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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 Nov 28. 2018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를 구분하는 그림일기

원래 '원래' 라는 건 없다.




















































“걔 원래 그래. 너가 이해해”


우리는 종종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옹호하기 위해 또는 상처받은 누군가를 위로한답시고 이러한 문장 쓰기를 즐겨한다. 허나 여기서의 ‘원래’ 는 그 사람의 사적인 자아와 공적인 자아가 구분되지 않음을  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가 존재한다.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모두가 이해 받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좋은 일이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우리가 사적인 자아를 꺼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 모습을 이해 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마치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가 구분되어야만 한다’ 라는 뉘앙스의 말에 다소 거부감이 들 수는 있으나, 소위 우리가 말하는 '성인' 이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이해받을 수 없는 악질적인 성격은 전적으로 본인의 사적인 영역에 숨겨 놔야 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뿐이다. ‘원래’ 부터가 예의없고 타인을 배려할 줄 모르는 아이였거나 ‘원래’ 부터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전할 줄 모르고 뱉는 수단으로 사용해왔던 사람이라면 더더욱.


필자라고 ‘원래’ 안 그렇겠는가, 나도 원래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화도 내고 때로는 막말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음은 내가 착한 사람이어서 혹은 거듭나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 행동에 대한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음을 알 뿐.


이제 우리는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사람에게 가서 이렇게 말할 때이다.


“걔 아직도 그 모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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