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간단한 한 끼

[점심 차려먹기]

by 뚜우

나와 남편 모두 사교육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지라 시험기간인 요즘, 남편은 주말이라고 할 것도 없이 매일 일을 하러 나가고 있지만 나는 그래도 일요일 하루는 꼭 챙겨서 쉰다. 하지만 바깥일을 쉰다는 것이지 일주일 동안 돌보지 못한 집안일이 잔뜩 쌓여있기 때문에 바깥일 off, 집안일 on인, 여전히 바쁜 일요일을 보낸다. 주중에는 일을 하러 가야 해서, 또는 너무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 늘 전투적으로 식사를 준비하고 허겁지겁 먹어치우지만 그래도 어쨌든 집에 붙어있는 일요일 딱 하루만큼은 조금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밥때를 대하게 된다. 일요일 아침에 부랴부랴 커피도 내리고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 남편에게 먹이고 그를 출근시킨 후 집안일을 하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 배꼽시계가 울리기 시작하면 나의 고민이 시작된다.

'오늘은 또 혼자 뭘 먹지?'


둘이서 먹는 밥은 차리는 것이 귀찮지 않은데 나 혼자 먹으려고 밥 차리는 것은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가끔 유튜브나 방송을 보면 혼자 먹는 밥도 정성껏 요리해서 차려먹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 근사한 밥 한 끼를 만들어 대접하는 것이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방법 중 하나라고 하던데 나는 노동(특히 설거지)을 덜 하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 먹을 때는 늘 간단하게 (사실은 대충) 챙겨 먹는 편이다. 그래서 혼자 집에서 식사할 때의 단골 메뉴는 역시 '라면'이다.


이번 일요일도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점심시간이 되자 자연스럽게 라면에 손이 갔다. 평소 같으면 그냥 라면 하나 대충 끓여 먹고 말았을 텐데 왠지 이 날은 조금 더 신경 써서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라면에서 손을 떼었느냐? 안타깝지만 그건 아니다. 단지 국물라면에서 비빔라면으로 타깃이 변경되었을 뿐. 내가 조금 더 신경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은 어떤 요리를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영양 밸런스를 신경 쓴 라면을 먹겠다는 뜻이었다. 탄수화물은 라면으로 되었고 단백질이 필요했다. 라면을 먹으면서 혈당을 신경 쓰겠다는 것이 다소 우습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엇을 곁들이든 라면만 먹는 것보다는 낫다.


냉장고를 열어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니 달걀이 눈에 들어왔다. 비빔라면에 달걀은 언제나 옳은 조합.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빔라면과 짜장라면의 1인분은 성에 안 찬다는 것에 동의를 할 것이다. 언제나 하나는 적고 두 개는 많다. 항상 1.5인분의 비빔라면과 짜장라면이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아직 우리의 식품 업계가 그런 획기적인 상품을 내놓지 않고 있으므로 늘 라면 하나에 만족하며 먹어야 했지만 오늘은 그 부족한 양을 달걀로 달래 보기로 했다. 마침 또 내가 달걀을 무척 좋아해서 두 개를 삶을까, 세 개를 삶을까 고민을 하다가 에잇, 그냥 세 개를 다 삶아버리기로 했다. 단백질은 언제나 옳으니까.


달걀 세 개를 삶으면서 또다시 냉장고를 열었다. 이번에는 식이섬유를 사냥할 차례였다. 집에 마땅한 채소가 있던가 하고 고민하던 중 채소칸이 아닌 두 번째 칸 어디쯤 오이 두 개가 눈에 띄었다. 오이가 먹고 싶다는 생각에 사 두고서는 깜박하는 바람에 계속 그 자리에 있었던 오이다. 이 날이야말로 오이를 먹을 날이었다. 비빔라면에 오이는 찰떡궁합의 채소니까 말이다. 오이가 크지 않기도 했고, 채소는 많이 먹으면 좋으니까 오이 하나를 덥석 꺼내어 씻었다. 그리고 껍질을 벗긴 후 가지런히 채를 썰었다. 오이의 상쾌한 향기가 입맛을 돋워서 그런지 배가 갑자기 더 고파졌다.


달걀도 다 삶아져 껍질을 모두 까 놓았으니 이제 마침내 비빔라면을 끓일 시간이다. 잽싸게 냄비에 물을 올리고 비빔라면을 삶은 후 채에 받쳐 차가운 물에 잘 비벼서 헹궈주었다. 접시에 가지런히 담고 빨갛고 매콤 달콤한 양념장을 그 위에 짜 준다음 삶아둔 달걀과 채 썰어놓았던 오이를 살포시 얹어 주었다. 그리하여 완성된 그 어느 때보다 신경 쓴 비빔라면 한 그릇.



슥슥 비벼 채소와 달걀, 그리고 양념된 면을 먹으니 꼭 입에서 잔치가 벌어진 것 같았다. 고소한 삶은 달걀과 아삭아삭 상큼한 오이, 그리고 매콤 달콤한 소스를 입은 면이 아주 조화로웠다. 평소보다 신경 쓴 보람이 있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라면 한 끼. 꼭 대단한 음식을 나에게 대접해 주어야만 내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하지만 맛있게 한 끼 먹으면, 그리고 그걸로 행복함을 느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keyword
이전 07화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 날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