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내 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커피 한 잔과 사색]

by 뚜우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귀한 일요일 낮이었다. 밀린 집안일들을 주로 오전에 다 처리하고 남편이 출근하고 난 후 맞이한 조용한 시간. 바깥을 보니 날씨가 좋아 집에만 있기는 아까워 혼자 집 근처 서점에라도 잠깐 다녀오자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밖으로 나가니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뜨뜻한 열기가 느껴졌다. 급할 것도 없으니 천천히 걸어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냉기가 느껴졌다. 덕분에 한층 상쾌해진 기분으로 어떤 책들이 있는지 두루두루 매대를 살펴보았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잠깐 읽어보려 했는데 오늘도 역시 내 마음에 쏙 스며들어오는 책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요즘 내 마음속이 너무나 복잡해서 책이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는 것인지 도서관에서도, 서점에서도 읽고 싶은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어딘가 조금 아쉬운 마음으로 필사책 코너를 휘 한 바퀴 돌았다. 요즘은 필사책이 인기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종류도 꽤 많고 필사하기 좋게 책이 참 잘 나왔다. 책 표지가 노란색이라 눈에 띄는 필사책이 하나 있어 호기심에 어느 한 페이지를 펼쳐보았는데 거기 스티브잡스의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문 중 일부가 실려있었다.

'"만약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는 날들이 계속해서 이어지자 나는 내 삶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보았다. 대답은 역시 '아니오'였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와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 '내 인생, 이대로 괜찮은 건가?' 뭔가 커다란 생각하기 숙제를 얻은듯한 느낌으로 서점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내렸다. 비스킷 몇 개도 접시에 담아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는 문득 스티브 잡스 연설 전체를 들어보고 싶어서 유튜브를 켜 그의 연설을 들었다.

"내가 (실패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 위대한 일을 하는 오직 한 가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계속해서 찾으세요. 현실에 안주하지 마세요."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면 바로 '돈이 되는 좋아하는 일'을 찾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은 꼭 하늘에 별따기 같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는 일을 할 건지 묻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을 해보았다. 어림잡아 연속 3년 정도는 매일 '아니오'라는 답을 했을 것이다. 사실 당연하다. 좋아해서가 아니라 살아야 해서, 그리고 돈을 벌어야 해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뭘까? 사실 내 꿈은 전업주부다. 집에서 살림만 하면 마치 쓸모를 잃어버린 사람이 된 것만 같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때맞춰 정성스럽게 밥을 차리고, 상쾌하게 빨래를 하고, 집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단정하게 돌보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무척이나 의미가 있고, 또 그것들이 내가 가장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사실 내가 당장 내일 죽는다면 내일 하루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여러 번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하면 너무 박하니까 하루의 유예를 더 두어 내일 죽는다면으로 생각을 한 것인데, 예전에는 그런 상상을 하면 당장 여행도 가야 될 것 같고, 죽기 전에 만나야 할 사람도 많이 있는 것 같고 하루 만에 어떻게 그걸 다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다시 그런 상상을 해보니 내 생각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걸 느꼈다. 이제는 여행도,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안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 것 말고, 정말로 내일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그냥 내가 늘 살고 싶던 나의 꿈의 일상생활을 딱 하루 살고 가면 될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개운하게 세수와 양치를 한 후 내 반려 햄스터와 인사를 나누고 밥을 챙겨준다. 그리고 아직 단잠에 빠져있을 사랑하는 반려자를 토닥토닥 두들겨 깨운 후 잘 잤는지, 오늘은 뭐 할지 뭐 먹고 싶은지 잠깐 이야기를 한 후 함께 천천히 하루를 연다. 아침 겸 점심은 영양소 가득한 것들로 그냥 간단하게 차려 천천히 먹는다. 그리고 간단히 설거지를 한 후, 집안을 정돈한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필요한 집안일을 한 후 가볍게 산책도 할 겸 저녁 장을 미리 보기 위해 집을 나선다. 나간 김에 바로 마트로 향하기보다는 집 근처 공원을 들러 두어 바퀴 정도 공원을 돌며 새소리도 듣고 햇볕도 쐰 후 마트로 향해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며 식재료들을 산다. 장을 보고 나서는 한숨을 돌리는 시간.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다면 공부도 좀 하고. 피곤하면 잠깐 멍을 때리며 시간을 조금 흘려도 좋다. 그렇게 날이 어둑해지면 앞치마를 둘러매고 저녁준비를 시작한다. 칙칙 밥솥이 돌아가고 구수한 밥 냄새가 집안에 가득 퍼진다. 냉장고에서 장 봐온 재료들을 꺼내 요리조리 음식들을 만들어낸다. 내 입에 간이 조금 아리송하다 싶으면 남편을 불러다 호호 불어 간 좀 봐달라고 부탁한다. 맛있다며 한껏 오버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렇게 저녁이 다 되면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다. 그리고 다시 평온한 저녁시간.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같이 공원을 두어 바퀴 돌고 샤워를 한 후 적당한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이뿐이다. 내 마지막 날에 대한 소망은 딱 이 정도뿐이다. 지금처럼 일을 하러 가기 위해 전투적으로 일어나 점심을 차리고, 일의 일부 같은 점심식사를 마친 뒤 정신없이 치우고 출근해 저녁시간도 매일 놓쳐가며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리다가 공허해져 한 밤중에 집으로 돌아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그런 하루 말고, 딱 저런 하루를 보내고 죽는다면 내 마지막 하루가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매일을 저렇게 살고 싶지만 인생은 현실. 다 버리고 저렇게 살다가는 거지꼴을 면치 못할 테니 이토록 치열하게 돈과 내 하루를 바꾸며 산다.


대단한 결심을 하나 해낼 것처럼 생각의 보따리를 풀어헤쳤지만 역시 결론은 스티브 잡스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던 '현실에 안주하기'로 다시 돌아갈 것 같다. '안주'라기보다는 '순응'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현실에 저항할 용기가 없는 내게 내 안의 나도 모르는 레지스탕스가 발현되어 주길 괜히 한번 바라본다. 그래도 오늘의 생각 보따리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일단은 현실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되 더 나은 방향으로 가려는 생각을 가지고 작은 것이라도 조금씩 변화 혹은 실천을 해보려는 결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조금씩이 모여 결국은 내 이상향에 다다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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