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이 누려야 할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가서 미안해
엄마, 나 양성이야? 코로나에 걸린 거래?
아이의 숨소리가 심상치 않다.
슬그머니 만져보미 불덩이이다.
열이 다시 또 오르는구나.
부랴부랴 부엌으로 가서 미리 준비한 해열제를 먹인다.
물을 먹이고 가만히 쓰다듬어 준다.
아이가 말한다.
"엄마, 엄마는 저 위 침대에서 자."
"괜찮아. "
"싫어. 엄마가 옮을 수도 있어."
"괜찮아. 엄마는 안 옮아. 걱정 마."
"싫어. 이거 얼마나 힘든데. 나 때문에 엄마가 옮으면 싫어. 엄마는 저 위에서 자."
아이가 단호하다.
늘 엄마를 만지며 잠이 드는 아이인데....
설거지하는 동안도 나의 뒷 바짓가랑이를 잡고 사는 아이인데.....
엄마 냄새가 좋다고 자는 동안에 조차 떨어지지 않는 아이인데....
아이가 애써 나를 거부한다.
"엄마가 마스크 잘 쓰고 있잖아. 호는 어려서 엄마가 간호를 해줘야 해. 엄마가 마스크 잘 쓰고 옆에 있을게. 걱정하지 마."
여러 번 안심을 시킨 후, 아이 옆에 누웠다. 아이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나의 팔을 잡고 겨드랑이에 얼굴을 비빈다. "엄마, 마스크 코 위까지 잘 써져있지?" 하면서. 아이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준다. 거친 숨소리와 불덩이 같은 뜨거움이 전해진다. 심장이 타는 듯 뜨겁게 아파온다.
-
새 학기가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둘째 아이는 "유치원 안 가면 안 돼?"로 시작하는 아침을 맞았다. 4살에 처음 원에 간 순간부터 그랬으니 이제는 그 말이 새롭지 않지만 그 말은 언제 들어도 반갑지 않은 말이었다. 이제는 일곱 살이나 되었는데 알아서 적응을 좀 해주면 좀 좋으련만, 여전히 아이는 새로운 환경이 힘에 부쳤다. 그런 아이와 매일 아침을 씨름하며 유치원에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유치원에 가는 길을 최대한 즐겁게 하고, 유치원 앞에서 하는 배웅을 최대한 짧게 하며 (길면 결국은 울음으로 끝이 난다.) 온 정성을 들여 아이를 보냈다. 아이는 본의이든 아니든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그날도 아이는 "안 가면 안 돼?"를 외쳤다. 선거 다음날, 하루 쉬고 온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낸 뒤라 유독 가기 싫은 마음이 들 거란 것을 이해해주며 그래도 가야 한다고 아이를 들여보냈다. 그리고, 그날 아이의 반에서 코로나가 돌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후로는 원을 보내지 않고 데리고 있었지만 잠복기가 있었는지 아이는 아무 증상이 없었고 자가 키트 결과 또한 음성이었다. 나흘이 넘은 어제가 되어 처음으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속항원 검사를 위해 2시간이 넘게 대기를 하는 중에도 아무 소리 없이 불편한 몸을 참아가며 기다렸던 아이에게 간호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엄마는 음성이고, 아이는 양성입니다."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두려움과 눈물이 엉킨 큰 동그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엄마, 나 양성이야? 나 코라나 걸린 거야?"
작고 동그란 동공이 그렇게나 크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었다. 아이의 순수하고 반짝이는 눈동자에 서린 두려움이 읽혔다. 무엇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잠시 숨을 고르고 정신을 번쩍 차린다. 순간, 두 시간 넘게 병원 안의 많은 사람들을 피해 대기하느라 복도를 순회하던 나의 다리에 힘이 풀린다. 손과 발에 힘을 꼭 주며 아이를 바라본다.
"괜찮아. 코로나가 감기 같대. 이제는 괜찮아. 호 반에 친구들이 많이 걸리고 있나 봐. 감기가 옮았나 봐. 우리 호가 유치원 그동안 열심히 잘 다녔는데.... 이렇게 되어서 엄마도 미안해. 우리 호처럼 마스크 백점으로 잘 쓰고 다니는 아이들도 없을 텐데.... 괜찮을 거야."
아이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또박또박 이야기해주었다.
"엄마, 나 무서워."
"다 괜찮을 거야."
집에 돌아오는 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는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그 길이 천리처럼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니 마음이 바쁘다. 바로 첫째 아이의 학교와 신랑에게 알리고 두 사람이 검사를 받고 음성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우리 막내만 확진이다. 아이는 열이 많이 나서 힘이 들 텐데도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나랑 둘째는 어차피 분리 생활을 하니 괜찮다고 해도 아이는 벗지 않는다. 코로나로 몸이 힘들고 아픈 것은 살아가면서 겪을 숱한 감기와 다른 질병들을 겪는다 생각하면 크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쓰는 마음이 심장을 자꾸만 찌른다.
자기 때문에 다른 식구들이 옮을까 봐 마음을 쓰고, 곁에 있고 싶지만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그 마음. 열심히 다닌 유치원에서 자기가 옮아온 것. 자신이 열심히 한 성취가 이렇게 이어지는 것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보는 벌을 받는다.
코로나 3년 차, 열심히 마스크를 쓰고, 단 한 번의 외식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며 살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최소한의 민폐도 끼치지 않게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그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어떻게든 올 일이었다며 그 시간들을 이제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음에 그것은 옳은 일이었다며 마음 안에 작게나마 이는 억울함을 흘려보낸다.
이제는 너무나 만연하여 피해 갈 수 없는 하나의 흐름에 우리도 탔을 뿐. 누구의 탓도 아님을. 그러나, 펄펄 끓는 열을 안고 자신보다 혹여나 옮을 가족을 생각하는 일곱 살의 마음은 여전히 아프다.
어른들이 미안해. 너희들이 누려야 할 그 모든 것을 빼앗아가서 미안해. 너희들이 즐길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이렇게 앗아가서 미안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할 유년시기, 가장 제약 많은 삶을 살게 해서 미안해.... 그저 너희는 열심히 너희의 삶을 충실히 살았을 뿐인데,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 어른으로 너무나 미안하고 아픈 밤이 이렇게 흘러간다.
해열제가 들자 겨우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마스크를 내려준다. "괜찮아. 엄마는.... 옮아도 괜찮아. 그런 걱정 말고 편히 자렴." 마음이 마음으로 전달되어 아이에게 닿기를. 편히 자기를. 자고 일어나서 좀 더 나아지기를 바라며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