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살, 뒤늦게 건축을 접한 나에게 세상을 보는 시각은 건축을 배우기 전과 후로 나뉜다.
아주 오래전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내가 눈을 뜬 그 순간부터 나는 내게 주어진 두 눈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왔다. 하지만 건축을 알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들에서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감각들을. 건축을 배우고 난 뒤로 나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건축이 참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는 어디에나 있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덕분에 어딜 가든 뭐든지 흥미롭고, 의미 있고, 재미있는 것 투성이라는 것이다. 어느 도시를 가든 그 도시의 역사와 그 역사 위를 관통하는 건축물들이 있다. 건축물을 들춰 그 안에 있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고, 이 건축물은 어떤 재료를 써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지어졌는지 파악하는 것도 재밌다. 건축가의 의도를 따라 공간 안을 탐색하는 건 마치 어렸을 때 하던 보물 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이 건축가는 이 건축물에 또 어떤 보물들을 숨겨놨을까, 어떤 와우포인트가 있을까. 어떤 공간을 탐색할 때 우리는 마치 건축가가 낸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을 함께 하고 느낌을 나눌 동반자가 있다면 더욱더 금상첨화다!
나에게 그러한 동반자가 있다는 건 참으로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건축을 공부하며 만난 우리 부부는 뒤늦게 건축에 뛰어든 만큼 열렬하게 서로와 그리고 건축과 함께 사랑에 빠졌고, 우리의 이야기는 언제나 건축과 함께 했다. 굳이 따져보진 않았지만 아마 8년 전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 결혼해 2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도 건축얘기를 빼놓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우리에게 마치 건축 이야기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일과 좋아하는 것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 우리 부부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러한 파트너를 만난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인 일인가 하며 감사하곤 한다.
무료한 주말이면 우리는 손잡고 나가 서울구경에 나서곤 한다. 이번에 또 새로 지어진 건물은 뭐가 없을까, 요즘 서울에서 핫하다는 건축물은 무엇일까. 그렇게 바쁘게 건축물을 쫓아다니기만 해도 주말 하루가 다간다. 긴 연휴가 생기면 서울근교나 지방의 건축물들을 답사 간다. 세상에 이렇게 봐야 할 건축물들이 많다니, 얼마나 짜릿한가! 더군다나 건축은 시각예술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한 미술전시도 많이 다니려고 한다. 사실 건축을 공부하기 전에는 예술과 전시는 나에게 익숙지 않고 먼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건축을 공부하면서부터 또 시각예술을 보는 새로운 눈이 생긴 것 같다.
해외여행을 가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갈 때 우리가 코스를 짜는 기준은 대부분 건축물 위주이다. 일단 보고 싶은 지역의 유명 건축물들을 찍어놓고 그 건축물을 이동하며 주변 풍경을 구경하고, 배가 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언제나 그렇듯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아침 일찍 나갔다 저녁 늦게 들어오는 우리에게는 비싼 숙소도 사치다. 가끔 정말 좋아하는 건축가가 지은 숙소에는 돈을 쓰곤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숙소도 간편하게 해결한다. 우리 부부는 둘 다 MBTI가 계획형인 J성향이지만 어쩌면 그건 건축물에만 해당하는 것 같다. 나머지는 모두 즉흥적으로 해결하곤 한다.
건축과 함께하는 여행은 건축을 모르던 시절의 여행의 농도보다 훨씬 진하다. 건축은 장소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그래서 모두가 건축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으면 좋겠고, 그들도 그 풍부한 감각을 공유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또한 많은 여행과 건축답사를 통해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고 싶다. 건축은 다분히 경험적이고 주관적인 것이라 정답이란 것이 없고, 생물과 같이 인간과 사회와 소통하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건축과 함께하는 나의 이 여행은 아마도 끝이 없는 여행이 될 것만 같지만 그래서 더욱더 설레고 기대되는 건축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