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설거지 철학
딸아이는 늘 집안일을 살뜰하게 도와준다. 청소, 설거지, 빨래, 그리고 어느 날은 신발 정리를 도맡아 한다. 딸아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저녁을 차려주는데 아이가 말한다.
"엄마, 오늘 설거지는 내가 하고 싶은데, 해도 될까?"
"어머! 그래 줄래? 마침 엄마가 오늘 설거지 하루 쉬고 싶었는데. 고마워."
환한 웃음으로 답하자 아이는 이내 신이 났다.
“엄마, 있잖아. 내가 키가 이만큼 커서 이제는 설거지용 작은 받침대가 필요가 없어. 이렇게 그냥 두면 밥알이 잘 안 불어. 할머니가 그러는데 물에 담가 놔야 한대. 나는 큰 통을 미리 준비해 둘 거야. 참, 고무장갑을 하면 더 미끄러워서 맨 손이 좋아.”
종알종알 설레는 마음을 말로 풀어낸다. 아직 밥을 먹기도 전인데 자기가 먹은 그릇을 깨끗이 닦을 사실에 신이 나서는 마치 설거지 국제 대회에서 1등이나 한 듯한 의기양양함을 뽐내고 있다. 잔소리 같기도 한 그 말들이 싫지만은 않다.
아이는 꽤나 능숙하게 설거지를 한다. 아직 세제를 한번 풀어 닦은 후 몰아서 그릇을 헹구지 못하고, 그릇 하나마다 세제하고 헹구고를 반복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그마저도 고맙고 귀여워서 나는 그저 "아이 잘한다" 만세 삼창을 한다.
"엄마, 이 그릇 좀 봐봐~이렇게 깨끗해지잖아? 나는 이때가 제일 기분이 좋아."
아이가 세제로 박박 거품 냈던 그릇을 처음 헹구기 시작할 때, 말을 한다.
"왜냐하면, 이제 이 그릇은 미역국이 들어있던 그릇인지, 잡채가 들어있던 그릇인지 알 수가 없거든. 깨끗해져서. 이제 이 속에 무엇이 담겨있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된다? 어때? 너무 멋지지 않아?"
아이는 감탄을 하며 그릇을 헹궈낸다. 깨끗하게 반짝이는 그릇들이 싱크대 위 선반에 차곡차곡 담긴다.
아홉 살, 실컷 놀고 행복할 나이! 우리 아이가 이렇게나 행복하게 집안일을 자진해서 함께 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이토록 멋진 말들을 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동스럽다.
"우리 아이는 이런 설거지 깨달음을 갖고 있어요. 설거지는 그릇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기는 과정이래요."
어디 가서 자식 자랑을 하지 못하는 엄마이지만 오늘만큼은 푼수가 되어 동네방네 자랑을 한다.
"오늘 안이 덕분에 엄마가 정말 편했어. 엄마 도와주고 생각해줘서 엄마가 사랑받는 엄마가 된 기분이야. 고마워. 우리 딸!"
아이를 꼭 안는다. 많이 커서 엄마의 가슴 위로 올라오는 아이의 머리가 행복하게 나를 올려다본다. 아홉 해 전,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으면, 빡빡머리 대머리의 그 아가야가 나를 올려다보는 그 눈빛을 오늘 다시 만난다. 엄마가 바라보니 행복하게 웃던 그 눈빛으로 아홉 살 아가야는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 우리에게 이제 아기띠는 없지만, 여전히 나의 가슴에 안겨 나를 올려다보며 행복해하는 그 천진한 눈빛이 있다. 두근두근 울리는 우리의 심장 소리가 서로를 채운다. 아이가 전해주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마음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