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같이 얻은 저녁시간

여섯 살이 해준 주먹밥, 아홉 살이 해준 설거지

by 고요


나이가 들었음을 느낀다. 무언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서 행복한 날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 내 삶에 펼쳐진다.


이 날따라 몸이 무겁고, 하루가 버겁게 느껴졌다. 코로나 시국 속에서 아이들이 콧물 하나 없이 지나가는 감사한 날들 속에서 지금을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 의무적으로 들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딱 한 시간만이라도 피난을 가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의무적인 대답만을 기계적으로 하며 저녁을 준비하려던 차였다.


"엄마, 오늘 나 주먹밥 만들기 하고 싶어."

여섯 살 아들이 말했다. 귀찮았는데 잘 되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커다란 양푼에 밥을 넣고, 뿌려 넣는 김, 뚜껑을 깐 참치 캔과 비닐장갑을 주고는 "우리 호가 오늘 저녁 담당이다!" 하고 말했다.


"엄마, 누나, 내가 오늘 저녁 맛있는 주먹밥 해줄게." 둘째가 의기양양하게 외친다. 그리고는 "엄마, 참기름은?"하고 내가 잊어버린 재료 하나를 더 요구한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함께 밥주걱으로 열심히 비비는 둘째의 손놀림이 많이 해 본 솜씨임을 뽐낸다.


"엄마, 나 장갑에 노란 고무줄 하나만 해줘." 투명 비닐장갑은 여섯 살 아이손에 늘 너무 크다. 손에 팔찌처럼 노란 고무줄 두 개를 하면 그 큰 투명 장갑이 적어도 벗겨지지는 않는다.


이제 아이는 동글동글 주먹밥을 모든 정성을 다하여 빚기 시작한다. 예쁘게 그릇에 담기가 무섭게 배가 고픈 누나가 집어먹고, 어미가 집어먹고, 쌍 따봉을 날려주면, 씩 웃으며, 행복한 얼굴을 해서는 열심히 동글동글 주먹밥을 빚었다.


"우리 호가 만들어준 주먹밥이 최고다!" 누나가 한마디 하고, "우리 아들이 이제 저녁도 다 차려주네." 내가 거들자, 아이는 이내 입이 귓가에 걸려서, 아빠 언제 오는지 전화를 해보자고 성화이다. 아쉽게도 아빠는 이 맛있는 아들 표 주먹밥을 먹지 못하겠구나.


아들이 정말 온 정성으로 비비고 빚어준 주먹밥으로 저녁을 때운 후, 갑자기 잘 먹은 아홉 살 딸아이가 외친다. "오늘 설거지는 이 누나가 한다!"


설거지 장인 아홉 살 딸아이는 동생이 빚은 말라비틀어진 주먹밥 양푼과 밥주걱을 거두어 싱크대에 넣고, 멋지게 물을 켠다.


"엄마, 나 고무장갑끼면 손이 미끄러워. 그냥 할게. 대신 조심해서 빨리 할게." 하더니 능숙한 솜씨로 그릇을 씻기 시작한다.


공짜로 저녁시간이 흘러갔다. 식사 준비도, 식사도, 식사 마무리도 모두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이루어졌다.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았는데, 선물같이 내게 주어진 이런 귀한 시간들! 아이들의 진한 사랑으로, 아이들의 온 마음과 몸의 정성으로 이루어진 시간을 누린다.


아이들에게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어미의 마음이 부끄럽게, 아이들은 매일같이 지지고 볶는 이 와중에서도 기적을 만들어 낸다.


설거지까지 다 끝낸 딸이 손을 탈탈 털고 나오며, 가슴가에 다 젖은 옷을 보며, 갈아입으려 할 때, 두 녀석을 꼭 안아준다.


"고마워! 오늘 안이랑 호 덕분에 엄마가 너무 행복한 저녁이 되었네. 엄마에게도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저녁을 만들어주고 설거지까지 해줄 줄 생각도 못했어. 고마워!"


눈물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꾹꾹 눌러 담아 한 말에, 눈치 빠른 둘째가 눈물을 글썽이며 나를 빤히 본다. "엄마, 울지 마!" 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감사한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날 이렇게 선물처럼 찾아온 특별한 하루가 등장하고, 그런 특별한 하루가 또 쌓여 나의 삶은 기적이 되었다.


아이들이 보내주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받는 특권을 매일같이 누리면서, 숨 한번 제대로 쉬고 싶다며 입이 나와서는 이 소중한 순간을 누리지 못했던 지난 일들이 생각이 나 아쉬움에 잡고 싶어 손을 뻗는다.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이 지나 잊히면 희미해지고, 어느새 나에게 당연한 하나의 순간으로 다가오겠지. 그때의 나에게 주고 싶은 선물로 부족한 글을 남긴다.


나에게 매일같이 행복을 주는 이 소소하고 귀중한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말이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 아이들의 전부를 걸어 자신의 모든 것으로 해주고 싶은 온전한 사랑을 받는 귀한 사람임을... 꼭 꼭 눌러 받아 적는다. 마음에 새기리라!


나는 참으로 행복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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