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이것은 왜 직업이 아니란 말인가
아침 일찍 일어났다. 시간을 보니 오전 7시. 전날 남긴 김 봉지를 들고 주방으로 올라갔다. 고시원 주방은 4층에 있어서 아침의 쌀랑한 공기를 맞으며 갈 생각을 하니까 밥을 포기할까. 싶었지만 오늘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가고 정리도 해야 하는 날이었기에 밥을 든든히 먹자고 생각했다. 하루에 못해도 만 보 이상은 걷고 있지만, 오늘이 알차다고 생각되려면 족히 2만 보 이상은 걸어야 겨우 채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절로 비장해졌다.
밥 솥을 열어보니 딱 한 숟갈 정도 남은 밥이 있어서 밥주걱으로 퍼서 김을 싸 먹었다. 비장해진 만큼 내 간과 비장에는 기별도 보내지 못할 만큼의 양이었지만, 어떻게든 입에 넣고 씹어 삼켰다. 하루를 보내야 하니까. 그래도 어제는 계속 물로만 배를 채웠는데 쌀을 씹는 게 어디냐. 좀 있으면 중고매장에 판매한 도서 금액도 들어올 거고. 이렇게 또 하루를 버티겠지. 장하다. 장해. 이단단.
일상을 보내다 보면 문득 직업을 적는 칸이 나온다.
나는 내 직업을 무엇이라고 소개해야 할까?
서점원? 간호사? 인간? 작가? 인생 방랑자?
이렇게 일주일 동안 내 하루는 교대 스케줄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는데. 병원에 있었을 땐 하지 못했던 고민을 했다. 셋 중에서 수입을 많이 가져다주는 직업을 내 본업이라고 삼아야 할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고 내 정체성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직업이라고 소개해야 할까.
청계천을 거닐면서, 잠시 짬을 내어 휴식시간에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일은 책과 관련된 일인데.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또 아니다.
혹시 알바가 스타벅스에서 사치 부린다고 생각할까 봐 근무지와 동떨어진 곳에서 도둑처럼 글을 쓴다. 옆에는 카페라테 톨 사이즈가 간신히 자리 눈치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있다. 누구 하나 눈치 주는 사람은 없지만, 사실은 내가 나의 빅브라더가 되어 감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직업이라고 쓸 수 없는 나의 새로운 일 앞에서,
내 안에는
너(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슈퍼 파워 솔직 위풍당당하게 지금 하는 일을 소개할 수 있어?라고 끊임없이 속마음을 캐내는 질문자가 있다.
알바는 왜 직업이 될 수 없단 말인가.
직업이 4대 보험을 기준으로, 수입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라면 엄청 슬프게 생각된다. 차라리 직원보다 할일은 적으니 좋은게 좋은거라고 생각하자. 가 편해지는 아이러니. 정규직으로 소속되고 싶으면서도 이대로 지내고 싶은 마음과 이러면서도 발전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려서 마음이 복잡하다. 새롭게 정신건강 간호사를 알아보며 내가 좋아하는 일과 현실의 일을 맞추어보자며 좋은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마음, 그냥 이대로 조금 덜 쓰고 편안하게 좋아하는 책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오늘도 싸우곤 한다. 아니 일단 내가 어떤 사람으로 규정되고 싶은건지, 규정되고 싶지 않고 자유로운 꿈의 디아스포라가 되고 싶은건지부터 정해야 될 것같다.