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식 축구공. 중학교 때 엄마가 나를 묘사한 표현이다. 종잡을 수 없이 튀어다니는 탱탱볼 같았나 보다. 아마도 그건 마음 속에 반항심을 품고 있었던 내가 '예'나 '네'보다는 '싫은데요?' 또는 '왜요?'를 더 많이 말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복 아래 체육복 입지 말라는 선생님께 '왜요?'했다가 '니 이름이 왜요냐'고 한 소리 듣기도 했다.
고집이 세던 내가 백일출가 초반 50일 동안 '예'하고 일단 해보는 수행을 하게 됐다. 전체 문구는 '방긋 웃으며 예하고 합니다'였다. 하심(下心)을 말로 풀어 설명한 것이다. 20년쯤 살아보니 가장 이기기 힘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해야 하는 것도 마음이 안 내키면 극성 맞게 하기 싫어해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낭패를 본 적이 많다보니 나를 이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백일출가 동안에는 웬만하면 시키는 대로 다 했다.
행자 생활은 처음 하는 것 투성이었다. 공양 준비도 처음이었다. 토치로 붙이는 뜨겁고 큰 불도, 정신없는 와중에 해야하는 칼질도 무섭고 낯설었다. 잡념도 많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재료 10개를 자르려고 하면 일, 이, 삼 세다가 어느새 다른 생각에 빠졌다. '어라, 몇개였지?'를 반복하느라 10개 자르는 데도 오래 걸렸다.
그 외에 일 수행들도 처음 해보는 것이 많았다. 똥 푸는 것도 처음, 잡초 뽑는 것도, 밭 농사 짓는다고 바위를 캐내고 땅을 일구는 것도 처음이었다. 공사 후에 방치되어 있던 아시바(비계)들을 해체한다고 몽키 스패너 쓰는 것도 처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단은 예하고 뭐든 해보는 명심문 덕분에 백일간 여러 고비를 잘 넘겼다. 예하고 하지 않았으면 끝도 없이 마음이 물러섰을 것이다. 생각으로는 분명 '못할거 같은데?' 하면서도 해보면 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잘할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된다는 게 내겐 큰 관점 전환이었다.
백일출가 끝날 때쯤엔 '노래 할 사람?' 하면 제일 먼저 일어나서 노래를 해버렸다. 잘할 필요 없이 그냥 하면 되니깐. 다들 하기 버거워서 미루는 명상수련 공양팀장도 흔쾌히 내가 하겠다고 했다.
예하고 한 덕분에 나 자신을 다루기 쉬워졌고 그만큼 삶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