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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단단 Dec 23. 2023

내가 나로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

 잠을 깊게 이루지 못하면 새벽과 친하게 지내기 쉽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겨우 잠에 들어 새벽이 가장 깊은 무렵에 일어나는 기분은 뭐라 형언할 수 없다. 마치 깊은 심해 속으로 떨어져 침잠하는 기분이 든다. 깊은 새벽의 하늘색이란 우주의 본모습을 닮아서 더욱 그런 기분이 들게 된다.

 일상 중에서 우울증 약물을 복용하면 세로토닌을 자극해 주는 약물의 도움으로 일시적으로 뇌가 개운하게 잠에서 깨는 기분이 들지만 반대로 깊은 잠에 들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워낙 만성적인 우울이다 보니 수면제를 하루라도 복용하지 않으면 수면시간이 제어되지 않는다. 길게 썼지만 어쨌든 수면을 잘하지 못하다 보니 신경 쓰지 않는다면 듣지 못할 수도 있는 소리를 새벽에 듣는 경우가 많다.


- 심야버스 주행하는 소리

- 술 취한 사람들의 내밀한 독백

- 지하철 첫차 운행 소리

-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어딘가 다급해보이는 사람들의 자동차 주행 소리

- 누군가의 달콤한 수면을 방해하고 싶지 않은 배려들 (클락션, 사이렌이 울리지 않음. 적어도 아직까진 듣지 못함)



주로 이런 소리들이 새벽을 구성하곤 했다. 잠에 들지 못하겠다 싶으면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새벽의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여기에 잠들지 못하고 새벽을 정처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과 누군가의 출근길을 목격한다. 세계는 이렇게 이른 시간, 첫 숨을 틔우는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이 있기에 나도 존재한다.

그들이 있기에 밤이 깊은 시간까지 시험 준비를 하고,  따뜻하게 버스에 앉아 창가에 기대 노래 한 곡 들을 수 있으며, 누군가의 이른 출근 덕에 직장에 무리 없이 도착한다. 아무도 없을 때 길가의 보도블록과 깨진 시멘트를 보수하는 그들이 있기에 아침에 단단한 길가를 밟을 수 있는 것이다.


불면증이 나의 건강을 앗아가고 있지만, 때로 선물도 가져다주고 있다. 비비언 고닉이 집필한 책의 제목처럼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공연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오늘은 잠시 나의 안온한 주말을 가능하게 해 준 이들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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