이들은 잘 지키고 있는데.. 학교가 기본교육과 사회생활의 전부인 아이들인데, 또다시 아이들만 갇히게 되었다. 학교는 최선의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학생들은 정말 잘 지키고 있는데, 그들은 또다시 갇혀야만 한다. 최소한의 기본교육과 사회생활을 빼앗긴 채. 그 마저도 가림판과 빼앗긴 쉬는 시간, 빼앗긴 운동장 활동으로 누리지 못하는 것 투성이었던 아이들의 학교생활이 이렇듯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의 가방을 받아 캐리어에 싣는다. 잔뜩 들어 터지기 직전의 가방들, 엄마가 하굣길에 나오지 않은 아이들의 가방을 함께 나온 엄마들과 함께 나누어 들으며, 교과서 하나하나의 무게만큼, 발걸음이 무거웠다.
1년 반 전, 그때도 그랬다.
아이는 유치원 졸업식에서 쓸 송사를 외우고 있었다. 멋지게 암송하고, 졸업식을 할 거라며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미우나 고우나 4살 때부터 함께했던 4년 지기 친구들과 헤어질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날도, 그날이 마지막인지 모른 채 아이는 하원을 했다.
유치원 졸업식도, 초등학교 입학식도 아이에게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학교를 입학은 하였으나, 입학식은 없었고,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원격 수업을 해야 했고, 학습 꾸러미라는 이름하에 모든 과제들은 결국 나와 딸아이의 관계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야금야금, 갉아먹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위태롭게 부러질 것 같은 사과 대마냥 우리의 관계는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아이에게 거한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잘하기는 더더욱 원치 않았다. 이 지구 상에 현재 초등학교 2학년 치고 우리 아이만큼 원 없이 노는 아이도 없으리! 단지, 내가 무너졌던 건 아이가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의 영역들이 가정으로 넘어와 미치는 어긋난 선들, 한 번도 학교생활을 하지 않은 자가 알지 못하는 자가 해야만 했던 넘어버린 커리큘럼의 영역들,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겪어야 할 미우나 고우나 티격태격 마음 상해도 필수인 또래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주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다시금 원격수업이다.
차라리 조기 방학을 하지.. 목구멍까지 솟아나는 한탄과 바람을 꾸역꾸역 집어삼키며, 미리부터 다짐을 해본다. 아이를 채근하지 않기, 그 어떤 것도 나의 필터를 끼고 아이를 바라보지 않기, 지금은 특수사항임을 인지하기, 지금 이 특수사항에서 우리가 더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
중얼중얼, 미친 사람처럼 구덜 거리는 것인지, 다짐을 하는 것인지 모를 혼잣말을 해대며, 이번 학기 마지막 하교 날을 맞이한다. 부디, 이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며.
그동안 짝꿍도 없고, 쉬는 시간도 없고, 입학식조차 없고, 운동장 또한 없었지만, 그래도 그저 등교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함박웃음 짓던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가슴이 아파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