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아이가 그동안 지켜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지켜보며.

by 고요


혼자 방 안에 들어간 딸아이. 곧이어 들리는 훌쩍이는 울음소리. 방 문 밖에서 퍼지는 눈물의 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열심히 해주었지만, 그것이 과연 열 살배기 너에게 위로가 되었을까?


아홉 해 인생 동안 처음으로, 아이가 그토록 지켜왔던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토록 먹고 싶은 떡볶이를 분식집 안에서 한 번을 먹지 못한 것도, 그토록 하고 싶던 가족과의 외식도, 가고 싶은 소풍도 키즈카페도 놀이공원도 모두 반납하고 지키고 지켰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엄마는 음성이고, 아이는 양성입니다."

데자뷔처럼 둘째 때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엄마, 내가 양성이래?"

이 역시, 데자뷔처럼 이틀 전 둘째 아이의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과 충격이 똑같이 지금 펼쳐진다. 그때처럼 나는 여전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집에 돌아오는 길, 우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첫째 아이는 잠들기 전 서럽게 홀로 울다 잠이 들었다. 잠이 쉬이 들지 못하고 눈물이 흐르는 아이의 옆에 누워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해준다.


"안아,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해. 나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해. 그건 너의 탓이 아니야. 그러니, 괜찮아.

우리는 최선을 다 했고, 이제는 어쩔 수 없는 거야. 정부의 지침대로 모두 했고, 개인 방역을 누구보다 잘 지켰고, 공동체 일원으로 모든 도리를 다 했으면 후회는 없는 거야. 억울함도 속상함도 두려움도 알 수 없는 이 모든 감정들도 조금씩 흘려보냈으면 좋겠어.


엄마는 안이가 그저 많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나갔으면 좋겠어. 엄마는 그거 하나면 돼. 안이의 몸도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안이의 마음도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미안해. 엄마가 안이 옆에 있을 수 있어 다행이고, 그래서 아프면 간호해주고 안 아프면 우리 같이 음식도 만들고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신나게 놀자. 엄마는 오히려 우리 딸이랑 이렇게 오래도록 진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설레고 좋아. 우리 안이도 속상하고 억울하고 슬픈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서 우리만의 일주일, 행복한 추억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동안 네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여 방역을 지켜주고, 착하게 생활해주어서 엄마가 정말 고마워. 네가 얼마나 성실히 그리 해주었는지 누구보다 엄마가 잘 알아. 그래서 엄마는 안이가 자랑스러워. 이런 우리 딸을 많이 많이 사랑해.

눈물로 힘든 감정 모두 흘려보내고, 내일은 새 날을 만들어 함께 누리자. 잘 자. 아프면 말해. 엄마가 바로 올게. 좋은 꿈 꿔."


훌쩍이며 듣던 아이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 어디서부터 잠이든 것일까? 혹시나 다 듣지 못한 말들을 전해주고 싶어 이렇게 다시 일어나 편지를 쓴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한번 더 타이핑하며 나에게도 해준다.


나야, 괜찮아. 그동안 애썼어. 코로나 3년 차, 외식 한 번을 안 하고 여지까지 지냈다는 것만으로도 네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 이제는 어쩔 수가 없어. 유치원에서 번지는 것을 어찌 막아. 아이들이 놀잇감을 같이 만지고 노는데.... 누구의 탓도 아니야. 그저 안 아프고 무탈히 넘어가길 기도하며 이 위기를 잘 넘기기를... 이 위기기 지나면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이 시간이 나중에 기억했을 때 소중한 순간으로 기억되기를... 그것이면 되었다고.


아이의 눈물이 의미하던 그 엉킨 감정들이 내게도 그렇게 전해진다. 억울함도, 슬픔도, 두려움도, 속상함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이제 나도 흘려보낸다. 나의 상태가 언제 음성에서 양성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따로 격리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음에 깊은 안도가 된다.


올해 가장 하고 싶은 일에 "소풍, 현장학습"을 적었던 아이. 올 해는 그 일들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해보며 더 나은 미래를 희망하며..... 희망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라 믿으며, 할 수 있는 일들을 준수하며, 그렇게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

5.jpg


이전 02화너희들이 누려야 할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가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