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로 오랜 시간 가정보육을 해오면서, 집안에서조차도 내가 설 영역이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한 모든 행동에 대한 인정과 보상은 없고, 가뜩이나 살림을 잘하지 못하는 빵점짜리 전업주부가 가정에서 들을 수 있는 칭찬은 찾기 어려웠다. 운전조차 무서워하지 못하는 엄마가 되어, 아이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대중교통으로 어디라도 한번 나갔다 오려면, 늘 "죄송합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삼종세트로 머리를 조아리고 굽신거려야 했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어느 것 하나에서도 칭찬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며, 누군가에게 받는 칭찬과 인정이 간절해졌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계속 일을 했더라면, 적어도 업무에 있어서만큼은 나의 성과가 확실히 보이고, 그로 인해 어떠하든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메아리쳤다.
"일"이라는 하나만 보았을 때 긴 공백의 시간, 그 안에서 나를 평가하고 인정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아이들이었다. 다른 누군가의 인정을 바랐지만, 사실 그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해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었다. 그 사실을 믿으면서도, 매일같이 보고 부대끼는 아이들과의 생각에서는 때로는 너무 소소해서, 때로는 너무나 평범한 일상이어서 느끼지 못한 채 흘려보내던 것들이 새로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섯 살 둘째 아이에게서 맑은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이 날 따라 재채기를 연속 10번을 넘게 하더니, 아나나 다를까, 맑은 콧물이 줄줄 흐르며 코감기가 왔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도 있겠지만, 코로나로 인하여 늘 환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유치원 교실 상황을 깜박하고 얇은 긴 면바지를 그냥 입혀 보낸 나의 불찰도 있었다. 결국, 아이는 오늘 하루 가정보육을 하게 되었고, 엄마와 함께 하루 종일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나 오늘 유치원 진짜 안 가도 돼?" 연신 확인을 하며, 믿기지 않은 오늘 하루의 선물이 그저 귀하고 좋은가보다.
그런 아이의 표정과 대비되게 나의 마음속은, '아.. 오늘은 유일한 첫째의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인데... 유일하게 내가 좀 나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날인데.... 아쉽다.' 하는 안타까움이 오간다. 운동도 못 가고, 글도 못쓰고, 책도 못 읽고... 무언가 자꾸 억울함이 올라온다. 만으로 6년을 꽉 채워 가정 육아를 하여, 나의 시간이라는 것이 존재해 본 것이 실로 정말 얼마 안 되었는데, 그 나만의 시간을 딱 1년을 누리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그마저도 자유시간은 사라졌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귀중한 선물"로 간직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자꾸만 "누리지 못하는 나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 억울함으로 대체된다. 번아웃이 심하긴 했나 보다.
둘째 아이에게 점심을 차려주려 잠시 쌀을 씻고 밥을 안치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거실 빨랫대 앞에 새로 한 빨래 거리가 수북이 쌓여있다.'벌써 빨래가 다 되었나? 내가 저걸 언제 꺼내 놨지?' 이상하다, 생각하며, 너무 정신이 없어 깜빡깜빡하는 나의 정신을 가다듬을 때, 저만치서 혼자 장난감 자동차를 바닥에 굴리고 있던 아들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아들이 씩 웃으며 일어난다. 내게 다가와서 폭 안기며 말한다.
"엄마, 내가 베란다 가서 봤는데, 빨래가 다 되었더라. 그래서 내가 이거 다 꺼내서 여기 가져왔어." 너무 놀래서 아이를 빤히 쳐다보니, 아이는 말을 잇는다. "엄마 힘들지 말라고, 내가 도와주고 싶어서."
아이를 안아주던 가슴팍이 뜨거워진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오른다. 저 빨래를 가지고 오려고 세 번을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중간에 빨래가 많이 흘러서 한번 올 때마다 계속 떨어진 빨래를 주웠을 아들이 겹쳐진다.
열심히 꺼내오던 빨래
작은 손으로 한아름씩 가져왔을 빨래들, 소복히 놓아진 빨래에서 보이는 너의 사랑
아들이 네 살 때였던가, 자기 전에 누워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 호는 빨리 크굼따.(크고 싶다.)"
"그래? 왜 빨리 크고 싶어?"
"응. 호는 빨리 커서 우리 엄마 설거지 도와주고 싶어서." 한 적이 있다.
그 아들이 여섯 살이 되었고, 설거지는 아직 도와주지 못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세탁기를 열고 꺼내 빨래를 옮겨주었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토록이나 벅차고 행복한 일인데, 그 대상이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나는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끼던 지난날들에 대해 미안해서 눈물이 났었던 날이 떠올랐다.
오늘 역시, 이런 아이를 오늘 하루 좀 데리고 있게 되었다고, 구덜 거리던 나의 마음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이는 나와 함께 있는 동안 행복한 마음을 품으며, 기꺼이,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엄마의 일을 도와하고, 행복해하는데..... 이런 아이가 내게 주는 사랑과 인정이 내가 멈춰 있는 동안 얻은 인정이자 온전한 칭찬인 것을! 가슴 깊이 넣고 싶어, 아이를 포옥 안아준다. 이 작은 아이를 안는 이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이 작은 아이가 내게 해 준 대가 없는 순수한 온전한 인정을 내 가슴에 담고 싶어서.
나의 심장과 아이의 심장이 함께 뛰며, 우리가 한 공기 안에서 호흡하며, 울고 웃던 이 날들이 가히 어떻게 버려지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내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내가 없어지는 것이 될 수 있을까! 작은 아이이지만, 작은 아이도 한 명의 사람이다. 그 한 명의 온전한 존재가 내게 보내주던 인정의 눈빛, 신뢰의 마음, 칭찬의 말, 감사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나의 존재는 다시 빛이 난다. 자존감이 많이 낮아지고, 별 것 없는 전업주부가 아니라, 이토록이나 큰 사랑을 온전히 누리는 하나의 존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