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출가 동안 사사껀껀 부딪치는 도반이 있었다. 만 배할 때 뒤처지는 나를 위해 옆에서 절을 해줬던 아버지 또래의 K행자님이다. 노동일을 오래 해오셨는데 내가 느끼기에 행동이 거치셨다. 그 분 옆에 있다가 다칠 뻔한 행자님들도 꽤 계셨다.
그 분의 방식을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고 약간은 그 분 방식을 무시했다. 퇴비를 푸는 일을 앞두고 장난 삼아 말했다. 'K행자님 옆에는 안 가야겠어요~ 똥물 튀길 수도 있으니깐요.' K행자님은 내 말에 상처를 크게 받으셨다.
그 후에 K행자님 때문에 나도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비계를 해체하고 있는데 철근 끝을 발로 밟으셔서 반대쪽이 내 얼굴로 날아와 안경이 날아갔다. 아프고 황당하고 동시에 화가 너무 났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하고 엉엉 울었다.
속상한 마음을 돌이키려고 혼자 대웅전으로 갔다. 분노의 절을 하다가 예전에 단소를 휘두르다가 친구 이빨을 깨뜨린 기억이 떠올랐다. 아, 과보를 받은 거구나 하니 화가 쑥 내려갔다.
그즈음부터 공부 삼아 K행자님의 방식에 예하고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내 기준에 위험해 보일 뿐, 그 분은 자신의 방식으로 50년을 살아오셨는데도 멀쩡하셨다. 따라해봐도 큰 일은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행동이 굼뜨고 생각이 많은 나를 보면서 그 행자님도 늘상 답답했으리라. 일 수행을 하면서 내게 이렇게 저렇게 충고를 하곤 하셨는데 한번 그 말씀 대로 밭을 갈아 봤다. 생각으로 할 일의 순서를 정하기 전에 일단 그 분이 하는 대로 따라해봤다. 그 분의 방식대로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백일출가 이후로 지금까지도 일단 예하고 하는 편이다. 오계에 어긋날 정도만 아니라면 의견이 부딪힐 때는 일단 먼저 받아들이는 게 이득이 많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우선 협업이 쉬워진다. 그리고 상대방 말대로 해봤는데 내 방식이 더 나은 것 같으면 편하게 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 상대방도 일단 자기 방식대로 한 것을 알기 때문에 높은 확률로 내 의견을 존중해준다.
그리고 확실히 화가 덜 난다. 수행하기 전보다는 사고가 유연해졌다. 이전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요즘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예하고 일단 해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하기 전에는 엥 하던 일들도 일단 예 해버리면 그 때서야 아 이러이러해서 그러셨구나 하고 마음으로 납득된 경험이 많다. 물론 지금도 기대가 있는 사람들(같은 동료라든지)에게는 화가 나긴 하지만 확실히 삶의 난이도가 낮아졌다.
번외로 가족을 행복하게 만드는 나만의 꿀팁이 있다. 가끔 부모님이 잔소리처럼 들리는 말을 하셔도 일단 '예, 어머니!'하고 웃으며 대답해보자. 어머니 얼굴에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미소가 번지는 걸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