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의 학급에 확진자가 생겼다. 그로 인하여 긴급문자를 받았고, 아이가 속한 학급은 급식 없이 일찍 하교를 하였고, 그 학급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외출 자제를 권고받은 채 집에서 조용히 보내고 있던 시간, 연거푸 전화기가 바쁘다. 동학년 엄마들이 여기저기에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자마자 무섭도록 신기하게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가장 먼저 "괜찮아?"하고 아이 또는 나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마음과 전화를 받자마자 "누구네반이 일찍 하교했다는데 그게 맞아?"라고 사실을 확인하는 마음. 이 두 가지로 정확하게 나뉘었다. 사실을 묻고 취조하듯 사건을 확인하는 마음에서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마음이 올라왔다. 꽤나 오랜 시간 친한 엄마 사람이라고 느껴왔던 내 마음 안의 사람들, 그들의 진실된 마음을 알아버린 이후에 남는 것은 커다란 마음속 구멍이었다.
환멸! 아, 이 단어를 이럴 때 쓸 수 있는 것이구나. 가장 주된 감정은 실망감이었는데, 고요해진 후 들여다본 이 감정을 표현할 좀 더 정확한 단어는 환멸이었다.
고요하고 조용한 집 안, 그날은 아이가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라 유일하게 내게 조금의 여유가 더 주어진 날이었다. 두 아이들을 보낸 후, 상쾌하게 아침 운동을 하고, 점심을 먹어볼까 하며 상을 차리던 중, 삑삑 하고 문자가 왔다. 대수롭지 않게 넘겨 본 문자에는 "코로나 긴급"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무슨 일이지?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점점 더 귓가에 맴돌며, 흐릿해진 눈을 크게 한번 감고 뜬 후, 천천히 문자를 열어보았다. 아이 학급에 한 명의 학생이 검사를 받게 되었으니, 오늘은 급식, 방과 후, 돌봄 모두 없이 하교한다는 문자였다. 학생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외출 자제를 권고함과 함께.
고요하던 호수에 돌 하나가 풍덩 던져져 파장이 일듯, 잔잔했던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친다. "괜찮아. 마스크 잘 쓰고 있어서 괜찮을 거야." 애써 생각을 하며, 먹으려고 꺼내놓았던 반찬들을 다시 냉장고 속으로 집어넣는다. 코로나 검사를 받아야 할 테고, 음성이라 하더라도 자가격리 대상자가 될 경우,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파동이 인다. 그리고, 조금 일찍 하교한 아이를 맞이하며, 불안에 눈빛이 흔들리는 아이를 다독이며, "괜찮을 거야."라고 안심시키고 있을 때, 내게 불같이 쏟아지는 전화들을 받았다.
놀랐을 아이와 엄마의 마음을 먼저 묻는 전화를 해주는 엄마들과, 그렇지 않고, 현재의 사실을 확인하고, 학교의 대응에 대해 논하는 엄마들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살아오면서, 일부러라도 굳이 사람을 굳이 분류하려 하지 않았는데, 이토록이나 극명하게 사람이 나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나라면 어찌 전화를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경황이 없어도 전화한 분의 안위를 걱정하고, 놀랐겠다.라고 위로한 후에 혹여라도 더 궁금한 상황이 있음 조심스레 물었을 것이 너무나 자명한 바! 그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들도 사람은 다양하기에, 그저 다다다다 따발총처럼 뭐가 진짜냐, 이러한 게 맞느냐로 확인하기 바쁜 총을 쏘아댈 수 있는 것이었구나.라는 사실이 낯설다.
어찌 되었든 아이의 일이므로, 소문이 이상하게 새어나가지 않는 마음에서 상당히 조심스러웠고, 그런 사실을 행여나 이야기할 일이 있다면, 정확하게 결과가 나온 후 맞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서 일단은 둥글려 일반화하여 이야기하고 해당 학생의 결과를 기다렸다. 마음 한 구석에서" 어른들이 미안해" 하는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오늘 학급에 오지 않고 검사를 받으러 갔다는 무서웠을 누군가의 아이! 당장 그 아이의 마음을 챙겨주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확인을 하느라 급급할 뿐! 너무하고 실망스럽다는 마음이 내 안에서 빠르게 커져나간다.
나의 기준에는 아직 확진전이라 조심스러운 것 같아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둘러댄 후 집에 있는 동안, 이미 누군가에 의해 사실은 재빠르게 동네를 퍼져나갔다. 그렇게, 학원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참,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하더니, 그 천리를 이렇게 순식간에 다녀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음에 돌덩이 백개를 지닌 채, 나는 확진자에게도 개인정보보호를 해줄 권리가 있으니 우리 아이에게도 다른 곳에서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힘들지만 잘 해체 나가자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눈물을 줄줄 흘린다. 이번이 두 번째이다. 이번에는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자가격리 대상자가 되어버렸다. 아이는 계획하였던 가족여행도, 농장체험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기가 막혀 너무하다며 펑펑 울었다. 아이의 동생은 누나의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자가격리였는데, 하필 유치원에서 에어바운스를 빌려 작게나마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기로 약속했던 그날이었다. 동생 또한 펑펑 울며, 아쉬워하였다.
바깥이 보이는 창문에 머리를 박고, 밖의 공기를 방충망에 살을 대고 마시며, 밖에 누가누가 나왔다며 하루 종일 쳐다보는 둘째를 바라본다. 울컥. 눈물이 나온다. 첫째 아이에게 친구를 탓하면 안 된다고 설명에 설명을 둘러대었는데, 아이는 억울한 마음에 눈물만 그렁그렁하다. 이제 고작 아홉 살. 이 상황이 누구의 탓도 아님을 설명해도, 당장 아이가 한 밤 자고 가기로 한 여행과 아이의 모든 생활을 빼앗긴 채, 그녀는 계속 이해하라는 소리만 듣는다. 급기야, 심드렁해진 아이에게 나는, "동생도 너로 인해 아무 데도 못 가고 에어바운스도 못하고 이렇게 집에 있으니 잘해주자."는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첫째 아이는 엉엉 울며 "나도 억울하다고!"소리치며 참았던 눈물치를 쏟아낸다.
1990년. 국민학교 3학년!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보통은 우르르 한 덩어리로 놀던 우리들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그날은 팀을 나누어 두 팀으로 무슨 대결 같은 것을 하며 놀았다. 그러기에는 작전타임이 필요하였고, 내가 포함된 팀은 나의 방에, 다른 친구(이름도 정확히 생각난다.)가 포함된 팀은 나의 동생 방에 들어가서 작전을 짠 후, 나와서 대결을 하였다. 당시 노래대결도 있었고, 율동 대결도 있었고, 이구동성 게임도 있었는데, 어떤 것을 하다 그러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들이 다 가고 텅 빈 집안에서, 자신의 방을 양보하고 내주었던 동생 녀석의 큰 울음소리를 들었다. "엄마! 누나 친구들이 내 시험지에다 볼펜으로 이렇게 써놨어!"라고 말하며 동생은 속상함에 화를 내었다.
당시 갱지라는 종이에 매일같이 시험지 형태로 그날 배울 것들을 복습하게 나누어주는 숙제가 있었는데, 동생 녀석이 전부 풀어놓은 갱지에 나의 친구들이 뭐라고 볼펜으로 써놓은 것이다. 연필이었으면 그냥 지우면 될 텐데, 볼펜이어서 지워지지도 않았고, 그것을 본 엄마는 크게 나에게 화를 내었다. "이건 예의가 없는 것이다. 쓰고 싶은 것이 있으면 여기다 써도 되나 물어보고 허락을 구한 후 쓰거나, 아니면 종이가 필요하다고 나와서 요청을 해야지! 동생의 물건에다 함부로 이렇게 쓰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다!" 하며 내게 야단을 치셨다.
"죄송합니다." "동생아, 미안해. 누나가 잘 이야기할게."하고 사과를 한 후 방에 들어와서 억울함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하지 않았어! 근데 왜 다 나한테 뭐라 그래! 그 친구들에게 화를 내야지 왜 나한테 화를 내!" 꺼억 꺼억 마음의 소리가 동물처럼 새어 올라오며 울다가 너무 억울함에 복받쳐 올라 문을 열고 나가 울먹이며 "근데 내가 그런 게 아닌데, 나도 억울하다고!"라고 외쳤다. 그리고 나는 그날, 잘한게 뭐있는데 너가 더 큰 소리를 치냐며, 아주 크게 무섭도록 야단을 맞았다.
딸아이의 "나도 억울하다고!"를 듣는 순간, 데쟈뷔같이 떠오른 이날의 기억. 딸이 얼마나 억울할지, 속상할지, 답답할지 모르는 것이 아닌데, 당장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한 달을 기다려온 유치원의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동생의 눈물, 그런 동생에게 툴툴거리는 첫째의 미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동생도 이렇게 견뎌주고 참아주는데, 하면 될 것을 동생은 누나가 이리돼서 같이 갇혔는데, 네가 더 잘해줘야 한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아뿔싸! 하는 순간 이미, 창은 던져져 아이의 가슴에 꽂혔다.
누구의 탓도 아니다.라는 이 한 줄의 문장을 이해시키고, 내가 처한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이 작은 아이이 겪을 혼란의 마음을 기다려주기까지, 그리고 그 시간들을 슬기롭게 잘 넘어가기까지, 어른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최대한 집중해본다. 그 와중에는 조심스럽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마음으로 물건으로 보내주는 엄마 사람 친구들이 있고, 그 와중에 당분간 보지 않으니 정말 아무 말이 없는 엄마 사람 친구들도 있다.
사람이 이토록이나 마음이 투명해서 보이는 것이었던가. 사람의 마음이 너무나 잘 보여서, 소름이 끼쳐진다. 그러면서 조금씩 내 안의 사람이었던 사람들 중 누군가는 떠나보내고, 누군가는 더 깊숙이 들어오고, 그동안에 없었던 꽤나 오랜 시간 하지 않았던 마음속 정리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뒤통수 맞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마음이 향하는 방향" 그 방향을 너무나 당연히 나와 같은 방향이라 믿어왔던 사람들에게서, 아, 너무나 우린 달랐구나, 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애써 좋게 생각해본다. 그리고, 어린이라는 시기를 관통한 어른으로서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나는 어른이기에 인내하고 나아가야 할 의무를 지닌다. 비록, 좋은 어른으로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어 하루를 살아아 고 싶은 작은 바람이 있다.
힘든 일을 지나갈 때, 더 잘 보이는 마음들. 그 정체를 하나씩 알아가며, 비울 것은 비우고, 채울 것은 가득가득 채우며, 새로이 나를 정비하고, 주변을 바라볼 기회가 온 것이라고 애써 생각한다. 그렇게 아픈 가슴을 달래며, 얼얼한 뒤통수를 쓰다듬어주며, "괜찮아.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지 뭐." 하고 외쳐본다. "당연히 나의 마음속 나의 사람들이라 생각한 사람들을 보내주기 위하여" 나만의 경계를 긋기 위하여, 이런 시련이 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든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어주는 미련한 마흔 살 넘은 엄마 사람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