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 바나나 머핀 만들기]
'취미부자'까지는 (아마도) 아니지만 나는 꽤 여러 가지 취미를 가지고 있다. 제일 대표적으로는 독서가 있고,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산책, 등산, 식물 키우기, 베이킹 등도 내 취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좋아하는 취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 베이킹이 압도적인 1위다.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미술에는 한결같이 재능이 없었던 나지만 두 손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다. 할머니께 바느질을 배워 서툰 솜씨로 자투리 천을 이용한 곰인형 옷을 만들기도 하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미싱을 배워 이모의 미싱으로 주머니나 작은 쿠션 등을 만들기도 했었다. 요리를 할 수 있게 되고부터는 각종 요리를 하나씩 익혀가며 요리하는 것의 즐거움, 더 나아가 내가 만든 요리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행복감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고등학생 무렵, 한창 유튜브가 뜨기 시작하면서 '쉬운 베이킹'이 유행했을 때 나도 시나브로 베이킹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집에 오븐도 없고, 오븐을 살 능력도 안 되는 고등학생 초보 베이커였기 때문에 오븐 없이 할 수 있는 베이킹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는 '밥통 카스테라'를 시작으로 프라이팬에 굽는 쿠키, 전자레인지로 만드는 브라우니 등 각종 노오븐 레시피를 섭렵하며 나의 취미생활을 이어갔다. 그때는 돈도, 도구도, 실력도 모두 다 부족하던 시기라 내가 만든 것들의 비주얼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은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희한하게 자꾸 만들다 보니 점점 실력이 늘어서 주변 친구들에게도 나누어 주고 가족들과도 나눠 먹으며 참 재미있게 베이킹을 했다.
본격적으로 베이킹다운 베이킹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건 대학생 때 내 첫 오븐이 생기고부터였다. 대학생이라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고등학생 때보다는 나았으므로 저렴한 가격의 미니 오븐을 하나 장만했다. 작은 오븐에 맞는 작은 틀들도 하나씩 사 모아 마들렌도 굽고 머핀도 구웠다. 그전에는 노오븐 레시피로 얼추 흉내만 낸 정도라면 오븐으로 구운 것들은 확실히 달랐다. 온도가 일정하지 않아서 설정온도를 맞춰 놓아도 온도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변덕쟁이 오븐이었지만 그런 오븐의 변덕에도 조금씩 적응해 가며 베이킹을 계속해왔다.
지금은 어엿한 내 집에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진짜 오븐'이 있다. 온도도 일정하고 크기도 커져 한번에 제법 많은 양을 구워낼 수 있는 오븐이 말이다. 이제는 밥벌이도 하니 베이킹 도구들도 하나 둘 늘어 만들고자 하면 제법 뭐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십 년이 넘게 베이킹을 해오다 보니 이제 초짜티는 벗은 지 오래. 꽤나 그럴싸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베이킹 중수정도는 된 것 같다. 이제야 모든 것이 다 갖춰진 것 같지만 이제는 정작 베이킹을 할 '시간'이 없다. 이렇듯 내게 베이킹이라는 취미는 항상 결핍의 연속이다. 참으로 감질나는 취미활동이 아닐 수 없다.
밥벌이를 하느라 한가하게 빵을 굽고 구움 과자를 만들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겨우 1시간을 짜내어 나를 위한 베이킹을 해보기로 했다. 재료는 바로, 집에서 점점 갈색으로 변하다 못해 곧 까맣게 변해버릴 것만 같은 바나나. 오랜만에 바나나가 먹고 싶어서 한 송이 샀는데 몇 개 먹다 보니 그냥 먹기에는 좀 질리는 감이 있어 이 바나나로 '초코 바나나 머핀'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레시피는 유튜브에 있는 바나나 브레드 레시피 영상을 하나 아무거나 골라 참고했다. 바나나브래드는 재료들을 섞기만 하면 되는 쉬운 베이킹 품목이라 빨리 반죽을 다 만들 수 있었다.
원래 바나나 브레드는 파운드 틀에 굽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는 파운드틀에 굽는 것보다는 머핀틀에 굽는 것을 더 선호한다. 머핀틀에 구우면 귀찮게 잘라서 먹지 않아도 되고 딱 하나씩 먹기 좋게 소분이 되기 때문이다. 굽는 온도는 동일하게 하되 굽는 시간은 파운드 틀에 굽는 것보다 10~15분 정도 줄이면 된다. 물론 꼬챙이로 익었는지 테스트해 보는 게 가장 정확하다. 그리고 또 일반적이지 않은 게 있다면 반죽에 초코칩을 넣은 것. 보통은 바나나브래드에 호두를 많이들 섞는데 나는 견과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초코칩을 넣었다. 초코와 바나나, 너무나 멋진 조합!
먹음직스럽게 구워져 나온 초코 바나나 머핀. 은은하고 달달한 바나나향기가 온 집안에 풍긴다. 베이킹을 하면 반죽이 구워지는 동안 온 집안에 맛있는 향기가 퍼지는데 그것도 베이킹의 묘미 중 하나다. 맛있는 냄새를 맡으며 그 맛을 상상하는 재미, 베이킹을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으리라. 빵 종류는 모름지기 갓 구운 것이 최고로 맛있지만 파운드케이크나 머핀처럼 구움 과자 종류는 오히려 갓 구웠을 때 별로 맛이 없다. 구워서 잘 식힌 후, 최소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숙성을 시킨 후 먹어야 촉촉하고 부드러운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러므로 나의 초코 바나나 머핀도 반나절 숙성 시작.
퇴근 후 얼른 저녁을 먹고 떨리는 마음으로 바나나 머핀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었다. 뚜껑을 열자마자 풍기는 사랑스러운 바나나의 향기. 한입 왕 베어무니 바나나와 초코가 어우러진 촉촉한 머핀의 환상적인 맛이 느껴졌다. 초코가 너무 강렬해서 바나나의 존재감이 죽으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했었는데 우리의 바나나는 초코 따위에게 질 녀석이 아니었다. 바나나 머핀 덕분에 너무나 행복했던 디저트 시간.
오랜만에 한 베이킹은 나의 하루에 또 다른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재료를 미리 준비하고, 계량하고, 순서에 맞춰 반죽을 만들고 굽는 일련의 재미난 행위들을 하고 있다 보면 내가 나로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내가 행복한 일을 할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 이렇게나 재미있는 것을 더 자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내가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 슬플 따름. 시작부터 지금까지 항상 어느 한 부분에서 감질나는 취미였던 베이킹. 언젠가는 원 없이, 부족함 없이 베이킹해 보는 날이 꼭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