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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클로이 Sep 29. 2023

나의 장거리 연애 졸업식

a.k.a. 색달랐던 나의 마이크로 타이니 결혼식 이야기

"제가 결혼을 하기 때문에 오는 금요일에 휴가를 낼 예정입니다."


나의 구 약혼자, 현 남편 제임스는 다니는 회사에 딱 저렇게 자신의 휴가를 알렸다. 직장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지어졌단다. 그럴 만도 하지. 나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나 또한 한국에 있는 몇몇의 지인들에게 약 일주일의 시간을 두고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오는 6월 16일에 제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한 번씩 제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서프라이즈 결혼 통보는 내 가족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토록 기다리던 비자를 받아 들고 미국으로 출국하기 딱 하루 전 날 나는 나의 가족들에게 알렸다. "나 6월 16일에 결혼해."




K1비자를 손에 쥐어들자 마자, 나는 곧바로 미국행 티켓을 알아보았다. 정식 입국 허가를 받았으니 더 이상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지난 6월 초, 나는 인천공항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난생처음 K1비자라는 것을 들이밀어 미국행 비행기표를 발권받을 수 있었다. 이 비자를 받기 위해서 제임스와 나는 장장 22여 개월을 답답함 속에서, 결혼을 약속했지만 강제로 연애 생활을 이어가며, 태평양을 사이에 놓고 같이 살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 험난했던 기다림의 세월을 드디어 약 2년이 조금 안 되는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기나긴 10시간의 비행 동안 한 번도 눈을 붙이지 못한 채, 나는 그렇게 중간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했다. 비자를 받을 때 함께 받은 나와 제임스의 관계를 증명할 모든 서류가 담겨있는 노란 봉투를 꿀단지 마냥 안아 들고는 입국심사를 위해 내 차례가 오기만을 잠자코 기다렸다. 이번 입국 심사는 다른 때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K1비자로 입국한 후기들 중 종종 세컨드데리룸으로 보내졌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에 환승시간 내에 게이트에 도착하지 못하면 어쩌나 괜스레 걱정되었다.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 혹시나 입국이 거절되면 어쩌지라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고 있는데 곧 내 차례가 다가왔다.


무표정을 한 입국 심사원이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내가 건네준 노란 봉투의 입구를 북북 찢더니 100여 장은 될 법한 두꺼운 서류 뭉치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살펴보기 시작했다. 약간의 질문들과 함께 계속 서류를 훑어보다 유효 기간 내에 약혼자와 결혼을 해야 함을 강조하며 내 여권에 입국 도장을 꾹 찍는다. 엇, 생각보다 빠르다.  


무사히 짐을 찾아서 환승선을 넘기고 다시 커스텀을 지나서 최종 도착지의 환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예상외로 지체 없이 모든 것이 스무스하게 처리되어 걱정 인형의 염려 속에 5시간 정도로 잡아놓은 환승 대기 시간이 전혀 필요 없게 되었다. 한숨도 못 자 피곤하기도 했고 빨리 씻고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서 곧바로 항공사 고객센터로 향해 도착지까지 가는 더 이른 티켓으로 바꾸어줄 수 없냐고 물었다. 정말, 무슨 횡재인지 직원은 나를 바로 30분 후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넣어줄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수화물은 원래 비행기로 도착할 거라며 저녁에 다시 공항으로 가서 짐을 찾아야 한단다. 귀찮기는 했지만 공항과 집이 가깝기도 하고, 얼른 내 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냉큼 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에 돌아온 나를 소소하게 축복이라도 하는 걸까, 늦게 올 것이라던 나의 짐들은 나와 같은 비행기에 제때 실어져 도착지에 안전하게 나와 함께 도착해 주었고, 나는 바로 짐을 찾아들고 공항 앞에 나를 데리러 온, 그토록이나 보고 싶었던 내 약혼자 제임스를 만날 수 있었다. 크게 두 팔을 벌려 나를 꼭 안아주는 품에 폭 안기니 드디어 그와 다시 만나 우리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음을 온몸으로 실감케 했다. 우리는 견우와 직녀 마냥, 그렇게 한참 동안을 서로 껴안고 있었다.


그리고 꿈만 같던 재회 이후에 맞이한 우리의 첫 번 째 관문은 바로 결혼식이었다.




사람들이 이상적인 결혼식에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나의 답변은 항상 똑같았다.


'나와 내 남편만 참석하는 소박한 웨딩.'


만약 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면 꼭 이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해 왔던 결혼식이 있는데, 바로 영화 Sex and the City 1에서 주인공 캐리와 그녀의 약혼남 미스터 빅의 결혼식이다.   


뉴욕 한복판의 유서 깊은 식장에서 200명이 넘는 하객들과 함께 보그지의 드레스 화보에나 나올 법한 오스카 델 라 렌타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머리엔 크고 값비싼 깃털을 매단 그런 초호화스런 큰 웨딩이 아닌, 영화 맨 마지막에 등장한 빈티지 샵에서 구매한 이름 모를 정장드레스를 입고 파트너와 단 둘이서 한 시청에서 혼인 서약을 맺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가까운 지인들과 피로연을 갖는, 그 결혼식이 딱 내가 원하던 그런 결혼식이다.   


절대로 하객들을 초대하는 결혼식은 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결심했었다. 이유인즉슨, 그런 결혼식은 결코 나를 위한 결혼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가 주인공인 것이 무색할 정도로,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이나 지인들을 챙기느라 바빠서 정작 자신들은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 굉장히 아쉬웠고, 가족이라도 왕래가 잦지 않고 어떻게 지내는지 잘 모르는 사이들이 있는데, 굳이 피를 나누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챙기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축하해 준다는 명목하에 축하해 주러 오는 이를 맞느라 정작 나와 내 파트너가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그 특별한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없는 것을 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나는 이런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연애를 하면서 제임스 또한 종종 자신에게 이상적인 결혼식이라 하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 파트너와 단 둘이서만 하는 결혼식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말로 우리 둘이 원하던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사실 양가부모님까지 우리 식대로의 결혼식을 이해하실까 했으나, 언제 비자가 진행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상황에서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확실하게 준비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오히려 부모님들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요건이 되어주었다.


나와 제임스, 그리고 우리의 증인으로 서 준 나의 영혼의 단짝 니콜 언니까지, 이렇게 셋만 초대된 스몰도 아닌 마이크로 타이니 결혼식에 나는 1년 전에 사놓은 드레스를 입고, 원래 갖고 있던 오픈토 슈즈를 신고, 내가 미국에 오기 몇 주 전에 예약을 해 놓은 미국의 작고 예쁜 시청에서, 온전히 나와 내 남편이 주인공이 된 우리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결혼식 당일, 여느 날과 같이 아침 일찍 일어난 제임스는 아주 부지런하게 가까운 헬스장에 운동을 하러 나가고, 나는 뒤따라 일어나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집안 일로 하루를 시작했다. 한국에서라면 결혼식을 앞두고 얼굴과 전신 마사지 등을 받는다지만, 나는 그 전날까지도 곧 보게 될 운전면허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웬만하면 어느 정도 관리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친언니의 걱정 어린 전화통화에 집에 있던 팩 하나를 뜯어서 얼굴에 붙이고 앉아있던 게 내가 한 관리의 전부이다.


운동을 마치고 배가 고프다며 들어온 제임스는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로 뚝딱뚝딱 점심을 만들었고, 우리 둘은 티브이를 보며 깔깔대며 배 두둑하게 점심을 해치웠다. 제임스가 느긋하게 쉬는 동안 나는 샤워를 깨끗하게 마치고, 미리 찾아놓은 구글 사진 한 장을 띄워놓고 '신부 화장'을 시작했다.

  

큰맘 먹고 속눈썹을 사 왔는데 눈에 올려보니 진짜 이상했다. 역시, 사람은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가짜 속눈썹은 내려놓고 뷰러로 내 진짜 속눈썹을 한껏 치켜올리곤 마스카라로 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연장시켰다. 평소보다는 조금 더 힘을 주어서 화장을 해주었더니, 그럴듯하다. 머리를 말리고 세팅을 하는데, 이건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대한으로 단정하고 깔끔하게 뒤로 묶어주고 조그맣게 애교머리를 내어서 부담스럽지 않게 이마를 가렸다. 머리를 고정시켜 줄 헤어스프레이가 없어 식장 가는 길에 들러 사기로 했다.  


'오늘 부로 우리는 진짜 부부가 된다.'


우리는 집과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라구나의 시빅센터에 도착했다. 증인으로 서주기로 한 니콜 언니도 3시간의 막히는 길을 뚫고 달려 뒤이어 도착해 주었다. 결혼하는 나를 위해서 'something old, something blue'를 입어준 니콜 언니는 나와 제임스를 보자마자 와락 껴안더니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체크인을 마치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시빅센터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트레이드마크인 시빅센터 계단 위에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 그리고 이 것이 우리의 웨딩 사진이 되었다. 웃는 연습을 하나도 하지 않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줄 알았다.   


시빅센터의 사무원과 개인 정보 확인을 마치고, 우리의 결혼증명서에 올라갈 정보들을 하나하나 틀린 것은 없는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우리의 식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단상 앞에 서서 니콜 언니를 제외하고는 하객이 이라곤 전혀 없는 식장 안에서 판사 옷을 입은 결혼 진행자가 읊어주는 선언문을 제임스와 나는 따라 읽었다. 제임스와 손을 마주 잡고 섰는데 또 눈에 눈물이 한 그렁한 제임스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도 울컥해서 혼났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는지, 지금을 위해서 기나긴 터널과 같던 시간들을 함께 버텨준 나의 제임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고, 내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방긋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우리가 원했던 것처럼, 오로지 그는 나에게, 나는 그에게 집중하며 부부로써의 서막을 함께 열 수 있었다.


남자친구에서 피앙새로, 피앙새에서 남편이 된 제임스와 나는 기쁘거나, 슬프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언제나 함께하기로 약속하며, 서로의 손가락에 맞추어 놓은 반지를 나누어 끼워주고는 그렇게 정식 부부가 되었다.


나와 제임스, 그리고 니콜 언니는 바로 근처 라구나 해변가 앞에 자리한 근사한 호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제임스의 친구가 추천한 곳인데 우리를 위해서 먼 길을 달려와준 니콜 언니에 대한 보답의 답례 차 그리고 제임스와 나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우리만의 피로연 현장이었다. 연신 축하의 칵테일을 나눠 마시고 음식도 시켜 먹었는데 도저히 배가 안 차서 근처 수제 버거집에서 버거까지 시켜 먹고 두둑한 배에 얼큰하게 취기까지 올라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제임스는 오전 근무를 위해서 직장으로 향했고, 나는 니콜 언니와 한동안 침대에 누워서 숙취를 가라앉히다가 집 근처 브런치 가게에 언니랑 아침을 먹으러 나갔다.  


마치 특별할 것 없다는 듯이, 제임스와 나의 결혼식은 그렇게 평범한 하루 중 하나에 스며들어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결혼식 이후에 바뀐 것이라곤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결혼반지랄까. 우리는 결혼식 일주일 후에 떠나기로 한 작은 로드트립에 왠지 더 신나 있었다.


말 그대로 호들갑 하나 없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진행했던 나와 현재 내 남편의 마이크로 타이니 결혼식은 기다림에 지쳐 울고불고한 나날들이 마침내 결실을 이루어 장거리 연애를 졸업하고 앞으로 함께 할 새 출발을 축하하는, 소소했지만 너무나도 풍성했던 우리 둘만의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기념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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