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가 될 결심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실패하느니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실패할래.

by 매일내일

어렸을 적 나는 큰 어려움 없이 내가 마음먹은 일들을 해내며 살아왔다. 난 아이큐 140 언저리의 꽤 높은 지능을 가진 욕심 많은 아이였고, 생계를 챙기기 바빴던 부모님은 내 교육에 큰 관심을 쏟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학창 시절 내내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 공부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던 난 비교적 남들에 비해 어렵지 않게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했고, 그때까지 난 내가 마음만 먹으면 웬만한 일들은 해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나에게 회계사 시험에서 실패한 것은 내가 겪은 최초의 좌절이었다. 경영학과를 전공하던 내 주변에는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거나 합격한 선후배가 많았고, 대학을 졸업하고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나는 자연스럽게 전문직이라는 타이틀에 이끌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다. 하지만 난 숫자를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많은 시간 책상에 엉덩이를 붙이며 앉아있어도 숫자 가득한 회계사 시험과목들은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국 난 3년이라는 시간을 회계사 공부에 매달렸지만 합격 근처의 점수도 받지 못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며 나는 끝없는 터널을 걷는 느낌이 들었고,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러한 막막한 상황 가운데서 난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렸던 것 같다. 어릴 적의 나는 하루 종일 레고를 만들었다 부수었다 하며 노는 것을 좋아했고, 어려운 가정의 집을 리모델링해 주는 TV프로그램이었던 러브하우스를 보며 눈을 떼지 못했다. 난 아름다운 것에 예민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건축이나 인테리어 관련 서적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하고 읽곤 했다. 그렇다, 어릴 때의 난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난 어느 순간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학과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전공해야 했으나, 수학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문과를 선택했다. 그렇다 보니 대학을 진학할 때도 건축학과는 내 선택지에 있지 않았고 내 성적에서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의 인기 있는 학과였던 경영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도 남들 다 한다는 회계사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내가 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하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서 무엇하리. 결국 중요한 건 내가 최종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는 건 결국 오늘 나의 선택들이었다. 내가 뒤늦게 깨달은 건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난 내가 좋아하지 않는 회계사 공부를 하면서도 실패하느니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실패하는 것이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게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이다. 그렇게 난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설렌 가슴을 안고 건축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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